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여유 있는 주말에는 종종 아이들과 함께 요리 활동을 한다. 특히나 날씨가 안 좋을 때, 집콕 놀이로 시간을 보내기에 이 보다 더 좋은 활동이 없다.
오늘은 레몬청을 담그기로 한 날! 앗 그런데 비상이다. 레몬청을 담아둘 유리병이 절대 부족하다. 분리수거하는 날 공병 좀 몇 개 아껴둘걸, 너무 아낌없이 싹 버리고 만 것이다. 아이들과 굳게 약속은 해 놓은 상태라 미룰 수는 없고 아 어쩌지...
수납장을 뒤져보니, 파스타 소스가 담긴 유리병이 눈에 들어온다. 아 너로구나! 그렇다면 파스타 소스는? 뭘 고민하겠는가 먹으면 그만인 것을. 그리하여 아침부터 <토마토 파스타>가 탄생하게 되었다. 단지 공병을 얻겠다는 이유만으로 정해진 황당한 아침 메뉴.
어제 담근 오이피클이 여름이라 그런지 하루 만에 제법 익었다. 파스타에 곁들일 피클은 둘째에게 미션을 부과한다. 소일거리는 제법 척척 도와주는 딸. 다 컸네 다 컸어.
오이피클을 그릇에 옮겨 담은 둘째 아이, 엄근진
아침 밥상에 파스타가 떡 하니 놓여있으니, 두 남자도 당황해한다. 이건 무슨 상황이냐며. 그렇다고 파스타 소스를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아 놓자니 분명 또 깜빡하며 며칠은 안 먹을 테고, 그렇다면 마치 숙제처럼 재고 음식 리스트로 쌓이게 될게 뻔하고, 그럴 바에 빨리 먹어 치우는 수밖에!
둘째는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를 앞에 두고 함박웃음이다. 포도주스는 자고로 와인잔에 담아야 제 맛. 이탈리안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아침밥상이다. 나름 뭐 근사하고 좋다.
아무리 그래도 아침부터 토마토파스타는 좀 과하긴 하지
폭풍흡입을 하는 녀석들. 쌀국수를 태국 음식에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파스타를 먹을 때 볶음용 쌀국수면, 그러니까 제법 두툼한 면을 사용하는 편이다. 말없이 먹더니 첫째 아이 왈, 왜 새우는 없냐고 묻는다. 응 그건 새우가 없거든. 미리 생각해둔 메뉴였더라면 진작에 부재료를 사뒀을 텐데. 오늘의 파스타는 유리병 때문에 만든 너무 즉흥적인 메뉴라 집에 남은 야채, 그러니까 시금치와 양파, 마늘, 버섯만 넣었더니 어쩌다 본의 아니게 비건식이 되어버렸네. 이해하렴.
아침식사를 마치고 얼른 뒷정리 후 다음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레몬청 만들기>. 매 여름마다 레몬청을 담그는데, 그러고 보니 올해는 처음인 것 같다. 어째 그 간단한 방법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단 레몬부터 세척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더라... 인터넷 검색 찬스를 잠시 사용한다. 먼저 베이킹소다를 풀어놓은 물에 30분 이상 담가 두고, 굵은소금으로 박박 문지르고, 뜨거운 물에 데쳐서 코팅을 벗겨주고 아, 준비과정이 이렇게나 복잡했던가.
두둥~ 올해 첫 레몬청 담그기
재료 손질부터 병 소독까지 기본 준비 작업을 마치고서야 꼬마 요리사들을 소환한다. 신나서 식탁으로 달려온 아이들. 레몬을 얇게 자르는 것은 아무래도 엄마의 몫. 아이들은 씨를 발라내면서 조잘조잘 신이 났다. 나는 씨가 5개가 들었네, 내 레몬에는 씨가 이렇게 크네, 내 씨가 더 큰 거 아니냐 등등 잔뜩 상기되어 있는 녀석들이 귀엽다. 근데 서로 말하느라 영 더디다. 자자, 일의 속도를 좀 더 높여 보자며 재촉한다.
둘째는 손이 따갑다며 얼른 어린이용 일회용 장갑을 낀다. 첫째는 환경을 보호하겠다며 자기는 그냥 맨손으로 하겠단다(결국에는 비닐장갑을 사용했지만). 나 역시도 늘 요리할 때마다 고민되는 선택의 순간, 일회용 장갑을 사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 별거 아니지만 비닐 사용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참 그게 쉽지는 않다.
아무튼 어느새 설탕,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정제 원당을 뿌려주는 2단계에 진입. "엄마 레몬이 마치 설탕 이불을 덮는 것 같아요" 이에 질세라 또 한 녀석은 "이렇게 레몬을 층층이 쌓아 올리니 마치 레몬 아파트 같아요." 관찰력과 표현력이 자연스레 늘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요리활동의 덤인 듯하다.
설탕을 뿌려주는 단계, 싸우지 않게 한 번씩 번갈아가며 하기
이제 설탕이 어느 정도 녹으면 이제 병에 넣어주면 끝. 그냥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예쁘지가 않아 병 벽면에 세워서 빙 둘러서 레몬청을 넣어준다. 다소 어려운 작업은 엄마가 도와주고, 쉬운 작업은 아이들의 몫. 사진도 찍으랴, 해결사 노릇하랴 바쁘다 바빠.
레몬 10개로 만든 거라 양이 엄청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다. 병에 담고 보니 그냥 집에 있던 작은 병 5개로도 담을 수 있었을 듯싶다. 아, 아침부터 유리병 확보하느라 괜히 파스타를 먹은 건가. 잠시 회의가 들지만 아직 미사용 한 작은 병들은 또 유용하게 사용할 데가 있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위로해본다.
아무튼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노라 자기반성의 시간을 잠시 갖는다. 이렇게 쪼르르 늘어놓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이제 하루 이틀 실온에서 숙성시키고 설탕이 다 녹으면 냉장고로 옮겨주면 된다.
맨 우측 노란 뚜껑의 병이, 문제의 파스타 유리병
이제 탄산수와 꿀만 있으면, 쉽게 레몬에이드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색깔 얼음을 미리 얼려 놓는다면 비주얼은 한층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 여름철 깨알 노동에 얼음 얼리기가 빠질 수 없는 이유이다.
이왕이면 애플민트도 장식용으로 구비해두면 더할 나위 없는, 초특급 레몬에이드가 완성된다. 누군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 '홈카페 장인'. 부끄럽긴 하지만 꽤 마음에 든다.
홈카페 별거 있나요~ 레몬에이드 완성!
요리 미션이 끝나고, 또 다른 미션이 하나 남아있다. 바로 나만의 작업공간 만들기. 원래 작게나마 내 책상이 있었으나 연일 이어지는 재택근무에, 남편에게 빼앗긴 지가 오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예산 10만 원 내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예산 확보는 되었지만 공간이 문제.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아이들 방에 옷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기존에 2개에서 1개로 강제 통폐합시켰더니 딱 책상을 둘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오예 신난다!
어젯밤에 택배로 도착한 조립식 책상을 가지고 쓰리이는 분주하다. 아이들도 엄마의 공간을 만든다는데 적극 돕는 걸 보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보금자리. 비록 아이들 방에 세 들어 사는 기분이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네. 너희들의 관심이 헛되지 않게 열심히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하마. 약속~
고심 끝에 고른 저 초록색 갓의 등, 공간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 같아 흡족하다. 실은 여기서 집밥로그가 시작되었다는 거.
점심은 어제 반드시 외식을 하겠다는 큰 결심을 실천했다. 근데 많은 사연 끝에 결국 고작 김밥이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남이 만들어 주는 밥은 세상 편하고 좋았다. 이제 남은 건 저녁밥. 제법 시원해지고 미세먼지도 사라진 날씨가 아깝다. 이럴 때는 무얼 먹느냐 보다, 재빨리 아무거나 먹고 밖으로 나가는 게 이득.
그래서 정한 메뉴는 만만한 볶음밥 당첨. 여기에 부재료를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확 맛이 달라지는데 오늘은 떡갈비로 정했다. 먼저 떡갈비를 구워주고 잘게 잘라 야채들과 함께 볶아주고 반숙란과 김가루 곁들이면 훌륭한 한 그릇 요리, <떡갈비볶음밥> 완성.
은은하게 불맛이 느껴지는 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거 의외로 괜찮다. 다행히 아이들 입맛에도 잘 맞나 보다. 한 그릇 뚝딱 먹더니 더 달라고 하는 걸 보면. 근데 밥만 먹고 있자니 살짝 허전하다. 김치를 더해주니 역시나 더 맛있다. 둘째는 살살 웃으며 음료수를 달라고 요청한다. 제 아무리 한 그릇 요리라도 엄마는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을 하는 건지. 이래서 혼자 먹는 밥이 제일 좋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내일은 살구를 어떻게든 처분해야 한다. 일명 식재료 심폐 소생술이라고, 더 상하기 전에 긴급하게 해치워야 하는 경보 단계랄까. 아무래도 살구잼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며칠 연속 집밥 외에 노동까지 더해지니 피곤한 건 단지 기분 탓은 아니겠지. 아무튼 먹는 일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내일도 부엌에서 알차게 보낼 나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