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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렛 이터 Nov 29. 2021

‘피하고 공격하고’의 공식 (1)

우울 극복을 위한 운동

수학공식처럼 가장 기초가 되는 공식 몇 개를 외워두면, 문제에 적용해서 풀 수 있다.

복싱에도 이런 기초가 되는 몇 가지 공식이 있었다. 한 번 외워두면 훈련을 할 때, 그리고 실전에서도 응용해서 쓸 수 있었다.


원 투 훅 위빙, 훅 투/ 막고 어퍼컷 훅 투/ 막고 투, 피하고 투 훅 투


글로 적어보니 참 복잡하다.

사실 복싱장에서는 동작으로 알려주셨는데 그것도 참 복잡했다. 심지어 ‘위빙’, ‘막기’, ‘어퍼컷’은 처음 들어보는 기술이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위빙은 그동안 했던, ‘더킹’과 비슷해 보였다.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양 손을 올려 가드를 세우고 허리를 숙이며 상대방의 주먹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의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한다.


막기는 이전에 배웠던 상대의 주먹을 아래로 쳐서 떨구는 막기와는 조금 달랐다.

공식에 나오는 막기는 총 두 번인데,

첫 번째는 팔꿈치를 내 몸통 쪽으로 당겨 막는 것, 두 번째는 오른손을 얼굴 앞에 세워서 상대의 잽을 손등으로 막아내는 기술이다.


어퍼컷은 그래도 쉬웠다. 어렸을 때 격투기 게임과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주먹을 나의 갈비뼈 쪽에서 손등을 바닥을 향해 두고 몸의 중심 쪽으로 원을 그리듯 당긴다. 이때 몸의 중심에 도달하면, 그 지점에서 접선을 그리듯 수직으로 올리며 상대의 턱 밑을 타격한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과 공식을 몸을 움직이며 배우려니, 몸치가 된 것 같았다.

몸치보다는 이 공식 자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나는 문자로 되어있는 정보를 머릿속에 넣는 것에 익숙하기에, 현장에서 들으며 몸으로 배우며 순서를 익히는 게 헷갈린 것이었다.


이 동작을 능숙하게 기억하는 데 거의 일주일이 걸린 것 같다.

사실 집에 와서 글로 적으면 바로 외워질 것 같았지만 복싱장에서도 버벅거리던 순서는 집에 왔을 때 아예 머릿속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코치님께 적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복싱을 글로 적으며 배우려는 것은 오랜 나의 학습습관을 불러와 사용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이 있지만, 복싱 동작은 몸으로 익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고 그것이 내가 잘 못하는 영역이라면 더욱 훈련이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몸에 익힐 수 있게 되었다.

마치, 피아노곡을 악보 없이 손가락이 기억하는 대로 치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몸의 기억이었다.

책상 위에서 문자로의 언어를 기억하는 것을 이십년 가까이 한 덕이었다.


다시 ‘공식’을 외우지 않는 삶을 십년 가까이했더니, 이제는 ‘공식’외우기가 이렇게 낯설었다.

삶에서의 공식도 무의식적으로 외우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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