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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없이 살 수 있을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살게 되는 마법이란!

by 한고운

어느새인가부터 새벽배송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에 깊이 침투하여 의존도가 높은 서비스라는 사실. 서울에 살면서 새벽배송은 당연하고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최소 1박 2일이 소요되는 택배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집 앞까지 초고속으로 배송되는 이 편리한 물류 시스템이란! 늘 감탄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신나게 주문을 해댔다.


땅 덩어리는 작고, 인구는 몰려있어 촘촘한 물류망이 구성된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 혹은 조급함이 반영된 결과물이었을까? 미국이라면 절대 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특급 배송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에 소비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배송 서비스를 향유했다.


새벽배송 업체의 근로자들이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고, 휴게 시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고된 현장, 그리고 종종 붉어지는 노사갈등을 비롯한 그 뒷 배경의 문제점은 종종 뉴스에서는 봤지만 크게 여의치 않았다. 강 건너 불 보듯 그저 남의 일로 치부했다. (나의 옹졸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반성한다) 오히려 나의 소비가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시장 확대에 기여할 수도 있다며, 당한 소비를 하고 있다며 자기 합리화시키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단한 착각라고 인정하지만.




"엄마 나 내일까지 준비물로 리코더를 가져가야 해요."라며 전날 밤에 아이가 다급하게 이야기한들 당황할 필요 없었다. 클릭 몇 번면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문 앞에 도착하니까. 동네 문구점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온라인은 더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구매자들의 후기도 볼 수 있고, 다른 제품과 사양을 비교해 가며 원하는 물건을 고를 수 있으니 선택의 폭이 넓었다.


식사를 준비할 때면 필요한 재료를 사러 시장이나 동네 마트를 가기보다 온라인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한꺼번에 결제하는 게 더 익숙했다. 온라인 구매는 금액도 대부분이 최저가인 데다가 프로모션으로 할인 쿠폰까지 주니 점점 오프라인으로 무언가를 구매하는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한다며 집 안에 많은 생활용품과 식재료를 쟁여두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대형 냉장고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만 적정량으로 구매하면 그만이었다. 물품의 재고로 필요 이상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 네 식구가 적은 평수의 집에 사는 데 새벽 배송은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새벽 배송은 당연히 전국에서 이용 가능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릉에 와서 제일 놀랐던 것은 바로 새벽배송 서비스의 상실이다.


"어머, 여기 로*프레시 배송이 아예 불가능한 지역인데?"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식재료가 새벽 배송이 안된다니,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강릉 이사를 축하하며 지인이 새벽배송 제품으로 선물을 보냈는데, 이곳은 서비스 지역이 아니하고 이야기하자 상대방도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그럼 이제 앞으로 어디서 장을 보고 어떻게 먹고살지 싶어 막막했다. 평소 한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국적 요리를 자주 만드는 덕분에 온라인몰의 폭넓은 제품 구색은 꼭 필요한데, 어떻게 이를 해결할 것인가? 로*배송 조차도 1박 2일이 아닌, 2박 3일이 걸리는 날도 허다했기에 일반 택배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면 당일 배송 가능한 대형 마트 이*트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면 될까 싶어 찾아봤다. 이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서비스 자체는 존재하긴 하나 배송 시간 간격이 충격적으로 길었다. 거의 오전, 오후 주 2~3회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좌절했다. 이건 뭐 냉동 제품이라도 있는 날에는 외출도 못하고 꼼짝없이 기다려야 할 판이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리한 새벽배송, 당일배송 없이도 살 수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인구수를 따져보면, 서울 932만 1,863명 VS 강릉 20만 6,881명이다. (출처: KOSIS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2025.08 기준)


그리고 면적은 서울 605.21k㎡, 강원은 무려 1만 6,830.77k㎡ 이 중에 강릉 1,040.8k㎡이다.(출처: KOSIS 한국국토정보공사 도시계획현황, 2024년 기준)


즉, 강릉의 인구는 서울대비 약 2.2% 수준이고, 면적은 강릉이 서울보다 약 1.7배가 더 크다. 고로 인구 밀집도 대비 수요와 공급을 감안한다면 강릉에 새벽배송이라는 서비스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쨌거나 강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제품은 택배로 받아야 하니 최소 2일 전에 주문해야 한다. 그래봤자 고작 하루 이틀 차이인데, 초반에는 이 마저도 적응하느라 진땀을 뺐다. 내가 게으르다는 게 문제였지만.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지금은 더욱 주말과 공휴일에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택배 마감 일시 이전에 주문을 완료하지 못하면 물품을 받을 수 없으니 비상사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초보 사장은 실제로 몇 번 겪어보고 된통 후폭풍을 맞기도 했다는 사실)


365일 이용 가능한 로*배송, 로*프레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서울 경기권의 카페 사장님들이 그저 부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어진 상황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아무튼 배송 일정을 염두해서 조금 미리 주문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는 것이 최선이고 혹시 모를 비상시를 대비하여 단가가 더 비싸더라도 오프라인 판매처를 알아두는 방법 외에는 방법이 없다.




새벽배송은 비록 없지만, 그 빈자리는 로컬푸드로 채울 수 있었다. 강릉에는 18개 매장을 가진 하*로마트가 있는데, 대부분은 로컬푸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강릉 지역에서 자란 건강하고 싱싱한 로컬 식재료들을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시중판매가 보다 훨씬 저렴해서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특급 상품이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또한 남대천에는 농산물새벽시장이 열린다. 새벽부터 분주한 상인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을 느낀다. 비록 모양이 덜 예쁘고, 크기도 작지만 밭에서 수확한 각종 야채와 과수원에서 재배한 과일 등을 보면 마음까지도 푸근해진다. 서비스로 몇 개 더 챙겨주는 끈끈한 정은 덤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갓 생산뜨끈한 두부 한 모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렇게도 행복할 수가 없다. 김치를 들기름에 볶아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함께 먹으면 그 맛의 조화는 기가 막히다.


제철에는 사천 연곡에 있는 딸기 농장에 가서 무농약 딸기를 한 아름 살 수도 있다. 블루베리, 복숭아 등 강릉에 큰 농장이 제법 있다는 사실을 강릉에 거주하게 돼서야 알게 되었다. 마트가 아닌, 현지에서 기르고 수확한 제철 과일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놀라웠다.




비록 몸을 움직여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마트나 시장에 방문해야 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충분히 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강릉에서의 삶이 불편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형 마트가 주차료 따위는 없고, 주차공간은 항상 여유롭다. 전자기기 서비스센터에 가더라도 예약 없이 당일에도 큰 대기 없이 바로 수리가 가능하다. 서울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연히 마음에 여유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효율성을 빌미로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았다. 더 편리한 점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조급해진 것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성질 급한 나로서는 다할 나위 없이 좋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급증을 가속화시켰던 게 아닐까 싶다.


새벽배송, 당일 배송 등의 발 빠른 서비스는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물음표를 던져본다. 누군가는 이를 위해 야간타임, 새벽타임 근로라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밤낮이 바뀌는 일상이 지속되면 건강에도 악영향이 있을터. 물론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점, 물류센터의 빈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배송할 때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서비스의 주축인 근로자들을 보면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일 테고, 귀한 자녀들일 텐데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든다.




여전히 지금도 온라인몰을 통 식재료 구매를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다. 강릉의 초대형 마트를 눈을 씻고 뒤져봐도 또띠아 하나를 찾기 어려울 때도 있어 원하는 제품을 찾으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그에 반해 온라인은 또띠아의 구색만 봐도 통밀, 우리밀, 우유 첨가 등등 다양하게 갖춰져있지 않던가.) 특히 여름철에는 보냉 스티로폼 박스에, 냉매와 드라이아이스가 켜켜이 쌓인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과연 나의 소비는 환경적인가?를 자문한다면 빵점에 가깝기 때문이다.


강릉 이주 후, 새로 구매한 가구를 온전히 배송받는데 거의 1달이 걸렸었다.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복합 쇼핑몰은 아예 없고, 밤에 운동하러 갈 곳도 변변치 않다. 대중교통의 배차 시간은 서울과 비교가 안되게 불편하다. 그야말로 슬로 시티(slow city)이다. 하지만 이런 강릉에는 서울에 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바다도, 소나무숲도 있기에 위로가 된다. 그래서 모든 불편한 것을 이겨낼 수 있나 보다. (엉뚱하게도 자연환경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로*배송이랑 모*하우스 매장만 있으면 땅끝 마을 해남이라도 나는 어디든 살 수 있어!"

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멋쩍은 웃음이 절로 난다. 새벽배송이 없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강릉 이주는 실행하지 못하고 결국 마음속의 로망으로만 끝났겠지?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어쩌면 다행이다 싶다.


강릉살이 527일째인 오늘, 여전히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고 적응할 것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강릉에 오길 잘했다 싶다. 그리고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강릉만의 장점을 더욱 발견하고 누리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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