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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크와콩나무 Jun 20. 2022

나를 위한 작은 사치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충만히 사랑해야 한다’

백수린 다정한 매일 매일 



“언니, 이거 애아빠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거야. 예쁘지?”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목과 귀는 보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를 더 빛나게 하는 명품 보석 – 후배는 정기적으로 보석을 사고, 선물 받아 벌써 어른 키 높이의 장식장을 채웠다고 한다 - 보고 차고 할수록 기분이 좋다고 – 다른 곳에 아끼고 보석은 계속 사 모은다는 그녀의 취미를 남편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보석을 사줬는데 심드릉한 여자들도 많다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보석을 수집하던 그 후배는 알고보니 오늘 이 글의 주제인 자기를 위한 작고 확실한 사치를 제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자신에게 작고 확실한 사치는 무엇일까? 나는 아쉽게도 보석 같은 귀중품을 모으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여행과 같은 경험을 하는 데는 과감하게 투자하곤 했지만 바쁜 워킹맘인 나에게 무엇을 사거나, 알아보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확실한 사치는 아무것도 안하고 쉬면서 필요하면 글로든 그림으로든 수다로든 무엇이든 쏟아내는 나만의 시간이다.

먼저 가장 이상적인 나만의 휴가를 상상해본다.

‘나는 남태평양 해변가에 접한 리조트에 한달간 여행을 왔다. 아무런 목적도 없고 해야할 일도 없는 한달간의 시간 – 나는 휴대폰도 이메일도 없어 확인해야할 것도 없다. 창문을 열어 멍 때리며 바라보니 내 눈에는 끝이 안보이는 수평선과 침엽수림만 보인다. 골치아프던 일도 글도 없고, 마음써야 하는 애들도 없다. 나는 포근한 침구에 몸을 맡기고 그냥 잠에 빠져든다. 몇 시간 후 눈을 뜨고 문을 열고 얉은 물에서 수영을 한다. 2-30분 후 나는 방에 들어와 글을 쏟아 낸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다가 인물들에 캐릭터의 옷을 입히고 그 성격들에 각을 세우고 사건들을 엮어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나는 신이 난다. 시작은 내 인생 한풀이였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소설을 쓰고 있다. 저녁에는 근처 레스트랑에서 맛있는 현지 식사를 한다. 모자를 쓴, 키가 작은 배불뚝이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 둘이 와서 스페인어로 노래 세곡을 불러준다. 여행객들과 심각하지 않은 그저 사는 이야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잠든 줄도 모르고 나는 잠이 든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몸과 마음에 이끌리는 데로 시간을 보내며 한달을 보낸다. 내 한풀이 글쓰기는 책 한권이 될 수 있는 정도로 두툼한 원고가 되었다. 비록 스토리가 앞 뒤가 안 맞고 생각하지 못한 이상한 캐릭터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있지만 .’

이렇게 나만의 휴가를 며칠 갖고 나면 에너지가 회복이 될 것 같다. 이런 휴가의 맛은 생각만으로 나를 싱싱하게 만든다.


나에게 허락하고 싶은 다른 하나의 사치는 좋아하는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박노수 화백’의 그림을 좋아해 자주 보려고 하고 있다. 흑백 위주의 한국화에 현대적인 색감을 입힌 그의 그림들은 처음 보았을 때 언젠가 내 꿈에서 본 듯 친숙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보았던 그림일 수도 - 그의 그림들을 접하면 그 색감때문인지 한국화 특유의 여유로움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지금은 좋아하는 그림이 실린 화보와 수첩, 책갈피 등으로 생활에서 접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요즘 공부하고 있는 NFT(대체불가능 토큰)로도 소유해 보고 싶다. 박노수 미술관을 운영하는 재단에서 아이디어를 내는 시민 위원으로 일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20대 유럽 배낭 여행시절 날마다 명화로 가득한 미술관에 가다 보니 나는 미술품 애호가의 성향을 갖게 되었음을 이 글을 쓰면서 인정한다. 미술품 감상은 방법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백수린의 표현처럼 ‘그저 사랑과 동경만으로 시작해 여전히 서툴지만 그만둘 생각이 들지 않고 과정이 즐거운 일’ 이다. - 마치 영어가, 요가가 그렇듯이. 계속 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미술품에 대한 글도 즐겁게 쓰고 사람들에게 감상 가이드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를 위한 사치’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내 자신에게 인색했다는 걸 보았다. 내 지출을 분석해 보니 대부분은 학원비 식비 같이 가족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은 거의 없다. 과거 여행들도 모두 아이들에 중심을 두었지 내가 중심이 된 여행은 결혼 전으로 까마득하다.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다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이제 내 자신에게도 시간과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당장 이번 연휴때 나를 위한 1박2일의 휴가를 기획해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그림을 표지로 한 노트에 그간 회사에서 외국 여행에서 겪었던 일들을 글감으로 한 소설이라도 펜이 가는 대로 막 쓰면서 말이다. 이 행복한 상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하루 하루 박음질 하듯’ 살아가던 지친 일상이 활기차고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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