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와 공간기획_250710
펜스너머 짓고 있던 거장 피터 줌터의 공간
3년 전 업무로 LACMA(LA 뮤지엄)를 찾았을 때
느꼈던 부러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작품집에서나
마주하던 렌조 피아노의 건축과 공간을 걷는 경험도
물론이지만, 거장의 공간에 전시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지는 일이었죠.
어느 도시에 건축 거장이 디자인한 미술관과 함께
유명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간 자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경험과 함께 모티브가 되어 또 다른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선순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죠.
놀라운 것은 LACMA의 한 편에 둘러쳐져 있었던
거대한 펜스였습니다. 바로 '건축가들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거장 피터 줌터의 새로운 미술관이 대규모로
공사중이라는 것이었죠. 설레임과 함께 큰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오픈 뒤 여기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그 몇년이 지난 지금, 멀리서 선 공개 소식을
들으면서도 그 때 느꼈던 아쉬움이 기억납니다.
단순함으로 압도하는 공간, 공포스러운 엔지니어링
선 공개된 피터 줌터의 신작,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는
그 이미지 만으로도 압도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전에 CG로 보던 이미지 보다도 더 거칠고
육중한 덩어리의 슬래브들이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펼쳐져 있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과거의 생명체
화석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거대 공포증'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만약 저 건축물과 공간을 마주하면
감동을 넘어 오히려 콘크리트 덩어리의 압도적
스케일에 무서움까지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엔지니어 분야의 분들께는 또 다른 의미의
공포심을 안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흔히 말하는 '마감재'가 보이지 않는 건물입니다.
사람이 건물에서 살 수 있도록 환기, 냉난방을 불어
넣어주고, 움직이고 불을 밝히는 전기를 흐르게
해야하는데 이 모든 것들을 감출 곳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큰 공간을 덩어리로만 보이게
하는 이면에는 수많은 엔지니어의 고민과 피땀이
녹아 있을 것입니다.
막대한 기부와 자본의 힘, 거장의 캔버스를 펼쳐주다
피터 줌터는 '건축가들의 건축가'라고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동경과 찬사를 받는 거장입니다.
상업적 프로젝트는 절대 맡지 않고, 진행한 작품들
하나하나를 구축하는 방법 자체가 마치 성자가 거치는
고난의 수행과정을 보는 것과 같이 고된 길을 택합니다.
나무를 엮어 거푸집을 만들고, 일부러 하루에 조금씩
벽을 타설해 켜를 만든 뒤 거푸집을 태워 공간을
완성한 클라우스 채플은 누가 다시 저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싶을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 역시 극도의 단순함과 스케일을
완성하기 위한 엔지니어링을 보면 '거대한 클라우스
채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이를 완성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자본이 있겠죠.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를 조성하는 데에는 6억 5천만
달러, 한화로 8,936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
되었습니다. 이 중 1억 5천만달러인 1,720억원을
자본가 데이비드 게펜이 기부를 했습니다. 상상하기도
힘든 자본을 기부한 그의 이력 역시 대단합니다.
슈퍼리치이자 슈퍼 컬렉터인 그를 여태 잘 몰랐다는
것도 부끄럽지만, 그의 천문학적인 기부액 앞에서 그저
숙연해지기만 하네요. 작은 가게로 시작해 자수성가
하게 된 어사일럼 레코드, 그리고 드림웍스의 창립부터
편집증적일 정도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집념까지
그의 행보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시나리오로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이룩한 자본과 기부가
피터 줌터라는 거장이 공간의 새 역사를 그리는
캔버스를 펼쳐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죠.
걸작 속에서 깊어지게 될 도시와 사람들의 이야기
우연하게도 이전 포스팅에서 '공간이 단순해지면
이야기가 깊어진다'는 제목의 레베카 베이 마리메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
바로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부러운 것은 거장의 갤러리 공간 하나 만이 아닙니다.
이미 이전의 LACMA만으로도 방문했을 때 도시에
이러한 공간과 그 안의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부러움이 가득했는데, 이제 또 다른 역사가 이뤄지려
합니다. 서울에도 물론 무수히 많은 공간이 들어서고
귀감이 되는 장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예술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데도 다른
도시를 부러워 하는것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거대 자본과 기부, 그리고 독보적인 거장의
공간 걸작을 보며 어쩔 수 없는 부러움이 샘솟네요.
스스로 부끄러울 만큼의 기부를 하고 있으면서
누군가의 선의를 바라는 것도 우습겠습니다만,
송현동에 지어질 이건희 기증관(제제합 스튜디오)
처럼 우리 땅에도 많은 이들의 삶을 새롭게 그려줄
좋은 공간들이 들어서기를,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를
보며 기대해 봅니다.
1_선 공개된 거장 피터 줌터의 신작,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
2_비야케 잉겔스, '땅의 균열'을 모티브로 코펜하겐 3대 광장 설계공모 당선
3_건축상이 전하는 지속가능한 이야기, 오벨 어워드
4_오설록과 조민석 건축가가 만든 제주의 숨은 보석, 티스톤 셀러
5_'25년 하반기 주목받는 세계의 미술관 4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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