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사장의 흔한 실수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강릉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겠는데? 이번 주말은 분명히 손님이 많겠군.'이라고 생각하면 정작 그 주말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내내 비가 오다니, 오늘 매출은 바닥이겠다.'라며 절망하는 순간 쉴 새 없이 손님들이 밀고 들어온다.
어떻게 이렇게 신중하게 판단하고 내린 예상을 매번 빗나가는 걸까? 우스갯소리로, 나의 수요예측은 똥촉이니 딱 생각한 반대로 하면 되겠다고 할 정도이다. 그래봤자 카페를 운영한 지 1년 4개월,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카페를 오랫동안 운영한 지인들도, 여전히 수요 예측이 제일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최소 3~4년은 겪어봐야 대충이라도 감이 온다고 하니, 카페도 개인사업도 처음 해보는 이 초짜 사장은 오죽할까! 아무리 계획적인 성향이고, 과거의 판매 추이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 본들 아무 쓸모없다. 마치 이런 나의 수고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매번 수요 예측은 엇나간다. 슬프도다! 아니 비통하도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식재료는 물론이고, 초과 생산을 해서 폐기하게 되는 경우 혹은 반대로 식재료 재고 부족으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양쪽 다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르는 피해는 당연히 고스란히 우리가 책임져야 할 몫.
커피와 같은 음료 메뉴야 그렇다 치더라도, 두부티라미수가 제일 골치 아프다. 티라미수의 특성상 하루 전날 만들어서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수요를 예측해서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문받는 데로 바로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도 있지만, 우리는 매장이 협소하고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생산과 판매를 동시에 하기 어렵다. 매장 운영시간인 11시~17시를 피해서, 그러니까 오픈 이전의 오전시간과 영업시간 이후인 저녁에 집중적으로 티라미수를 만든다.
또한 냉장고에서 반나절 이상 충분히 숙성을 거쳐야 풍미도 훨씬 높아지고, 수분이 날아가야 네모 반듯한 모양(마치 두부를 연상시키는)으로 자를 수 있다. 즉, 맛과 비주얼을 살리기 위해 즉석 생산보다 미리 사전에 생산하는 방식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일은 손님이 얼마나 올까? 두부티라미수를 몇 개를 생산해야 하지?"라는 고민은 해가 거듭되어도 여전히 난제이다.
관광객들이 90% 이상인 우리 카페의 경우, 당연한 소리지만 주말 매출이 주중보다 훨씬 높다. 주말을 이용해서 강릉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이라고 늘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벚꽃이 만발하고, 푸르른 5월과 같이 야외 활동하기 좋은 날에는 다들 바다로, 관광지로 몰려든다. 그래서 의외로 카페는 조용한 날도 있다.
거의 일주일 내내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특히 강한 돌풍이 불고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던 주중의 어느 날이었다. '오늘 장사는 100% 글렀구나.' 싶어 좌절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손님들이 끊임없이 썰물처럼 밀려 들어오더니 결국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티라미수가 솔드아웃 된 날도 있었다. 남편도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치 소나기가 퍼붓듯이 집중적으로 손님들이 몰려온 그날, 최단시간 최대매출을 기록했다. 여전히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강릉에는 매년 진행되는 제법 굵직한 행사들이 있다. 단오제, 커피축제 등의 대형 행사가 있는 시즌에 엄청난 관광객들이 강릉에 유입되지만, 이들이 카페로 발길이 이어지는 확률이 의외로 낮다. 쉽게 말해 평소 보다 카페 손님이 오히려 훨씬 적다.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유독 포장 손님들이 많은데, 집으로 복귀하면서 강릉의 특별한 추억을 담은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동 시간이 최소 3~4시간은 걸리는 분들이 대다수라 냉장보다 급속냉동 제품을 훨씬 선호한다. 포장 제품을 넉넉하게 준비한다 한들, 몰리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종종 냉매와 보냉 아이스팩이 부족해서 진땀을 뺀 적도 있다.
상반기를 떠올려보면, 일단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난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해안 지역은 일출 명소이기에 크리스마스 보다도 훨씬 대목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사장인 우리는, 오히려 이 날 패기 넘치게 1시간 늦게 오픈했다.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면서 마음도 다잡아보고, 아이들과 함께 떡국 한 그릇 먹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때 당시로서는 가족을 더 먼저 챙겨보겠다는 소박한 욕심이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다른 날은 몰라도 1월 1일의 경우 다른 카페나 음식점은 오히려 평소 오픈시간보다 당겨서 일찍 문을 여는 게 상식이거늘, 대세에 역행하는 우리의 이 엉뚱한 행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오픈 준비하는 시간부터 밀려드는 손님들 덕분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제 제발 손님들이 그만 왔으면.'이라는 배부른 투정을 했을 정도. 어쨌거나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 무식했던 에피소드였다.
5월 초반의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의 연휴 시즌에도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가면 돈방석에도 앉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제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원도 충원해야 하나, 슬슬 지점도 내야하나, 전기차로 바꿔야 하나 등등 야무진 꿈을 꿨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오제를 기점으로 매출이 뚝 끊기자 정신이 버쩍 들었다. 월급쟁이처럼 내내 꾸준한 수입이 있는 게 아닌,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는 매출을 경험하며 섣불리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야겠다 싶었다.
하반기에는 여름 성수기라는 특급 이슈가 있었다. 원래도 카페는 6~8월에 매출이 높다고 하는데, 강릉은 여행지이다 보니 휴양객들이 차고 넘쳤다. 특히 초당동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은 꼭 방문하는 지역으로, 두부맛집들이 즐비해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도 북적였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차량 행렬로 거의 대부분의 거리는 마비 수준일 정도였으니까.
다행히도 우리 카페도 덩달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다. 영업시작도 전에 이미 몇 팀이 대기할 정도로 오픈런은 기본이고, 하도 빨리 솔드아웃이 돼서 팀당 두부티라미수의 구매 개수를 제한할 정도였다.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서 최대 생산을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지쳐갔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매장을 운영하는 일도 어느 하나 만만치 않았다.
8월 15일 광복절을 기점으로 이 기세가 조금은 꺾어질 거라 생각했으나 웬걸! 오히려 더하면 더 했지 우리 매장을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는 왜 이런 현상이 벌여졌는지 조차도 몰랐으나 나중에 원인 파악을 해보니, 검색엔진에 우리 카페가 어쩌다 보니 노출이 최적화가 돼서 <강릉 카페> 혹은 <강릉 맛집>이라는 키워드로 찾았을 때 첫 페이지에 보여진 결과였다.
키워드 광고, SNS 광고는 타 업체에 비해 정말 미미한 수준인 최소한으로만 운영했을 뿐인데, 이런 쾌재를 얻을 수 있다니 그저 놀라웠다. 진심 어린 리뷰를 남겨주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와 준 감사한 고객들 덕분이다.
아무튼, 우리 부부와 아르바이트생 1명으로 그 치열한 여름 성수기를 지나왔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성실하게 일해준 고마운 히어로(아르바이트생을 부르는 우리만의 문화)에게 아직까지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수요가 폭발할 줄 알았다면, 인력을 더 충원했을 텐데 내 알 턱이 있었나!
또 하나, 예측대로 되지 않던 게 올해 추석 연휴였다. 여름 시즌에 혹독하게 신고식을 한 터라 히어로즈들을 2인씩 배치하여 근무 스케줄을 편성했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개천절과 한글날,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한 자율휴업일까지 붙이면 10일이나 되는 기나긴 역대급 연휴이지 않았던가! 기대가 컸던 걸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연휴 초반과 후반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하긴 내 주변 사람들만 보더라도 해외여행을 떠난 가족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연휴가 길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연휴 전후로는 매출이 미미했고, 중간에 한 4~5일만 그나마 흡족할만한 매출을 기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에 하루 정도는 쉬는 거였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휴일도 반납하고 10일이 넘도록 내내 달렸던게 후회되었다. 제때 택배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최대 판매치로 예상하여 엄청난 물량을 주문했고, 도착한 식재료와 각종 부자재를 쌓아두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날로 지쳐갔고 몸이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 남들은 휴일이라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간다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내내 바쁘기만 하다며 아이들의 불만도 쌓여만 갔다. 어찌나 미안하고 현타가 오던지....
이로써 또 하나 얻은 교훈,
-제 아무리 황금시즌인 연휴에도 쉬는 날은 반드시 지키자
-연휴 전후로 시간을 확보해서 충분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자
설 명절이고 추석 명절이고 긴 연휴 직전 주와 직후에는 확실히 매출이 낮았다. 어차피 연휴에는 고향에도 내려가고, 가족들과 여행도 하는 등 미리 스케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그 전후로는 움직이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 연휴 이후에는 미친척하고 4일을 내리 쉬며 서울에 가서 가족들과 실컷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그리고 내년 설 연휴 직전주에는 아이들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여전히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경험치가 조금씩 쌓이다 보니 이전보다는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매번 느끼는 거지만 카페 운영, 이거 참 쉽지 않다. 언제쯤 척척 대응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내공을 뽐낼만한 궤도에 오를 수 있으려나? 그날까지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지내고 감사한 마음으로 잘 버텨내야겠다. 그리고 요동치는 매출에 감정이 동요되지 않도록 평정심을 잘 유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