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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서울에 필요한 것은, 용기! 일단 저질러

무식함과 용감함의 사이에서 우리 부부의 결단

by 한고운

매사에 꼼꼼하게 계획하고, N개의 대안을 떠올리며 철저하게 변수를 대비하는 ESTJ인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 바로 강릉 이주 추진이다. 물론 전혀 일탈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타고난 성격상 즉흥적이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은 웬만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편이다.


어쨌거나 서울을 벗어나겠노라고 멋있는 척, 용기 있는 척 말했지만 수백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제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은들 이게 어디 보통 일 인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갔다. 그러다 어느 날, 세계적인 심리학자 피터홀린스의 <어웨이크>라는 책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

당신이 편안한 삶에 만족하고 있는 사이, 좋은 기회들은 허망하게 사라진다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였다. 완벽한 맞춤 처방을 받은 기분이고도 할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시뮬레이션 돌려봤지 다소 수동적인 태도였기 때문이다. 살던 집이 빠져야 움직일 수 있기에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집을 내놓기는 했었다. 하지만 거의 일 년 가까이 적절한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당시 부동산 시장은 매매가 얼어붙은 상황이라 도통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재빨리 다른 방안을 찾아야 마땅했거늘, 왜 우리는 세월을 낭비했을까?


"인생은 모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에 힘입어 플랜 A에서 플랜 B로 변경! 다시 서울로 돌아올 일체의 여지도 남기지 않으려면 무조건 매매를 해야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접고, 최소 2년만 이라도 강릉에 살아보기로 했다. 다소 허망하게도 집을 전세로 내놓자마자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진작에 이랬을 것을. 그 후로 강릉행이 순조롭게 추진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막상 강릉으로 이주한 후 이런저런 난관을 만났을 때는 어웨이크 책의 저자의 멱살이라도 쥐어 잡고 따지고 싶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잖아요. 책임지라고요!" 그래도 그때 제대로 은혜받고 설득된 덕분에 지금의 우리 가족의 강릉 라이프가 시작된 것 이기에, 저자의 공이 크다는 것은 인정는 바.


이제 더 이상 강릉행을 미룰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강릉 이주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떠올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야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후회도 없을 테니까.



<무조건! 2024년에는 강릉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


1.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가 적기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니, 금방 중학교 입학이다. 주저주저하다 빨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흐지부지 될게 뻔하니 무조건 중학생이 되기 전에 한 걸음 떼야한다. 그렇기에 2024년은 우리에게 데드라인임이 틀림없다.


2. 보다 쾌적한 주거 환경에서 살 수 있다.

주택 시세가 서울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라 40평대로 충분히 갈아타기 가능하다. 당연히 1인 1방도 쌉 가능. 화장실이 2개인 집에 살아보는 게 소원인데, 드디어 성취될 것인가! 삶의 질이 엄청나게 향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커진다. 흙을 밟고 만질 수 있고 층간 소음 스트레스도 없는 단독주택이라면 금상첨화.


3.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업을 시작해야 유리하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 앞으로 50년도 더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아직 에너지도, 체력도 남아있을 때 인생 2막을 대비해야 한다. 남자 나이가 50세를 넘어가면 도전 앞에서 주춤하게 된다고 하니, 그전에 뭐든 용기를 내어 시작해 볼 필요가 있겠다.


4. 현실 도피처가 필요하다.

회사생활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남편은 물론이고, 나도 점차 서울살이에 지쳐간다. 교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봉사활동 치고는 너무 과중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찌 보면 하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핑계가 멀리 이사 가는 게 아닐까? 때 마침 첫째 아이도 학교에서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사교성 만렙인 둘째 아이만 우리 집에서 멀쩡하구나) 아무튼 이참에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리셋해보고 싶다.




과연 아무 연고 없이 강릉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오로지 믿을 구석이라고는 남편 밖에 없는데. 하지만 서울에 있으나, 강릉에 있으나 어차피 사이가 안 좋을 거라면 일단 같이 모험을 떠나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는 가끔은 무식하고 과감했다. ENFP인, 그러니까 외향적인 것 말고는 정 반대의 성향인 남편의 영향을 받을 탓인지 부부가 의기투합하여 가끔 엉뚱한 짓을 벌였다.


소소하게는 신혼부부 시절, 자동차가 없었던 당시 자녀를 소망하며 다짜고짜 <baby in car> 차량 스티커부터 샀다. 아이도, 차도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간절했던 소망이 순차적으로 실현되었다.


집을 살 때가 용감 무식의 끝판왕이었는데, 부동산 상황이고 뭐고 투자와 관련된 아무 지식도 없이 아이들 초등학교 근거리의 아파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호기롭게 거래를 성사시켰다. 뒤늦게 중도금이라는 존재를 알고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하지만 천사 같은 매도인을 만났고, 중도금을 말도 안 되게 적은 비용으로 배려해 주셨다. 덕분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 물론 이 마저도 친정 부모님께 2~3주간 급히 일부 비용을 빌릴 수 있어서 가능했다. 부모님은 긴급 자금 마련을 위해 예정에도 없는 펀드를 중도 해지하며 몇 백만 원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손해를 감수하셨다는 후문.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그동안 전세만 살아봐서 이런 절차를 알 턱이 있었겠냐며 당당했지만, 우리의 미숙한 대처에 친정 부모님은 과연 너희들이 어른이 맞냐며 어이가 없어하셨다. 모든 게 다행히도 해피엔딩으로 끝났기에 망정이지,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하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말하기를, "넌 결국 언젠가는 어떻게든 강릉에 내려갔을 사람이야. 서울에 있었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걸? 너무 잘 한 결정이니, 그 용기 있는 결단을 응원해." 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혼란스러운 생각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다.


그래, 그동안 우리가 용감 무식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이번에도 미친 척 한 번 사고를 쳐보자.

전기레인지를 사용할 때 종종 들리는 "적합한 용기인지 확인해 주세요"라는 멘트를 들을 때마다. 우리의 판단이 과연 무모한 도전일까, 용기 있는 선택일까? 내내 고민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용기(勇氣: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가 그 용기(容器: 물건을 담는 그릇)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전자의 의미로 들렸다.

KakaoTalk_20250822_150626803_01.jpg 저울에서도 <용기> 버튼을 볼 때 마다 깊은 찔림이


강릉에서 거주할 집을 알아보고 이삿날을 잡는 등 막연했던 꿈이 점점 구체적으로 현실이 돼 갈수록 자꾸만 불안했다. 어떤 계획이든 일단 추진하면, 그 일이 성공이든 실패든 어떻게든 결과물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1년 반 정도가 흐른 지금, 용기를 내서 강릉 이주를 실행한 후 뒤늦게 깨달은 세 가지.


-남들이 안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미세먼지 따위가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강릉행을 말렸을 것 같다. 굳이 모험이 다가 아니라고, 가족들과 사랑하는 지인들과 알콩달콩 보내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설득하면서.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지금도 "왜 우리 어쩌다가 강릉에 왔지?"라며 우리의 큰 결정에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아무튼 모르겠고, 우리 가족은

이제 더 이상 서울시민이 아니고,

강원도민이 되어 보는 거야!!!



>> 덧붙이는 말

자영업자에게 잔인한 7말 8초에 패기 있게 주 2회 글 발행이라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던 저를 용서하소서. 숨만 쉬고 살기에도 정신없었던 나날이라 도통 글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평균 노동시간은 매일 기록 경신하고, 두 아이들은 여름방학이라 수면 시간도 확보할 수 없는 상태로 허덕였습니다. 앞으로는 꾸준히 발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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