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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그냥 하는 마음

by 쓰는교사 정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 문득 박진영이 ‘정말 하기 싫은 걸 몇십 년 동안 계속해야 한다’라고 말한 인터뷰가 생각났다. 책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잘되지 않으니 ‘내 글이 그냥 지금처럼 나만 위로해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런 이야기까지 꺼낼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며 내 안의 검열자가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글은 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반복해 몸에 새겨진 경험에서 나온다. 행동으로 여러 번 하면서 내 몸에 새겨진 것들이 글로 되어 나온다. 그렇게 나온 글이라야 독자에게 가서 닿을 때 온전히 뜻이 전해진다. 그렇지 않고 말에서 나온 글은 힘이 없어 독자에게 가도 맥없이 쓰러진다.


행동하고 습관으로 만들어서 내 몸에 새기는 과정이 어렵기에 글이 쓰기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성공한 연예인들은 그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하고 정상에 올라서도 ‘계속 노력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얻고자 하는 게 있다면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축적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안 써진다고 아무것도 쓰지 않고 넘긴다면 내일은 더 쓸 것이 없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쓸 것이 없다는 그 상태조차도 글쓰기의 글감이 된다. 마치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 운동을 하는 것처럼 글쓰기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날마다 쓰기 힘든 글이어도 일정량을 쓰는 습관을 기른다면 근육량이 늘듯 글력도 늘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는 처음은 많이 실패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나무 블록으로 높이 쌓아 성을 만들 때, 실패하여 부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어떻게 쌓을 때 더 높이, 더 튼튼하게 쌓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고 그것을 하나씩 실현하며 높고 튼튼한 블록 성을 쌓아 올리게 된다.


무엇이든 잘 안될 때는 다시 초심자의 마인드로 돌아간다. 하루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만 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작게 나누어서 거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내 생각을 잘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니 내 생각을 담은 글을 하루 5줄 이상 쓰기를 목표로 정한다. 하루 5줄 쓰기. 딱 그만큼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시작한 5줄의 글이 어느 날은 A4 한 장을 훌쩍 넘어버리는 날도 있을 것이고 어느 날은 딱 5줄에 걸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하기 싫고 불편한 일이다. 내 몸을 직접 써서 직접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쌓는 일, 어학을 배우는 일, 운동, 독서 등 대부분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여야만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일을 할 때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시작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쓰이면 안 된다. 그냥 할 수 있기 위해서 하루 5줄 쓰기, 하루 10분 책 읽기, 하루 8000보 걷기 등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공부를 해 온 것처럼, 운동을 배우면서 했던 방법처럼 글쓰기도 초심자의 마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하루에 하나씩 도전해 보고자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루하루 쌓인 나의 글들이 원고가 되고 기획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면 나와 비슷한 독자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너무 커서 엄두가 나지 않을 땐, 하루에 하나씩 블록 하나를 올리는 장면을 상상한다. 하나씩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성을 마주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내 안의 나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니 그것을 꺼내기 위해 꾸준히 불편하고 힘든 일을 하며 두드려본다. 언젠가 쩍 하고 갈라져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나와 만나게 될 그날을 위해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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