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 한들 소신 있게 밀고 나가겠습니다
강릉행을 추진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근무지가 강릉으로 발령이 나서 부득이하게 이주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강릉에 거주하고 있다거나 뭔가 비빌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서울을 떠나야겠냐고 말이다.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과 다양한 기회를 왜 스스로 박탈해 버리는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음을 돌리면 안 되냐며 끝까지 말리는 분들도 여럿이었다.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참 고맙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소신 있는 입장은 다음과 같다.
해외로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별 걱정을 다 하는 것 같다. 강릉에도 멀쩡한 초, 중, 고, 대학교 다 있는데 말이다. 평소 신조 중 하나가 "깡촌 오지에서 살아도 될 놈은 된다."이다. 타고나기를 똑똑한 아이들은 굳이 환경을 탓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빛을 발하기 마련.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집 두 아이들은 딱 보통의 아이들이다. 고로 어디에 사느냐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대가 밥 먹여주는 시대는 일찌감치 종결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 살 때도 이미 대세에 역행하는 삶을 살았다. 맞벌이 시절에는 강남구에 살았다. 워킹맘으로 버티려면 그래도 회사가 근거리였어야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무렵 과감하게 동작구의 소형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다(그때는 퇴사를 하기도 해서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교생 100명 남짓 작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다.
그 동네 부동산 아저씨의 말을 빌리자면, "여기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모들이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다른 학교로 보내거나 죄다 이사해서 떠나는 게 보통인데 일부러 여길 오신다고요? 허허 이런 부부는 또 처음 보네요."라고 말하실 정도로 우리 가족은 나름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나의 시각으로는 전혀 달랐다. 세대수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아파트 단지지만 깔끔하고 쾌적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고, 도보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아름다운 산책로와 푸르른 공원이 이어지는 뒷산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언덕에 위치한 터라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야경은 또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모른다.
이렇게 큰 장점이 있음에도 단지 초등학교 재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지역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곳에서 일반적인 큰 학교에서는 누릴 수 없는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숲체험과 텃밭 활동을 통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고, 1인 1악기를 지원해 준 덕에 오케스트라도 활동하는 등 공부 외에도 훨씬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아쉬운 점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장점이 훨씬 많았다.
아무튼 중1, 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이들은 사교육 없이 지내고 있다. 끽해야 올해 초에 시작한 온라인 학습지 정도. 엄청난 소신과 철학이 있다기보다 애들이 딱히 원하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형편이 빠듯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굳이 벌써부터 공부에 목숨 걸게 하고 싶지 않다. 대입 시험까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장거리 마라톤을 단거리처럼 뛰다가 고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지쳐 쓰러지게 하고 싶지 않다.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각종 명강의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부와 배움의 기회는 열려있기에 어디에 사느냐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부라는 것은 동기부여와 목표설정이 중요하지 환경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좋은 대학을 강요하기보다 건강하게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부모가 너무 욕심이 없어도 문제이려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첫째 아이의 중학생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고 잠시 어질어질했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그까짓 성적표가 아이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다고 믿는다.
붉은 노을을 보며 자연의 경외심을 느끼고, 길가에 핀 들꽃에 눈길을 주며 감탄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길. 풀 한 포기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이왕이면 집안일도 척척 잘 도와주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던 우리 부부에게 사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직업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정년이 보장되고 근무지가 유연한 공무원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있다거나 전문직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그래도 남편은 꽤나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컨디션이 쭉 유지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런 생활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텐데, 위기가 임박해서 부랴부랴 새로운 일을 찾기보다 고생할 때 하더라도 딱 지금이 기회이다 싶었다. 아무튼 늘 기억해야 할 명언을 떠올렸다.
박수칠 때 떠나라.
대책 없이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남편은 업무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비록 나랑 안 맞아서 문제이지만). 어느 회사를 가든 우수사원상을 늘 휩쓸었고, 본업인 마케팅/ 홍보는 물론이고 디자인/ 사진촬영/ 영상 편집 등도 수준급이다. 어딜 가든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로 업적을 남겼던 직장인이었기에 새로운 곳에서 무엇이든 시작하더라도 별 두려울 게 없었다. 어떻게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단지 타이밍을 고려할 때, 나이 오십이 되기 전에 용기를 낼 필요가 있었다.
대안 1.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그림을 그린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고정적인 수입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에 밥벌이로는 부적합한 것 같았다. 현실은 냉혹하니까. 하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고 즐겁게 해주는 일은 맞으니까, 종종 취미생활로 하기로 했다. 주제가 여행이든, 강릉 적응기이든, 단독주택 살이든 뭐든.
대안 2. 숙박시설을 운영한다.
숙박공유업 플랫폼을 통해 강릉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단기 혹은 장기 임대업에 뛰어들어 본다. 디자인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남편에게 꽤 적합해 보였다. 여기에 친절하고 빠른 응대를 더한다면 꽤나 승산이 있지 않을까? 그동안 강릉을 수십 번 찾았던 여행객의 입장으로 가장 매력적인 장소를 찾을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청소와 정리라면 어디에 뒤지지 않는 내 성격과, 상대적으로 업무 시간이 짧다는 장점도 매력적이었다. 최소한 9 to 6처럼 매일 일정하게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실제로 숙박업에 적합한 매물을 구하기 위해 집도 몇 군데 보았다. 하지만 법적 규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운영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생각보다 초기 투자금액이 커서 망설이게 만들었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며 공급은 많아지는데 오히려 수요는 점차 줄어드는 시장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나고 보니 숙박업은 안 하기를 잘한 것 같다. 점점 침체되는 경기 속에 사람들이 지갑을 닫는 분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공유 숙박업 시장이 예전만큼 성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안 3.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든다.
결국은 콘텐츠가 답인 시대이다. 요새는 제품도 서비스도 수준이 비슷하기에 차별화가 되는 것은 요소는 바로 스토리. 하지만 말이 쉽지 콘텐츠라는 것은 시간과 양이 누적되었을 때 비로소 아웃풋이 나타나지 않던가. 우리의 콘텐츠에 열렬히 환영해 줄 구독자 혹은 팔로워를 확보하는 것은 단시간에는 당연히 불가능해 보였다.
일러스트는 AI로도 쉽게 대체가능해졌고, 여행이나 요리 등의 유튜버는 이미 차고 넘친다. 게다가 우리는 40대 아닌가! 20대의 젊고 예쁜, 그리고 날씬한 비주얼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에 경쟁력이 한참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보도자료에 실어도 될 만한 그럴듯한 사진과 고퀄리티의 릴스를 쭉쭉 뽑아내는 능력을 가졌다 한들 '우리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직 자녀가 없다거나, 한 10년만 젊었어도 도전해 봤을 텐데(라는 비겁한 변명을 해본다).
그렇다면 대행사를 차려서 외주를 받아 진행한다면? 아니지, 기껏 행복과 워라밸을 찾아서 강릉까지 왔는데 남의 일을 돕는 거 말고,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콘텐츠 제작으로는 당장의 생활비와 고정비를 해결하기에는 쉽지 않겠구나 싶다는 결론.
대안 4. 카페를 차린다.
먹는데 진심인 나는 요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홈카페를 표방하며 그럴듯한 비주얼의 디저트와 음료도 종종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나중에 카페나 하면 되겠네."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뱉었던 말이 현실이 될 줄이야.
아무튼 많고 많은 카페, 그중에서도 강릉이라는 여행지는 초대형 오션뷰 카페들이 즐비하다. 과연 우리가 경쟁력이 있을까?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우리 부부에게 한 지인이 웃으면서 던진 말, "카페만 안 하시면 돼요. 이미 차고 넘치거든요. 카페 창업은 망하는 지름길이에요." 순간 얼음이 되었지만, 우리만의 킥이 있었다. 비장의 무기랄까? 강릉의 특산음식 '두부'를 활용한 디저트, 두부티라미수 말이다.
유형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존재하면서 스토리가 입혀지고, 콘텐츠가 더해진다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결국 공유 숙박 운영을 제외한 대안 1,2,4를 적절하게 섞어서 실현하긴 했다. 아직까지는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혼자서도 잘 논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간절하게 확보하는 편이다. 종종 달리기 운동을 하는데, 러닝크루고 뭐고 혼자서 잘만 뛴다. 글쓰기도 독서도 클럽과 같은 곳에 소속되기보다 나만의 페이스로 적당히 즐긴다. 혼밥도 야무지게 잘 챙겨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 친구 엄마와도 그다지 사적으로 교류하고 지내지 않는다. 중요한 할 일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하루가 후딱 가니까.
어차피 최 측근들은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강릉에 와서 최애 멤버는 연 3~4회는 만났다. 내가 서울로 가든, 그들이 강릉을 방문하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소에 남편에게 별로 의존하지 않는 편이라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별 타격이 없을 거라 자신했다. 실제로는 강릉 라이프 초반에 생각보다 우울해서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아무튼 나야 동네 도서관, 노트북만 있으면 오케이다. 교회에서 사람들이야 사귀면 되고, 최소한 직계 가족들은 우리 가족을 만나러 올 테고. 정 얼굴이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도 하면 되고, 하다 못해 Zoom으로도 만나면 되지 않던가.
걱정 어린 시선과 다양한 질문을 받으며 그들의 논리에 설득되기보다 약간의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청개구리 재질 맞나 보다. 아무튼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내겠노라, 보란 듯이 멋지게 잘 지내겠노라 속으로 다짐했다. 미세먼지에서 벗어날 생각만으로도 이미 설렜으니까.
그리고 강릉에서 살면서 찬찬히 둘러보면 사업 기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막연하게 두려워하지만 말고 일단 첫 발을 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고 싶고 또 잘하는 분야를 찾기로.
당장 사표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분간은 주말부부가 되어 서울의 직장을 다니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KTX가 있어서 어찌다 다행인지. 주중에는 남편이 시댁에서 지내고, 금요일 밤부터 주말은 강릉에서 보내는 5도 2촌과 같은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현지 취업이라는 방법도 있을 테니.
오히려 복잡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나의 삶에 더 집중하고, 오롯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강릉에서의 새로운 삶이 기대되었다.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두렵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을테니.
이것저것 재다보면 겁이 나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느니 뭐라도 일을 저질러 보기로 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다양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며 도전의식을 잃지 않고 그렇게 강릉행을 힘차게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