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작가의 시선에서 본 청소년 우울증, 자살 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집 막내는 요즘 도서부 활동에 열심이다. 도서부에서는 지정한 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 선정한 책이 백은별 작가의 『시한부』라는 책이었다. 요즘 인기있는 책인지 도서관에서 모두 예약 중이어서, 그냥 책을 구매했다.
구매하며 인터넷에서 살펴본 책 정보가 흥미로웠다. 작가가 2009년생으로, 작년에 나온 이 책을 쓸 당시에 15살이었던 모양이다. 작가의 나이라는 것이 제한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어린 작가는 처음 봐서 책 내용이 꽤나 궁금했다. 책이 다루는 주제도 평범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학생으로서 우리가 얼마만큼 불안하고 왜 죽음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지, 어른들은 모르는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막내는 학교에 갖고 다니면서 읽는 모양이었고, 나는 이번 주말을 틈 타 읽어보았다. 장편소설이라 분량이 300여 쪽이다. 하지만 문체가 간결하고, 흡입력도 좋아서 읽는 데에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작가가 주인공과 나이가 같아서, 등장인물 간의 대화나 심리가 실감 나게 잘 묘사되어 있다. 사춘기 소녀의 고민이나 친구관계의 미묘함 등이 어른의 시선이 아닌, 진짜 당사자의 시선으로 쓰인 점이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사소하지만 상처를 남기는 소문과 평판들, 은근한 따돌림, 뉘앙스로 표현되는 대화. 어른의 눈으론 겉으로 드러난 균열이 없기에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10대 아이들에겐 이런 일들이 발 밑의 지진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때때로 엄마인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이 상황이 힘든지 토로하곤 한다. 그럴 때면 아이의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꺼질 수 있는 촛불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은 요즘 10대 아이들의 그같은 내면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묘사한다.
한편 책에서 등장하는 부모들은 방관자 혹은 피상적인 인물로만 그려졌다. 주인공의 엄마는 주인공의 내면을 알고자 하지 않고, 상담이나 약물로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란다. 자신이 약물에 의존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과 가장 친했던 친구의 부모는 동반 자살을 했다. 어떤 친구의 부모는 아이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친하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도 숨긴다. 또 다른 친구는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진 않지만 새벽까지 부모님 욕을 하고 심각한 수준의 자해를 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대한민국은 11년째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여성가족부, 2023 청소년 통계)”이라고 한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얘기이지만, 부모인 우리들은 이 통계를 심각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의 마음이 쉽게 위태로워지고 다른 방편을 찾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는 남의 집 일이 아닐 수 있다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을 읽다가 마침 마주 앉아있던 첫째에게 “학교 친구들 중에 혹시 자해하는 친구 있어?“ 물어봤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네. 우리반엔 한두 명?“
“어떻게 알아?” 다시 물으니 “손목에 그은 상처가 많이 있어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첫째의 모습이 낯설었다.
몇 년 전,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밈도 있다. “나는 실패작이래”라는 밈이었는데, 나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천진하게 뛰어놀 초등학생들이 따라 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는데, 한동안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이 질문과 답이 떠올랐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원인을 찾더라도 그것을 해결하기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자살하는 현실에 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포기해도 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아이들의 삶을 포기한단 말인가. 부모인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매몰된 시각을 바꿔서, 아이들 마음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정말 아이가 봐도 될지를 한참 고민했다.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는 자살 사고, 자해 행동 등을 아이가 혹시라도 쉽게 생각하고 따라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읽기 시작한 책을 빼앗을 수도 없고, 도서부에서 굳이 이 책을 선정한 것에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아이보다 부모가 읽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혹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위태로운 난간 위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랐는지도.
책으로부터 내가 받은 메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살고 싶다” 였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살고 싶다는 것을 마지막에서야 깨닫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걸 느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계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는 계절을 맞이하고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는 그 마음이 ‘살고 싶다’의 다른 표현이 아니면 무엇일까.
책을 덮고서 나는, 혹시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아이들에게 글의 힘을 빌려 내 얘기를 전해주고 싶어졌다.
얘들아, 아줌마도 사실은 너희만 할 때에
죽고 싶었던 적이 있어.
너희가 지금 겪고 있는 것처럼,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불행 속에 있을 때였어.
죽어서라도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죽어서 내가 겪는 고통을 알리고 싶었어.
그런데 어떤 영화에서 그러는 거야,
인생은 초콜릿상자와 같다고.
무엇을 고르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래.
그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만 살아보자고 생각했어.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말이야, 살자고 생각을 하니까
정말 거짓말처럼 내 인생에 다른 일이 생기더라?
다른 맛 초콜릿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불행은 전체 인생에서 작은 일부분이었던 거지.
봄에 벚꽃이 핀 걸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드니?
여름이면 바다에 가고 싶어지고?
가을이면 괜히 싱숭생숭해지고?
겨울이면 눈을 기다리니?
그럼 너는 살아야 해.
그 모든 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거든.
계절과 함께 1년씩 더 살아내고, 그렇게 계속 살다 보면
어느 날엔가 정말 거짓말처럼 살아있길 잘했다는 그런 날이 반드시 와.
정말 반드시 와.
그러니 우리 함께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