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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예나 Mar 24. 2020

'N번방' 그리고 일그러진 영웅.

20살 초반의 디지털 성폭력의 가해자가 태어난 배경- 

 고등학생 시절 야한 동영상을 두 글자로 줄여 만든 “야동”이라는 단어는 범죄 폭력과 같은 꺼림칙한 느낌보다는 동네슈퍼 마냥 친근한 이미지에 가까웠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2006년도 MBC에서 방영된 일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평소에 독재자에 권위적인 가장으로 등장하던 ‘이순재’는 컴퓨터 폴더를 뒤적거리다가 의도하지 않게 낯부끄러운 영상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혀를 내차던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해 영상을 보기 시작했고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자신의 체면도 잊은 채 후다닥 책상 아래로 들어가 코드를 뽑는다.     


 그렇게 당황하여 허둥지둥하는 권위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야동순재’ 에피소드는 큰 화제가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드라마가 성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 ‘이순재’는 아직도 그 ‘야동 순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을 받는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을 정도니. ‘야동’ 에피소드가 얼마나 전 국민에게 큰 공감을 주었던 걸까?     


 사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이라 한다면 2003년부터~2006년까지 수많은 AV를 불법 복제하여 돈을 벌었던 ‘kimcc’가 구속된 해. 그는 토토 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만개가 넘는 AV 영상을 무단 개시하였고, 몇 년의 수사 끝에 2006년 10월 음란물 유포죄로 구속이 되었다. 그 소식은 언론에 대대로 보도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더는 그의 자료를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에게 “김본좌”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그도 모자랐는지 김본자의 법정 진술이라며 ‘본좌 복음’이라는 망언록(?)을 만들고. 팬카페까지 만들어 그의 악행(?)을 기려 주기 까지 한다.


본좌복음 연행편 32절 9장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 한 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그시절 유행어였던 '지못미'가 그 사건으로 하여금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걸 아는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 대한 대우는 범죄자에 대한 대우가 아닌 ‘영웅’의 대우였다.  그도 모자랐는지 그 이후로 웹하드에서 음란물 유포죄로 끌려간 모든 이들에게 ‘정본좌’‘양 본좌’‘서본좌’‘박 본좌’등의 별명을 지어준다.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본좌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시절에 있던 일들이다. 반 아이들은 우스개 소리로 "지못미"라는 말을 외치며 동급생 아이들에게 "본좌"라는 별명을 지어주곤 했다. 아무런 어색함 없이 유출된 연예인의 영상을 본적이 있냐며 묻고 ,보는 방법을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몇아이들은 불쾌하다는 듯이 '그런' 농담을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불만을 토로해봤자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 라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니까.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자라온 걸까?


나의 세대의 남자 아이들에게는 마음속 한켠 그 본좌들이 배트맨 슈퍼맨과 같은 영웅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어쩌면 N번방에 참여했던 가해자들에게는- 그 시절 본좌들이 그들의 영웅이지 않았을까?

 

인터넷에 출처 없이 떠도는 본좌 복음 만화.


N번방을 만든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도 사회부적응자도 아니다, 그저 여성이라는 존재가 재화일뿐인- 일그러진 세상의 영웅이다. 

    

97년생 하예나가 자라온 일그러진 세상에는 일그러진 영웅이 있었다.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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