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
뜬금없이 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다윈의 끈적한 바람이 불어오던 저녁, 그날은 며칠간 이어져오던 학회의 하이라이트인 '시상식'날이었다.
발표를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안 했다. 솔직히 아주 조금 했다. 바람에 날아갈 정도로 가벼운 만큼. 하지만 마음엔 내심 칭찬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려 했지만 학교 측의 사정, 물론 코로나의 파도가 지금까지 밀려온 탓도 있지만, 때문에 내 박사 입학은 늦어졌다.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학회 참석 자금을 지원받아 온 것만도 다행이고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나와 같이 조인트 발표를 하는 분은 이미 박사를 졸업한 분이었기에 역시 학생은 아니었다. 그래서 둘 다 학생이 아닌 우리는 상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같이 간 우리 팀 다섯 명 중 세 명이 상을 받았고, 남은 우리 둘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상 받은 사람들만 사진 찍자"라고 한 게 내 귀에 꽂혀버렸다. 하필 나와 같이 발표를 한 그분이 그 말을 못 듣고 사진을 찍으려고 앞으로 나가서 내가 "상 받은 사람들만 사진 찍으신대요"하고 말렸다.
이 상황을 모르는 그곳에 있던 다른 교수님이 "너희도 충분히 잘했어 나가서 같이 사진 찍으렴"하고 독려해 주시는 말이 또 마음을 자극해 버렸다. 따뜻하고 어색한 그 상황.
상 받은 사람들의 사진을 나 또한 기쁘게 찍어주었다. 나 또한 십여 년 전 상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젊은이들이 누려야 할 순간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곳으로 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따라가서까지 사진을 찍어줄 마음은 나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다 들어온 내 파트너를 지키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는 내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직 잘 잡히지 않는 내 마음 말이다. 100% 축하해 줄 수는 없는 내 마음.
교수님은 돌아와서 "상 받은 사람들만 찍자고 해서 좀 그랬지?"라며 말을 건네주었다. 교수님 덕에 멋진 다윈까지 와서 그 한순간의 행동에 약간이라도 서운함을 느낀 내가 좀 별로였다. 마침 감기에 걸렸던 나는 떠들썩한 자리를 뒤로하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
내가 잠을 사랑하는 이유다.
'괜찮아 하룻밤 자고 나면 좋아질 거야'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어떻게 안 걸까.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일을 한다. 불필요한 정보는 버리고 필요한 정보는 편집하고 저장한다.'
그렇다면 편집자님, 오늘 밤의 기억에서 그 부분은 지워주세요. 그렇게 부탁하는 요청서를 올리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결제가 끝나있었다. 새벽에 일어난 나는,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며 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