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사진 2. 이사
옆집이 이사를 갔다. 새벽부터 현관 쪽이 소란했는데 보니 이삿짐 센터가 와 있었다. 이사 나가는 티를 낸 적이 없었는데. 어젯밤에도 늘 그랬던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옆집 가족들이 집에 들어가는 소리가 났는데. 그게 끝이었다니. 조금 서운해졌다. 나도 이사를 나가면서 옆집과 인사를 한 적이 없었는데도.
옆집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2년 전 이곳에 이사 온 다음 날 외출하려는데 옆집 문이 빼꼼, 열렸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아이의 얼굴이 문 틈으로 빼꼼, 나왔다. "안녕하세요. 이사 왔어요?" 이사 온 집에서 만난 첫 이웃이었고, 처음 받은 인사였다.
아이는 인사를 잘 했고 말도 또박또박 잘 했다. 호기심도 많아서 나가는 길에 마주치면 종종 "어디 가세요? 가면 뭐 해요?"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면 "먼저 타세요" 하며 꼭 문을 잡아주었다. 아파트는 방음이 잘 안 됐다. 옆집이 문을 여닫는 소리부터 윗집, 아랫집의 소음들이 생생히 울렸다. 아이는 외출할 때면 일단 문부터 열고 적어도 10분쯤은 먼저 나와서 부모님을 채근했기에 아이의 목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아빠 빨리 나오세요. 나 먼저 내려갈거야." "엄마 안녕히 가세요 돈 많이 벌어오세요." "문 잘 잠그고 있고 열두 시에는 전화하기, 맞지?" "아빠는 왜 맨날 나한테 뭐라고만 해?" 기쁘거나 속상하거나 미안한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아이의 감정과 생활, 아이 부모님의 정연한 태도 같은 것들이 같이 실려왔다. 그건 층간소음을 누군가 살아있다는 기척으로 이해하게도 해주었다. 딱히 이웃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없었다. 그래도 그 기척에 조금 위안을 받기도 했고, 내가 조금 외로웠다는 것도 알았다.
옆집 사람이 바뀌었고, 윗집 사람도 바뀌었다. 나도 곧 전세계약이 만료돼 이사를 가야 한다. 아마 앞으로도 여러 번 이사를 다니게 될 것이다. 이웃은 계속 바뀔 것이다. 서로 이름도 가는 곳도 모른 채로. 그래도 인사 정도는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낯설던 집에서 너는 처음으로 내게 인사를 해줬지. '귤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 나눠드려도 괜찮을까요'하고 소심하게 너희 집 문에 붙인 쪽지에 너는 '귤 좋아해요 고맙습니다' 라며 삐뚤빼뚤한 글씨로 답장을 써줬지.
그동안 고마웠어, 너랑 인사할 때마다 참 좋았단다. 새 집에서도 잘 지내.
이 말을 네게 직접 하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네 집이었던 곳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어.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를 했지.
안녕하세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