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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알라 Feb 22. 2024

다들 연차 쓰고 해외여행 갈 때


출근하고 보니 책상 위가 알록달록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형형색색의 초콜릿과 사탕, 과자 등이 놓여있었다. 하나같이 낯선 포장지에 꼬불꼬불 알아볼 수 없는 레터링까지. 누가 봐도 외국산 군것질거리로 연휴 동안 해외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이들이 사 온 기념품들인 것 같았다.


'올 명절에 다들 고향은 안 가고 공항에 갔던 거야?!' 나는 올 명절 집에서 조카들을 돌보고 엄마와 함께 전을 부쳤었는데, 아무래도 대한민국 땅에서 민족 대명절을 지내고 있었던 건 우리 부서에서 나 하나뿐이었나 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로 말할 것 같으면 나름 워라밸이 좋은 편이다. 나만 해도 1년에 야근을 한 횟수가 양손에 꼽을 정도이니 말이다. 연차 역시 다들 굉장히 자유롭게 사용하는 분위기다. 몇 날 며칠을 줄줄이 사탕처럼 연달아 쓰거나 갑작스럽게 당일 연차를 써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자신의 업무스케줄만 잘 조정한다면 유럽이고 미국이고 충분히 떠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너무 사소하고 사소해서 누구한테 말히기도 민망한 그런 세상 사소한 불만이 생기기도 한다. 바로 해외여행을 가는 동료들이 꽤나 많다는 점이 그것이다.


일 년에 한 번은 기본, 대부분 반기별 아니면 분기별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함께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먹을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 역시 단연 해외여행이다. 조만간 어디를 갈 거라는 얘기부터 시작해 이미 그곳을 갔다 왔던 이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일까지. 어쩔 때는 대화가 여행에서 시작해 여행에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해외여행을 전혀 안 가본 건 아니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 해외여행은 온전한 휴식 및 힐링과는 거리가 있다. 분명 이국적인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흥분되고 설레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이 자체도 나에게는 다소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하기 때문이다.


평소 모험이나 새로운 자극보다는 육체적인 안락이나 정신적 평온함을 선호하는 성향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소심한 J라서? 계획도 대충이 아닌 A안 B안 C안까지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려다 보니 각종 변수가 즐비한 해외여행은 즐겁다기보다는 오히려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해외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동료들과의 잦은 여행 얘기가 다소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나도 어디론가 야심 차게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 묘한 조바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무 이유 없이 오직 휴식만을 위해서 며칠간 연차를 쓴 일이 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동료들과 다 같이 점심을 먹을 때였다. '긴 휴가동안 뭐 했냐'는 질문에 그냥 집에서 쉬었다고 대답하자 O_O? 금세 아리송해지는 여러 쌍의 눈빛들. 그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멋쩍은 듯 웃었지만 왠지 뭔가 휴가를 의미 있게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뻘쭘했던 기억이 난다.



해외여행이 국내여행만큼이나 흔해진 요즘. 해외여행으로 연차를 알차게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알차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일 년에 많은 것도 아니고 대략 15일 정도뿐인 소중한 연차. 오롯이 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도록 허용된 기간조차 주변을 의식하며 사용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그동안 문득문득 위축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연차의 가치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가만히 마음속에 새겨본다. 그저 내 상황과 취향에 맞춰 소신껏 쓰는 게 정답이라는 것을. 뭘 하던지 간에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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