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없던 조리원에서
출산 후 아내와 함께 머물던 산후 조리원에는 휴식과 회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단 하나 없는 것이 있다면 우리 아기, 재이였다. 조리원 정중앙에 마련된 신생아실 가장 구석진 자리에는 ‘김유현 아기’라 이름 붙은 바구니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나칠 때마다 커튼을 치워 아기 얼굴 좀 보여달라고 요청하던 곳이었다. 톡톡 유리벽을 두드리면 그제서야 간호사들이 커튼을 거둬 자고 있는 재이의 얼굴을 선심 쓰듯 보여주곤 했다.
조리원에선 부모가 종일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온전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평소엔 중앙 신생아실에서 대신 돌보아주다가 모자 동실을 요청하면 하루 중 많게는 두 번, 잠시나마 아기를 방으로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재이를 떠나보내기 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했는데, 그건 여느 초보 아빠들의 막연한 두려움—어색함이란 표현이 좀 더 어울리는—과는 다른, 한층 어둡고 깊은 감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이는 어떤 증후군의 징후를 피부에 잔뜩 지니고 태어났다. 출산 후 회복실로 걸려온 전화, 간호사가 건넨 첫마디를 기억한다.
아기 얼굴과 몸에 화염상 모반이 있는 것은 아시죠.
아니요 그게 뭔가요 심각한 건가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주 이상하고도 낯선 말.나는 아기의 탄생을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재이가 태어난 첫날밤을 표현하자면, 내 생애 가장 끔찍한 밤 중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바로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겪어보지 못한 불안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주 갑작스레,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가장 무거운 어둠을.
그날 나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가 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현실도 꿈도 아닌 공간을 밤새 헤매었다. 자고 있었으나 반쯤 깨어있었고, 깨어있었지만 몽롱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떨어질 것 같은 병원 간이침대에 누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인터넷을 뒤지며 희망찬 얘기를 발견하려 애썼다. 병원 바닥이 끝없는 낭떠러지처럼 아득하게 느껴져 꼼짝할 수 없었다. 굴러 떨어지면 다시는 위로 올라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영영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긴 밤이었다.
인터넷엔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이미 많았다. 그런 증후군은 아주 낮은 확률로 발생한다고, 대부분은 그냥 지속적으로 치료만 하면 되는 일로 판명 나곤 하니 너무 큰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약한 사람은 결국 부정의 기운에 끌리기 마련이라, 희망의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어떻게든 불행의 가능성을 찾아내려 애쓴다. 내가 그랬다. 확률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너무 나약한 사람. 어쨌든 팔백만 분의 일 로또도 매주 당첨자는 나오니까. 아주 자그마한 확률이라도 당하는 입장에선 백 프로니까. 눈에 보이는 재이의 징후가 무시하기엔 너무 뚜렷해서, 나는 자꾸 불길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점점 자라나는 불안을 혼자만 가지고 있기에 버거워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은 아내에게 전염시키고 말았다.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지만 불안은 정반대다. 줄어들긴커녕, 잘라내면 두 배 세 배로 증식하는 만화 속 괴물처럼 끝도 없이 불어난다. 나는 알아도 좋을 것 하나 없는 사실들을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것 마냥 호들갑을 떨며 유현이에게 알렸다. 딱히 어떤 반응도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현이는 내 걱정에 강요당하는 것이,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일로 고통받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고 한다.
아내를 보살피는 일이 전적으로 조리원의 몫은 아니었을 텐데. 보호자 란엔 내 이름이 적혀 있었건만 아내를 적절히 돌보지 못했다.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나는 그것이 아직까지 못내 후회스럽다.
다행스럽게도 유현인 내가 만들어낸 불안에 물들지 않았다.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한 시선으로 매 순간 정확히, 눈앞의 재이를 온 정성을 다해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가 된 유현이의 눈에 보이는 재이는 아마도, 문제가 있을지도 모를 알 수 없는 미래의 재이가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는 실제의 재이였을 것이다. 품에 안고 우유를 먹여주어야 하는,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트림을 시켜줘야 하는, 딸꾹질을 하면 미리 준비한 모자를 머리 위에 살포시 덮어주어야 하는, 그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주 작고 사랑스러운 생명체.
그리고 결국, 유현이의 그 시선이 재이를 살렸다.
아직도 궁금하다. 조리원에서 재이를 돌보던 간호사도, 하루에 한 번 정기검진을 오던 소아과 의사도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그들은 전문가고 유현이는 이제 막 아기를 본 초보 엄마였을 뿐인데. 어쩌면 그건 전문 지식의 넓이가 아니라 애정의 깊이 차이 때문 아니었을까. 세상은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사람보다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곤 하니 말이다.
가쁜 숨을 내쉬는 재이를 보고 유현이는 고집스럽게 말했었다. 숨쉬기 힘들어 보이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으니 얼른 병원에 가야 할 거 같다고. 모두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유현인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유난 떠는 부모처럼 조르고 졸라 가게 된 외래 진료에서, 의사는 1분간 천천히 재이의 호흡수를 세더니 호흡이 확실히 많다며 다급히 응급실 전원을 결정했다. 90은 넘어야 할 산소포화도가 70까지 떨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폐에 물이 들어차 있었다고.
그 길로 조리원을 떠난 재이는 NICU라 불리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30일을 머물러야 했다. 울면 안아주는 대신 입에 쪽쪽이를 물리고 뱉어내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고정하는 그곳에서, 폐에 들어찬 물을 빼내는 수술을 2번 받았고, 첫 번째 수술 중 경련을 일으켰다. 우유를 먹이면 다시 물이 차올라 치료의 일환으로 굶기다 먹이다를 반복했다. CT, MRI, 뇌파, 의심되는 증후군을 특정하기 위한 수많은 검사를 받았다. 매번 정체를 알 수 없는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재이가 퇴원했을 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증상들이 재이 이름 밑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 아닌 선천적인 문제들이었다.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의사의 전화 목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소아과 교수다운,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목소리의 온기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비정한 소식이었다.
재이의 뇌에 문제가 있는데 아무래도 최근에 생긴 거 같지는 않아요. 자세한 결과는 병원에 오시면 설명드릴게요.
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때의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말이 아주 무서운 말이라는 사실만은 정확히 알아들었다. 내가 아는 한, 뇌는 사람의 전부였으니까. 다정한 의사는 희망이 없냐는 나의 질문에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앞으로 재활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는 상투적인 대답만을 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그 뒤로 다른 의사를 몇 만났지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본 적 없다.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때 자세한 예후를 알 수 있었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 뒤의 시간들이 조금은 나았을까.
고개를 가누지 못할 거예요 (적어도 4 년 뒤까지는). 당연히 걷지 못할 테고 말도 하지 못할 거예요 (마찬가지로 적어도 4년 뒤까지는). 몸을 뒤로 뻗치고 매일 자지러지듯 울 건데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을 겁니다. 누우면 금세 울고 말아 정말 하루종일 안고 있어야 할 테고요. 일반식을 먹지 못해 매 끼니 음식을 잘게 갈아 주어야 할 거예요. 무엇보다 아기를 키우면서 누릴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아버님은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중 대부분은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고요. 가령 산책을 한다거나, 사람이 붐비는 맛집에서 외식을 하고,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들이요. 해맑게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를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요. 그래서 자주 외롭다 느낄 거예요. 마치,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요.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을 가리켜 사건이라 한다고 평론가 신형철은 말했다. 그런 점에서 재이의 출생은 분명 사건이었다. 뜻밖의 불행을 일컫는 사고와는 달리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아, 다시금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사건이 도출한 진실에 응답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 수 없는 세계에 내던져진 우리 셋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사건에 대한 나의 응답법은 그럼에도 행복하려 애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에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 4년을 그렇게 살려 했다. 과거의 나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지 않고 앞으로 어떤 불행이 닥칠지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시금 견디기 힘든 밤이 찾아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유현이가 재이를 바라보던 시선을 떠올린다. 눈앞의 재이를 똑바로 바라보던 확고하고 단단한, 그렇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을. 전에 없던 사랑이 탄생한 순간을.
흔들리지 않고 관심을 쏟아야 겨우 보이는 삶의 단면이 있고, 행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