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서 시작된 강릉 라이프, 득과 실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우리 가족이 끝까지 고집했던 것은 바로 단독주택이다. 바람대로 결국 바닷가 근처의 아름다운 단독주택을 만났다. 첫눈에 반했던 것은 아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의 황량한 겨울의 어느 날, 하필 비까지 내릴 때 집을 구경했었으니 짐작이 되셨으리라.
게다가 한동안 집이 비어있던 터라 다소 어수선했다. 심하게 넓은 마당을 보며 "과연 우리 부부가 이 집을 제대로 관리하고 살 수 있을까?"싶어 막막한 기분이었다. 마음속으로 '이 집은 아닌 것 같다'라며 확고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왜 이리도 까칠했을까.)
남편은 정 반대였다. 마치 이상형을 만난 듯 입에 귀가 걸렸다. 이미 마음은 벌써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는 듯, 이미 낙점해 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여행 와서 일주일 투숙하는 게 아닌, 진짜 삶이 시작되는 보금자리니까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했던 단독주택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망설여졌다.
원하는 사양의 거주지를 찾기 위해 아파트부터 단독주택까지 10여 곳 이상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예산에도 적절하고, 집의 내외부 컨디션도 괜찮으면서, 지리적인 여건도 꼭 맞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다른 건 백번 양보한다 치더라도 크게 손 볼 필요 없이 당장 거주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대적인 수리가 불가피한 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단독주택은 어르신들이 최소 20~30년의 오랜 세월 동안 거주해 온 집들이었기 때문이다.
엑셀로 각 매물의 특징을 정리해서 비교해 보았다. 순위를 매겨보니 압도적인 1위는 단연 바로 바닷가 근처의 마당이 넓은 집. 누가 봐도 가장 뛰어난 컨디션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록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셈이다.
비록 구옥이었지만 내부는 전체 수리 되어 깔끔했고, 높은 층고의 거실과 정원이 잘 보이는 통유리창이 매력적이었다. 마치 고급 갤러리에 온 기분이랄까? 걸어서 5분이면 바다라는 점도 큰 장점이었고, 아이들이 다닐 초등학교도 도보로 근거리에 있어 나쁘지 않았다.
찬찬히 둘러보니 마당에 각종 꽃과 나무가 잘 관리된 집이었다. 마치 수목원에서나 볼 법한 제법 큰 나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곳곳에 집주인댁의 애정과 정성 어린 손길이 묻어있었다. 비슷한 금액대라면 현지인들은 당연히 신축 아파트를 선호한다. 그래서 한동안 적절한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로 비어 있었나 보다. 어쩌면 애초에 우리 가족과 만날 인연이었던 걸까? 살다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 가족에게 꽤 괜찮은, 아니 최적의, 아니 오히려 과분한 집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주변 환경을 고려해도 은행, 마트, 카페, 편의점, 빵집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또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바로 길 건너편이라 외딴곳에 홀로 있는 집 보다 보안도 괜찮았다. 문제는 드넓은 마당. 마당이 넓으면 좋은 거지 왜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200평은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다.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전용 정원사를 고용해도 모자랄 판. 잔디 깎기만 하더라도 투입될 인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임대인이 잔디 관리는 집 앞 마당쪽만 적당히 해도 되며(잡초도 그냥 같이 키워도 된다며), 그리고 필요한 곳에는 편하게 못을 박아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우리의 강릉라이프를 지지해 주셨다. 다만 자신들의 바람은, 우리 가족이 강릉에 잘 정착하고 자녀들이 아직 어릴 때 바닷가 물놀이도 실컷 즐기며,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흙도 만지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쌩판 모르는 낯선 이에게 이런 다정함을 보이시다니!
아무튼 이런 생각지도 못한 집주인의 친절함에 무장해제 된 우리 부부는 '여기가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중요하고 급한 1순위 업무인 '주거지 결정' 미션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주인댁의 수많은 배려를 받았다. 심지어 이삿날도 잔금 치르기 하루 전에 미리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정도였으니까. 본인들도 서울에서 이주한 터라 초반에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깊이 공감하고 격려해 주신 덕분이다. 그 후에도 강릉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셨다. 앞으로 우리도 낯선 이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보겠노라 다짐했다.
아무튼 단독주택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그렇기에 단독주택에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장 매매 거래를 하거나 신축을 진행시키기보다 전세로 먼저 일정기간 살아보고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대 이상으로 좋을 수도 있고, 불편한 점들로 인해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세월이 지나고 확신이 들었을 때 액션을 취해도 늦지 않았다. 처음부터 주택 매매로 시작한다면 수많은 기회비용을 날릴 수 있다.
대략 1년 정도 단독주택에 살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 불편했던 점도 있었지만, 평생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찬란한 순간들이 더 많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계절을 보낸 경험을 토대로 좋았던 기억과 불편했던 순간의 썰을 풀어보려 한다. 단독주택의 사양이나 위치에 따라 컨디션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은 감안해 주시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니 참고해 주기를.
우리 집 전용 마당은 때로는 우리 가족에게 운동장이, 때로는 전용 바비큐 캠핑장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볼 때면 '단독주택으로 오길 백번 잘했다' 싶었다. 기세를 몰아 미니 축구 골대와 농구 골대도 설치해 주었고, 축구공으로 헤딩 연습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어 주었다. 날씨가 좋을 때면 해먹에서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텃밭의 로망은 손쉽게 이룰 수 있었다. 마당 한편에 방울토마토, 상추, 루꼴라, 바질 등을 심었다. 비록 초짜 도시 출신의 농부라 애초에 실패하기도 했다. 겨우 수습한 녀석들은 비록 수확량이 초라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열광했다. 서울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 집 마당에서 가능할 줄이야.
신나게 고기를 구워 먹을 때면 그야말로 행복감이 최고치를 찍었다. 냄새 걱정, 기름 튈 걱정 없으니 얼마나 좋던지. 오로지 바비큐를 먹겠다는 이유로 서울에서는 캠핑을 종종 찾아다녔는데,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후 더 이상 캠핑장을 갈 이유가 없었다.
운동 시설, 텃밭, 바비큐 공간이 마당을 점유한들 그래도 아직 한참이나 공간이 남았다. 농담 삼아, 우리 집 마당에서 100팀 정도 텐트 치고 수용할 수 있으니 간이 화장실만 하나 만들면 수련회도 가능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큼 원하는 활동도, 상상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도 마당이 있기에 뭐든 가능했다. 마치 만능비빔장 하나만 있으면 어떤 요리든 자신 있게 뚝딱 가능한 것처럼, 마당은 단독주택의 핵심이라는 사실. 삶의 질을 올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집콕만 해도 전혀 심심할 틈 없이 마당은 우리 가족에게 풍요로운 나날을 선물해 주었다.
계절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축복이다. 봄이면 매화꽃을 시작으로 벚꽃나무까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한 풍경을 매일 마주할 수 있다. 주방의 창문으로 보이는, 그래서 수시로 흐드러진 매화꽃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데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봄의 기운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쑥, 달래, 그리고 두릅은 우리 가족의 식탁을 향긋하게 장식해 줬다. 그동안 마트에서만 사 먹었던 농작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대문 앞에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겨 오고 갈 때마다 절로 미소가 나게 해 주었다. 5월이 되자 나무에서는 체리가 열렸고, 한 일주일 동안은 원 없이 실컷 체리를 따서 먹었다.
수줍은 듯 빨갛고 작은 야생 산딸기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른들도 이리 흥분하는데, 아이들은 더더욱 신바람이 났다. 매일같이 딸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수확하면서 조잘조잘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허브를 따서 고기를 구울 때 넣기도 하고, 모히또 등의 음료도 만들었다. 게다가 포도나무 역시 때가 되니 열매를 맺어 수확의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아무런 노력 없이도 때가 되면 마당에서 자라는 다양한 작물들이 결실이 맺힐 때면 자연의 순리에 감탄했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조물주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집주인 내외분이 이곳에 거주하실 때 성실한 수고를 해주신 덕분에 우리가 거저 누리는 혜택이었던 터라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눈이 올 때면 우리 가족 전용 초대형 눈 놀이터로 변신했다. 아이들은 눈을 쌓아 이글루처럼 만들기도 했고, 눈사람도 만들며 즐거워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하고 싶은 활동을 실컷 했다. 도시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경험들이 우리의 추억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파트에 살 때 가장 힘든 점 중의 하나가 층간소음이다. 새벽부터 늦음 밤까지, 쿵쿵 거리며 뛰는 소리를 내내 듣자니, 거의 청각 폭력 수준의 고통을 겪는 듯했다. 하지만 단독주택은 층간 소음이 있을 리가 없다. 단층으로 지어진 집이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물론 가끔은 고양이들이 지붕을 돌아다니며 들썩이는 소음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라 웃어넘길 수 있었다.
예전에는 층간 소음으로 불쾌하게 하루를 시작했다면, 단독주택에 오고 난 후에는 창 밖으로 들리는 평화로운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마음이 너그러워질 수밖에.
또한 아이들도 집안에서 마음껏 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파트에 살 때는 "조용히 해라", "뛰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 이 3종 세트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 없었다. 탱탱볼과 같이 가볍고 부드러운 공에 한해 집 안에서도 놀게 허용했고, 홈트를 하면서 뛰는 동작도 실컷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옆 집과 간격이 매우 멀기 때문에 밤늦은 시간에도 악기 연주도 가능했다. 리코더, 기타, 피아노 등 마음껏 즐기며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노래방 마이크로 열창도 가능했다. (아무리 단독주택이라 해도 당연히 시간대와 음량 등은 부모가 상식적인 선에서 제한했다.)
어쨌거나 소음이라는 이슈로부터 해방감을 얻으니 살 것 같았다. 최소한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도 아니었으니까. 에너지 넘치는 우리 집 초등학생 남매에게는 여러모로 단독주택의 삶이 이득이었다.
24시간 365일 오로지 나를 위해 비어있는 전용 주차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참 행복한 일이다. 아파트의 지긋지긋한 주차난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밤늦게 도착해서 주차 자리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이중 주차에 몸살을 앓을 필요도 없고, 차를 빼 달라고 연락하고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차에 있는 짐을 꺼내서 낑낑대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할 필요도 없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바로 도보로 몇 걸음만 이동하면 된다. 그리고 세차장을 갈 필요가 없었다. 마당의 호스가 있었으니까. 세차는 귀찮은 일이 아닌, 아이들과 같이 즐기는 일종의 놀이처럼 자리매김했다.
날씨가 궂은날에는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 눈 비 올 때는 지하주차장이 그리웠긴 하지만 그래도 여름철의 무더운 날에는 나무 그늘 찬스를 누렸다. 차량 외에도 자전거 4대도 전용 주차공간이 있다는 점도 편리했다. 차도, 자전거도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마당은 참 고마운 존재였다.
한마디로 손이 많이 간다. 수리를 해야 하는 일도, 손품이 들거나 노동력이 필요한 일도 자잘하게 많다. 특히 여름철에 잔디 관리는 보통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주일만 지나도 풀이 쑥쑥 올라오기에 방심할 틈 없이 제초기를 수시로 돌리고 잡초도 뽑아야 하는데,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깐깐하지 않은 주인댁을 만나 적당히 관리하는데도 꽤나 버거웠다.
그리고 우리가 살던 동네는 집집마다 설치된 태양열 기기로 온수를 사용하는 동네였는데, 태양열의 작동이 생각보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일단 여름에는 암막 가리개로 일부는 햇빛을 차단시켜야 했다. 그늘을 만들어주지 않았더니 뜨거운 물이 콸콸 필요 이상으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열과 배관상태도 신경 써야 한다. 우리 집은 문제가 생겨서 4~5월에도 엄청 추운 집에서 지내야 했다. 초반에 수리만 3번을 받고서야 그나마 정상화되었다. 덕분에 집 앞 철물점을 문 턱이 닳도록 수시로 드나들었다.
난생처음 가스보일러가 아닌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다 보니 불편함도 겪었다. 기름 재고를 확인해서 적정 수준을 유지하다가 인근 주유소에 연락하여 급유를 했다. 빈번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번거로웠다.
보안을 위해 CCTV를 설치하고, 해가 지면 어둑해지는 마당을 환하게 만들기 위해 조명등을 설치하는 일도 다 우리의 몫이었다. 아파트에 살 때 당연하게 누리던 혜택들이 단독주택에서는 다 우리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반기는 녀석은 바로 돈벌레. 맨손으로도 각종 곤충류를 때려잡을 수 있는 내공을 가진 나란 여자도 반복되는 벌레의 등장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단독주택에 산다면 벌레는 기본 옵션이요, 퇴치제 사용은 필수이다.
특히 마당과 가까운 창고 쪽에 더 빈번하게 출몰했는데, 세탁실을 드나들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모든 단독주택에서 겪어야 하는 난제이지 않을까? 어쩌겠는가 단독주택을 선택한 이상,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불편해하기보다 익숙해져야 할 일이다.
제 아무리 단열 공사가 잘 되고, 자연 채광이 좋은 집이라 한들, 단독주택은 아파트처럼 따뜻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그랬다가는 유류비 폭탄을 맞을게 뻔하니까. 물론 값비싸고 최신 자재를 사용한 신축 건물이라면 이런 어려움이 훨씬 덜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한겨울에는 외출할 때나 입었던 두둑한 기모가 있는 옷을 입고 지냈고, 양말도 꼭꼭 신어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익숙해지니 제법 지낼만했다. 오히려 겨울은 마음의 준비를 단디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버틸만했는데, 오히려 쌀쌀한 봄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분명 바깥은 꽃이 피고 온통 봄의 기운으로 물들고 있는데, 집은 겨울잠에서 깨어날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외벽과 가까운 화장실에는 온풍기를 설치하여 목욕 전 후에는 가동해 추위를 극복했고, 배관 이슈가 있었던 안방은 유독 온수가 잘 돌지 않아서 한동안 추위와 싸워야 했다. 정 추운 날에는 아이들 침대에 신세를 졌는데, 같이 살을 부대끼며 뒹굴거렸던 것도 돌아보니 추억이긴 하다.
그렇다고 수납장이 많다거나, 붙박이장이 있던 것도 아닌데 우리의 짐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텃밭 관리 용품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사들이는 물건들이 쌓여갔다. 거주했던 아파트보다 집의 평수가 넓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서울에서는 자전거를 탈 때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이용했기에 아이들용 자전거만 2대가 있었다. 하지만 강릉에서는 1인 1 자전거가 필요했고, 꽤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마당에서 쓸 거라며 남편이 나 몰래 하나둘씩 사들인 캠핑용품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에는 내 잔소리에 못 이겨 싹 처분했지만.
아이들의 놀거리를 핑계로 축구공, 농구공은 지천에 널려있을 정도로 여러 개가 뒹굴었고, 스케이트 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스카이콩콩, 훌라후프 등 각종 액태비티 용품들도 하나둘씩 추가되었다. 평소 버리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쌓여가는 짐을 보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앞둔 후에야 겨우 대대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단독주택의 삶은 불편한 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장점이 훨씬 많다. 훗날 자녀들과 마당이 넓은 이 집에서 살았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음에 충분히 감사하다. 그렇기에 아파트의 편리함을 포기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단독주택은 평생 한 번쯤은 꼭 경험해 보기를.
사춘기 1차전을 겪던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첫째 아이는 특히 단독주택이기에 가능했던 수많은 장점들을 누릴 수 있었다. 밖에 나가기 끔찍하게 싫어할 때면 마당에서 홀로 실컷 공을 차고 땀 흘리며 뛰어놀았고, 밤에도 실컷 좋아하던 기타를 집에서 칠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이때의 순간들이 그립다. 고생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찬란하게 빛났던 우리 가족의 단독주택 라이프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다.
지금은 부득이한 상황으로 다시 아파트로 복귀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단독주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도 실컷 심고 텃밭에서 자급자족하며 더 많이 자연을 누려야지. 그리고 지인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도 열면서 삶을 만끽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