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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Oct 27. 2023

파리에게 덮인 어미 박쥐 58번 이야기

박쥐 병원의 하루

어제 오후부터 시작해야겠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구조자들이 박쥐 서식지로 구조를 나간다.

마비된 성체 박쥐와 그 박쥐가 잃어버렸을지 모르는 새끼를 찾아 데리고 오기 위해서다.


어제 아침에는 한 마리도 찾지 못했고, 오후에 비비가 어미와 새끼를 데리고 왔다.

비비가 그 둘을 찾았을 때, 파리가 새까맣게 덮여 있었다고 한다.


파리들은, 살아있으나 잘 움직이지 못하는 어미에게 파리알을 잔뜩 붙여 놓았다.

엉덩이 쪽은 물론이고 콧구멍에도 파리알들이 들어가 있었다.

날이 따뜻하면 금방 알을 깨 구더기가 되어 살을 파먹기 시작한다.


어미가 품에 안고 있던 새끼의 몸에도 파리들이 알을 낳았다.

끝까지 날개로 새끼를 덮고 있어 다행히 심각하진 않았다.


병원으로 도착해 검사를 하는 와중에도 숨어있던 파리들이 몸 여기저기서 나와 날아갔다.

번식을 위한 끔찍한 집착이다. 박쥐를 구하고자 하는 우리 입장에서 그렇겠지만. 죽은 몸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 중 하나다. 다만 여전히 살아있는 채로 먹혀야 하는 박쥐에겐 끔찍한 일이다.


파리알을 떼는 동시에 체온과 심박을 재고, 주스를 조금씩 주며 혀가 얼마나 나오는지, 주스를 삼킬 수 있는지 확인했다. 박쥐들은 주스나 과일 맛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과일박쥐겠지만. 하지만 혀는 아주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고, 주스를 삼켰지만 그다지 좋은 반응은 없었다. 체온, 심박, 호흡은 괜찮았지만 발에 긴장도가 없었다. 날개를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 말인즉슨, 마비도가 심각하다는 이야기였다.   


제니가 박쥐의 눈을 보면 안다던데, 역시 그랬다. 주변 상황에 둔감하게 반응하고 뭔가 체념한 모습을 보였다.


"She id docile" 제니가 말했다.


어미의 앞가슴에 붙어 있던 작은 진드기를 겨우 찾았다.

개나 고양이의 경우 진드기를 찾으려 털을 밀어버리지만, 야생동물인 박쥐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털 사이사이를 헤집어야 한다.


진드기는 고작 4.5mm밖에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3~4일 정도는 붙어 있던 셈이다.

진드기가 피를 빨아먹을 때 침샘에서 분비되는 독소가 박쥐에게 마비를 일으킨다.

다른 야생동물들은 오래전부터 이 진드기에게 노출되어 비교적 면역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 이 안경날여우박쥐들은 대처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급격히 파괴된 박쥐들의 서식지,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식물, 그리고 이 진드기가 번성할 수 있는 기후가 맞물려 매년 10월에서 11월이면 급격하게 이런 재앙이 생기고 있다.


결국 안락사가 결정됐다. 항체를 주입한다한들, 그 후에 견뎌내야 할 고통이 더 크고 회복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90년대부터 쌓은 오랜 경험과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다. 빨리 보내주는 것이 낫다고.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언제나 결정이 어렵지만 해야 한다.

날개 정맥으로 서서히 안락사약을 넣고, 심박을 체크했다.

심장 소리가 작아지며 저 멀리, 천천히  멀어져 갔다.


다행히 새끼는 건강했다. 멜라루카라는 나무 이름을 주었다. 암컷인 멜라루카는 87g이었다.

어미는 566g. 6배가 넘는 어미의 무게가 될 때까지, 잘 자라 자연으로 건강하게 돌아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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