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극복을 위한 운동일기 -
나는 아직 입문자이기에 스파링을 하지 않는다.
대신 거울 앞에 서서 쉐도잉을 하는데, 아무도 없는 대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상대로 삼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 쓴 머리는 나를 지우고 임하기에 적당했고
'마스크를 향해 뻗으라'는 코치의 말에 쉽게 목표점을 잡을 수 있었다.
기분탓일까 모자에 시야가 가린 탓일까 거울 속 표적인 나의 머리를 도무지 보기 힘들었고, 밤새 눌린 머리를 감춰줬던 모자였지만 답답함에 구석에 벗어던졌다.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차분해져있었고 모자를 벗고나니 눈 앞이 탁 트인 듯 환해졌다.
나는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선명히 들어오는 나의 머리와 눈빛. 내가 아닌 익명의 누군가를 상상하기에는 그저 마스크를 쓴 평소의 나였다.
나는 나를 상대로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잽 더킹 더킹 카운터 원 투 더킹 더킹 원 투
상대는 나를 따라 주먹을 날린다.
나는 그 주먹을 피하지 못한다.
다시 피하고 주먹을 날려도 상대방도 나에게 주먹을 날린다.
나를 지우고 했던 쉐도잉과는 다르다.
나는 거울 속 내가 어디로 펀치를 날리고 어느 곳이 비어있을지를 안다.
나는 거울 속 내가 뻗는 펀치를 상상하며 빈틈을 노린다.
나는 '우울감을 느끼는 나'를 상대로 싸워야한다.
'우울감을 느끼는 나'또한 거울 속 나이기에,
나는 그가 어디로 나를 공격할 지 안다.
또한 나는 그의 빈틈도 안다.
알지만 인지하지 못할 뿐이었다.
이제는 그에게서 올 펀치를 염두하고 피해야한다.
운동은 나도 모르게 우울과 싸우고 있었다. 운동은 내가 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우울과 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제 우울이 던지는 펀치를 피하는 연습을 한다.
익숙하진 않지만, 나는 입문자이지 않은가.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이상은 내게 펀치를 날릴 수 없게, 내가 공격하는 날도 반드시 올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