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이란 바로 이런 상황
강릉으로 이주를 결심하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주거지를 옮기는 것이 1순위 해결과제였다. 이사 전 자잘한 사건들은 있었으나 딱 하나 빼고는 도통 기억이 안 난다. 이 한방에 너무 세서 다른 것들이 잊힌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리 타격감이 있는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웬만한 일은 기억해 내거나 혹은 메모라도 해 놓는 편인 치밀한 내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에피소드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거나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사 전의 사건은 바로, 믿었던 세입자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이다. 우리가 살던 서울의 집은 신혼부부가 딱 살기 좋은 컨디션의 전세 매물이다. 여러 팀이 눈독을 들였지만,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모 선생님으로 최종 결정했다. 워낙 인품도 좋으셨고, 아이들이 잘 따르던 선생님이셨기에 나름의 우선권을 제공했다.
굳이 가계약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미 신뢰 관계에 있으니까. 그래서 철석같이 믿고 여유 있게 강릉에 거주할 집을 알아본 후 그쪽도 곧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사건 발생.
그 선생님이 몇 주가 지나고서 갑자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유는 융자금이 있는 매물이라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우리가 볼 때 융자금은 다른 집에 비해 귀여운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쪽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았나 보다.) 애초부터 전세보증보험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음에도 소용없었다.
그나저나 보름은 지나서 뒷북이라니, 참으로 난감했다.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선적으로 기회를 드린 건데 왠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고, 무엇보다도 강릉에서 살 집의 계약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자금 흐름에 차질은 물론이거니와 이삿날과 전학 일정 등등 이러다 모든 게 틀어져버릴 위기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강릉행을 막는 신의 계시인가'라고도 잠시나마 생각했지만, 이에 무너질 수 없지. 주어진 시간 안에 다시 부랴부랴 다른 세입자를 구하느라 온통 정신이 팔렸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꼼짝하지 못하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정리 정돈된 집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마음 편히 어디 멀리에 나가지도 못하는 것도 여러모로 스트레스였다. 서울에서 남은 하루하루가 소중한데, 공인중개사 연락만 기다리며 5분 대기조로 집콕하는 꼴 이라니.
야속하게도 강릉집의 계약일은 점점 다가왔다. 마음이 까맣게 타버려 재가 될 지경에 이를 때쯤, 바로 하루 전날 극적으로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났다.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역시 인생은 이번에도 내 뜻대로 풀리질 않음을 또 한 번 경험했다.
인생의 큰 교훈,
집 계약할 때는 아는 사이고 뭐고 무조건 가계약금은 필수!
이사 후가 진짜 게임의 시작이었다. 하루하루 심심할 틈이 없이 각종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에피소드 #1. 미세먼지의 습격
서울에서 미세먼지 앱을 보면 강릉은 매번 <미세먼지 좋음>이더니, 나쁨, 그것도 새까맣게 뒤덮인 최악의 단계인 <매우 나쁨>이었다. 현타가 밀려왔다. 청정지역이라더니,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무리 황사 시즌이라지만 왜 하필 우리가 이사오자마자 이러는 걸까. 반갑지 않은 미세먼지는 며칠 동안 기승을 부렸다. 이사 후 짐정리를 하며 마음 편히 환기를 하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먼지가 폴폴 날리는데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했다. 아 내가 이러려고 강릉까지 온 게 아닌데...
에피소드 #2. 장거리 이사의 후폭풍
그동안 이사를 하며 가전제품 혹은 가구가 파손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먼 거리를 달려오느라 그런지 세탁기 고장에 이어 책상 파손까지 발생했다. 이래 저래 울고 싶었다. 첫째 아이의 책상과 서랍장은 일체형이었거늘, 이삿짐센터에서 굳이 분리시키고야 말았다. 급한 대로 대충 수리를 받고, 일부 비용을 보상받았다. 비록 구매한 지 1년도 채 안 된 책상이었지만, 그래도 엄청 비싼 가구는 아니었으니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세탁기. 멀쩡하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고장이 난 것이다. 바로 제조사에 A/S 접수를 했지만, 일주일 후 방문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리 기사님이 영동지역(이 얼마나 광활한가! 서울은 지역구별로 촘촘하게 나눠져 있거늘)을 담당하고 있어서 당일 혹은 다음날에 출동할 수 있는 상황이 도저히 아닌 것이다. 꼬박 일주일을 빨래를 이고 지고 차에 싣고 빨래방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일상에서 당연했던 세탁기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지만.
에피소드 #3. 단독주택 적응기
그토록 꿈꾸던 단독주택으로 왔지만 소소한 일들이 끊임없었다. 마당에 무단 침입하여 꽃나무를 구경하며 한참 동안 사진을 찍는 주민으로 인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때 마침 봄 시즌이라 자동차는 물론이고 바비큐 그릴, 자전거까지 송진가루와 꽃가루의 콜라보 어택도 어질어질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위치한 우리 집은 도로가 좁아 공사를 한창 계획 중인 분위기였다. 강릉시 관계자들과 마을 통장님의 잦은 시찰이 이어졌고, 우리 집 마당을 관통하여 길이 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불안감마저 들었다.
뿐만 아니라 마당에 죽은 새와 쥐를 발견하며 경악하기 했고, 샤워호스를 교체하다가 배관이 오래돼서 그런지 물이 줄줄 새서 급히 배관 수리를 받아야 했다. 아, 아파트 시절이 세상 편했구나.
에피소드 #4. 무한 병원 진료 대기
서울에 비해 구미에 맞는 병의원을 찾기도 꽤 힘든 일이었다. 아이 진료를 위해 새로 찾아간 병원에서는 초진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진료를 받기 까기 웨이팅 2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모르고 아무 준비 없이 갔던 내가 잘못일까? 아이들은 몸부림이 났고 이게 뭐냐며 갖은 원망을 들어야 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주차비가 나와 당황스럽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강릉은 서울과 달리 일부 시내 지역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서 주차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유료 주차장이라고 해도 30분에 1,000원 꼴)
아끼던 전기포트의 사망, 야구르트 아주머니의 만행(숨이 막힐 정도의 지나친 호구조사, 본인 머리 펌 하느라 늦게 배송한 후 일체의 사과도 없는 뻔뻔함) 등은 웃고 지나갈 수 있다 치더라도 참 많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들이,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듯 발생한 일이기에 더 이상 속상해하지 않기로 했다.
라며 정신 승리를 외쳐보았다. 내가 한 선택인데, 누굴 탓하겠는가? 이 정도의 사건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서울을 떠나질 말았어야지!
모든 것을 흐르는 시간에 맡겨보기로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들이 펼쳐지려고 하는 걸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