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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Aug 19. 2024

너의 네 번째 생일에

아빤 지금 미래에 살고 있는 기분이야

재이야 네 번째 생일을 축하해.


읽지 못할 걸 알지만 그래도 쓰고 싶었어. 어떤 마음은 꼭 글과 말이 아니라도 마음 자체로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렸거든. 너의 두 번째, 세 번째 생일을 편지 없이 지나쳐 버린걸 부디 이해해 주길.


재이야 아빠는 요즘 미래를 살고 있는 기분이야.

처음 네가 태어났을 때, 딱 이맘때의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했거든. 과연 우리 재이가 얼마나 자라 있을까, 그곳에서 우린 함께 행복할까. 줄 수 있는 걸 모조리 주고, 수명을 몇 년 깎고서라도 알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


비록 그때 그렸던 미래 중 최고로 희망찬 미래를 살고 있진 않지만 —재이가 아무 일 없이 보통의 아이로 크는— 아빠는 지금의 일상에서 빈틈없이 행복해. 느리지만 재이가 재이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크고 있단 사실을 잘 알거든. 엄마와 아빠의 말에 싱긋 지어주는 웃음, 신나서 발을 구르며 내는 꺅꺅 귀여운 소리, 원하는 게 있어 칭얼대며 보채는 너의 짜증, 모두 네가 성장했단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증거잖아. 매일 아빠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크기를 키워줘서 고마워.


아빤 이제 인생이 너무 길어 무료하다거나, 앞으로 오래 일하는 것이 무섭단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어. 남들에게 별거 아닌 사소한 순간 하나하나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거든. (의미, 그건 사실 아주 쉬운 말이기도 해. 눈을 감아도 재이가 보인단 뜻이야.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까지 사라지지 않고)

그러면 확신에 차게 되지. 너를 만나 이런 순간을 마주하려고 지금껏 살아왔구나. 그렇다면 내 남은 인생을 모두 바친다 해도 가치 있겠다. 온 힘을 다해 살아가야겠다.


재이야. 너에게 올 한 해는 유달리 힘든 시간이었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구토 때문에 맘껏 먹지도 못하고. 기운이라곤 하나 없이 말라가는 너를 지켜만 보는 일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 어떤 날엔 이불속에 머리를 박고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니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억울하고 답답해서.


거짓말처럼 다시 건강해져서 다행이야. 밥도 잘 먹고, 훌쩍 빠졌던 몸무게를 회복하고 살도 부쩍 올라서. 대견하고 기특해. 통통해진 너의 허벅지와 볼록한 배, 그리고 도톰하게 토실한 엉덩이에 엄마 아빠의—특히 엄마의—사랑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주지 않을래? 그렇게 몸 구석구석 엄마 아빠의 흔적이 녹아 있으니 앞으로는 건강할 수 있을 거야.


지난 육 개월, 더 빨리 방법을 찾아 낫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생각해 보면 너는 한 번도 멈춰 있으며 포기한 적 없었는데. 이유 없이 잠을 못 자다가도, 매일 느닷없이 엉엉 울다가도, 기침을 많이 하다가도, 품에 겨우 안긴 채 거칠게 숨을 내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건강해져서 희망을 보여줬는데, 아빠는 왜 너의 상태가 다신 좋아지지 않을 것처럼 불안해했을까. 아빠가 이제 재이를 좀 더 믿어야겠어. 반성할게.


재이야. 슬프지만 세상은 너에게 가혹하고 어쩌면 많이 무관심할지 몰라. 지금 우리 함께 사는 세상은 아빠가 살아온 세상과는 너무 달라서 아빠 역시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몰라 막막할 때가 있어. 하지만 재이는 그런 거 하나도 모르고 살게 될 거야. 아빠가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할게. 세상이 얼마나 차갑고 냉랭한지 너는 영원히 몰라도 되게끔 엄마 아빠가 애쓸 거야.


그러니 엄마 아빠가 주는 사랑만 받고 언제까지나 행복하렴 우리 아들. 그럴 수만 있다면 아빠는 조금 낯선 세상을 살아간다 해도 괜찮아.

4번째 생일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

죽는 날까지 지치지 않을게.


선물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야. 겁 많은 재이지만 이번 선물엔 엄마 아빠의 바람을 담았어. 멋진 공룡처럼 용감하고 씩씩해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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