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상품화, 나아가 사람의 상품화에 대한 아들과의 대화
어제는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아들과 한시간 넘게 토론을 했다. 바로 성 상품화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발단은 한 동영상 속 아이돌의 모습이었다.
아들이 나에게 어떤 여 아이돌이 춤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그걸 보고 너무 선정적인 것 같다고 했다.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떤 춤은 선정적이며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예를 들어가며 서로의 의견을 확인했다.
(여기서부터 예로 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저와 아들의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블랙핑크나 에스파, 뉴진스(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의 춤은 전혀 선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파워풀하고 멋진 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방금 네가 보여준 동영상 속 춤은, 춤만 놓고 봤을 때 댄스라고 느껴지지도 않고, 뭔가 야릇한 분위기에 표정도 그렇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것이 선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들은 BJ를 예로 들었다. 가슴골을 내놓는 정도가 아니면 자신은 선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나는 성 상품화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성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아들은 먼저 그 둘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여 나온 정의를 알려줬다.
구글에서 '성 상품화 의미'라고 검색하여 나온 AI 개요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성 상품화는 인간의 성적 매력이나 이미지를 이용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로, 성을 인격체나 본질적 가치가 아닌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적 대상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광고, 미디어 등에서 성적 자극을 통해 소비를 유도하고, 특히 여성을 성적 객체로 격하시켜 인격의 본질을 훼손하고 사회적 차별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성적 대상화: 타인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사물이나 대상으로만 여기고 전시하는 행위로, 여성에게만 집중되는 경향이 큽니다.
상업적 이용: 성적 이미지를 이용해 제품 판매를 촉진하고 수익을 얻는 방식(예: 노출이 심한 의상, 과장된 표정 등).
인격 가치 훼손: 성의 본질적 의미(사랑, 친밀감 등)를 변질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소비 대상으로 전락시킵니다.
사회적 차별 강화: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특히 여성을 열등하거나 종속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아동 성상품화: 아동에게 성인과 유사하거나 노골적인 성적 이미지를 적용하여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 배스킨라빈스 광고 논란).
결론적으로 성 상품화는 성을 소비하고 통제하려는 사회 구조의 일부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왜곡된 성 인식을 확산시키는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아들과 대화를 하면서 첫번째로 느낀 것은, 사람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은 그와 달랐다. 사람은 인격체이고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특히 대중에 의해 단순히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은 아니라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그런 구조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했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인격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아들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아들에겐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보다, 대중의 욕구가 더 힘이 셌다. 더 힘이 센 것이 더 가치를 갖는 것, 그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라고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나부터가 거기에 대해 모호했던 것이다.
두번째로 느낀 것은, 성 상품화에 대해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이돌 문화에 그토록 익숙한데, 한번도 사람이 상품이 된다는 것에 대해, 특히 성을 상품화한다는 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한 것이다. 우리 세대는 처음으로 경험한 아이돌이 H.O.T, S.E.S, 젝스키스, 핑클과 같던 세대였다. 나는 아이돌이란 당연히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추거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의 사람이다. 하지만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돌이란 '예쁘거나 섹시한' 것이었다. 판단 기준 자체가 달랐다. 우리는 아이돌은 전부 성 상품화가 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 오랜 시간 예를 들어가며 토론했다. 토론 결과 모든 아이돌이 성 상품화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까지는 동의했다. 하지만 아들의 결론은 이랬다. 성 상품화도 결국 아이돌들이 스스로 자신을 상품화한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하는 당사자들이 문제인 것이지,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을 문제삼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우리는 어느새 어떤 거대한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얘기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 중 하나는 아들이 한 말이었다. 성 상품화에 대해 계속 얘기하다가 문득 아들이 답답하다는 듯이 꺼낸 말이었다.
"엄마, 그런데 어차피 우리는 모두 상품인거 아닌가요? 자기를 팔아서 돈을 버는 거 아닌가요?"
SNS, 유튜브 등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소비되는 세상 속에서 아들은 저도 모르게 자신도 상품이라고 받아들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아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 말을 잊지 않길 바라면서.
너는 절대로 상품이 아니야.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일을 해서 버는 것이고,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을 파는 것이 아니야. 노동을 하는 것이지.
자신을 판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남에게 내어준다는 의미야.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자신을 파는 것은 전혀 달라.
너의 몸과 마음은 너의 것이야.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그것을 함부로 다루게 놔두어서는 안돼.
아들은 토론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대답없이 한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후로 성 상품화에 대해서도 조금은 내 의견을 받아들여준 것 같았다. 우리는 뮤지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들이 듣기 좋아하는 노래들을 예로 들며, 이런 랩을 하는 가수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지 않냐, 그렇다는 것은 그 가수가 인격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이지 않냐. 하지만 어떤 가수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자기의 의견과 생각이 살아있는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한다.
그러자 아들은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아이돌들 중에서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음악을 하는 아이돌들이 많이 나온다면 이런 상품화 문제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러면 소속사와 마찰을 빚고 계약 위반 등의 문제로 큰 위기에 놓이게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러자 아들은 그래도 자기가 보기엔 그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그렇게 얘기를 끝맺었다. 의견 차가 컸고,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만큼 긴 얘기동안 많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끝낼 때쯤에는 얘기를 꺼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많이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성 상품화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상품화, 그리고 구조적 문제, 대중의 시선에까지 복잡한 얘길 많이 나눈 시간이었다. 사춘기 아들과 대화하며 나도 조금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