축구산업 시리즈 #1
축구산업은 쉴 틈 없이 그 규모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 위기 등의 악재가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을 때에도 중계권 수입은 단 한 번의 뒷걸음질 없이 언제나 우상향 해왔고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성 미디어 기업뿐만 아니라 아마존, 넷플릭스, 애플 등의 거대 콘텐츠 플랫폼, 심지어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사업자들이 라이브 스포츠를 그들의 선반에 올려놓기 위해(경쟁자의 선반에서 내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나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수십 명의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각본을 짜내고 있을 때 스포츠는 쉴 새 없이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수히 쏟아지는 콘텐츠의 범람, 볼거리가 지처에 널린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브 스포츠의 차별화된 가치는 그 여느 때보다 더 무소불위적인 절대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확장된 공급망을 통해 스포츠가 사람들과의 접점을 넓혀갈수록, 그리고 중계 기술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마케팅 미디엄medium으로서의 스포츠의 가치 역시 급상승할 것이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스페인 1부 리그는 생중계에서 가상A보드virtual a-board 광고를 운영해왔다. 피치를 둘러싸고 있는 광고판이 스페인 현지에서 경기를 볼 때와 한국에서 시청할 때 서로 다른 광고를 출력하는 것이다. 만약 넷플리스가 엘 클라시코 경기 중계권을 구입하여 그들 플랫폼에서 생중계한다고 했을 때 A 보드에 그들이 원하는 광고를 넣는 것이 기술적으로 이미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포츠 마케팅은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기존 소수의 대형 스폰서들과 계약을 맺던 형태를 탈피하여 micro-segmentation을 중심으로 더 다이내믹한 마케팅 메커니즘을 만들어내고 있고 위와 같은 거대 콘텐츠 플랫폼, SNS, 그리고 기술의 발전을 연료 삼아 왕성한 추진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팀의 흑자 운영은 가능하다. 산업이 성장하고 들어오는 돈은 커져만 간다. 효과적인 운영을 통해 얼마든지 수익을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수혜를 즐길 수 있는 축구팀은 전 세계 수백만 개의 축구팀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수만 명의 팬들이 지그날 이두나 파크를 가득 매울 때 스페인 1부 리그에는 수 천명 수준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친 경기들이 있다. 그리고 K리그에는 천 명도 미처 못 채우고 치러지는 경기도 있다. 낙수효과는 미미하다. 스페인의 경우 연맹이 중계권을 판매하여 올린 수입의 단 1%만이 협회 및 아마추어 축구(3부 이하 수만 개의 팀들 및 기타 풀뿌리 축구 관련)에 분배된다. 그리고 이는 비단 스페인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즉 극소수의 팀들이 사업을 확장 시키고 수익을 창출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팀들은 적자에 허덕이며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축구팀의 흑자 운영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래서 "Yes, but no"이다.
축구팀이 수익을 내긴 정말 어렵다. K리그의 22개 팀들 모두 이 어려움을 피해 가지 못한다. 예산의 10% 내외만을 벌고 나머지는 지원에 기대야 하는 현실이, 돈 먹는 하마 취급을 받는 상황이 안타깝고 또 못마땅할 수 있지만 축구팀의 흑자 운영은 쉽지 않다. K리그에 종사하는 임직원들 대다수가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팀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능력을 키워야 하는 여지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노력, 능력과는 별개로 축구 산업에서 남는 장사를 하는 건, 특히 우리나라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필요한 돈의 1/10도 벌지 못하는 현실 자체를 보더라도 흑자 운영은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K리그 축구팀의 흑자 운영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래서 "No"이다.
그렇다면 결국 앞으로도 우리나라 축구팀들은 지원비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원비가 없다면 운영이 불가능한 현재의 구조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사회적 기회비용은 거듭 쌓여가고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필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다. 더 재미있는 축구를 하겠다고, 더 열심히 마케팅 홍보 활동을 하겠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경기가 더 재미있어진다고, 스타 선수를 영입한다고, 이벤트를 늘린다고 관중수가 늘거나, 급격하고 지속적인 수입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축구팀을 더 인기 있게 만들어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주어진 지원금을 사업을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K리그 팀들에게 필요한 건 더 높은 수준의 인프라나 선진적인 훈련 시스템이 아니라 구단 운영을 "사업 운영"으로 격상시키는 사고의 전환이자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안본 것들을 찾아보고, 안 해본 것들을 해봐야 한다. 흑자 운영은 못할지언정 지원금을 투자금 정도로 승격시킬 사업적 세련됨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집 안에는 먹거리가 없다, 이미 떨어진지 오래다. 말했다시피 낙수효과를 기대할 순 없다. 산업이 커지고 있다면 우리도 분명히 그 산업을 이루고 있는 부분으로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아가 그 과실을 따 먹어야 한다. 유럽 축구를 필두로 전 세계 축구산업과 다이내믹하고 전략적인 사업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해외 유명 구단을 방문해서 관계자와 웃으며 사진 찍고 기사나 보고서에 올리는 따위의 요식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굳이 유명 축구팀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규모는 작아도 사업적인 마인드로, 상호 유무형의 가치를 나누어가질 수 있는 주체들과 면밀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경제적 규모와 아시아에서 가지는 한국 축구의 상징성 등 유럽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가치를 사업적으로 동반 개발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무수히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외 축구와의 사업적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확장된 사업의 스케일은 궁극적으로 구단의 운영비용을 절감케 하는 효과를 안겨줄 수도 있다. 아울러 모기업, 지자체에게 직간접적으로 지원에 대한 보상가치를 확대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또한 축구팀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인 축구, 우리나라의 축구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실효적이고 지속적인 채널을 마련함으로써 유소년 팀의 경쟁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들은 구단의 임직원들이 구단 운영에 있어 진취적, 전략적, 구체적인 사업개발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갖추어야만 흉내가 아닌 실현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축구팀의 흑자 운영은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글이 다소 길어졌다. 결국 K리그 팀들이 구단 운영을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내가 유럽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를 운영하고 스페인에서 축구팀을 경영하며 경험하고 목도했던 가능성을 우리 축구팀들도 인지하고 쫓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여기서 동 주제를 마감하고 다음 주제로 이어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