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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렛 이터 Nov 30. 2021

익숙함에서 이별하세요 (1)

내가 헤어지고 싶었던 이유.

익숙함의 고리에서 나를 빼내고 싶었다.


당연히 학교에 등교하고 당연히 공부하고 당연히 좋은 대학과 당연히 좋은 직장을 다니며 당연히 연애를 하고 당연히 결혼을 하고 당연히 아이를 낳고 당연히 안정적인 가족을 꾸리고 당연히, 당연히...


나는 사립 여자 중학교를 나와 사립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전자기기로 영화를 보면 전자기기를 압수당하는 곳이었다. 학교 자율학습에서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닌 책을 읽으면 안됐는데, 그것은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 친구가 교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압수당하는 것을 보고는 골머리를 썩히지 않도록 책을 읽지 않아왔다. 당연하게도.

나의 학교생활은 개근, 전교1등, 성적하락, 다시 극복, 학생회, 동아리 등 사람들이 말하는 '올바른' 것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아야하고 나는 '훌륭한' 즉,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익숙함의 고리에서 스스로를 빼내본 적이 있는데, 바로 고등학교에서 동아리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 내 장래희망은 수시전형을 대비하기 위해서 과학과 관련한 직업을 써냈었는데, 2학년, 3학년 칸에는 '과학 연구원'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스스로와 혹은 누군가와 진솔하게 미래에 대해 대화할 때면, 나는 과학연구원으로 평생을 보내고 은퇴 후에 모아놓은 돈으로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말했었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방송부 동아리에서 캠코더를 들고 영상을 찍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영화인데, 왜 그것을 젊을 때 하는 것이 아닌, '다 늙어빠져서'하려고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남몰래 영화학과 진학을 준비했고, 이공계에서 갑자기 예술대학이라는 엄청난 진로변경을 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당연함의 고리에서 스스로를 빼내어 본 첫번째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 진학 후에는 여느 새내기 대학생처럼 술을 마시고 카페를 가고 시험공부를 했다. 

그것은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타는 물살 안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별다른 의지를 내지 않아도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대학생활 중 2년을 지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이나 생각없이 보냈다.

그 당시 내게 중요했던 것은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였고, 가족과의 관계였고, 애인과의 관계였다.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나'는 상상이 불가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것이다. 


그렇게 주변 친구들의 속도에 맞춰, 가족과 애인의 말을 조언삼아 행동하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애인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원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휴학을 하고, 학교선배를 돕기 위해 학교실기활동에 참여하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1년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였다.




기숙사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빛 아래였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햇빛과 같이 나에게 있는 익숙함이란 무엇인가 떠올려 보았다. 나에게 쌓여있던 생활에는 그저 값 싼 종류의 유희와 어려운 문제를 직면하기 전에 쉬운 것으로 회피해버리는 습관이 너브러져 있었다. 건강하지 못한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영양가없는 것들로 끼니를 해결하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내가 있었다.

나는 이런 관성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야만 했다. 


쉽고 영양가없는 생활로 향하는 관성을 나 스스로 끊어내야 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내 눈에 씌워져 있었던 하나의 눈꺼풀을 뜰 수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것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익숙한 것을 올바르다고 생각하도록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당연함의 눈꺼풀을 뜨고 나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내가 모르던 세상은 정말 커다랗고 나는 너무 작고 무지했었다. 

나는 무지했던 과거의 내가 많이도 부끄러웠다.

그렇게 그동안 쌓아왔던 나의 세계가 얼마나 작고 조악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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