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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상처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법’

by 쓰는교사 정쌤

엎친 데 덮친다는 말처럼, 몇 해 전 나에게 온 시련은 설상가상이었다. 멈출 수 없는 파도 앞에 속절없이 흔들리면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마흔 중반의 나의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없이 밀려오던 파도 덕분에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내 작은 세계를 깨고 나오면서, 비로소 숨어 있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휘몰아치던 파도도 조금씩 잦아들어 어느덧 나는 삶의 파도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내 인생의 어느 맑은 날,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내렸다. 열심히 가르치고 싶었던 그해에 마음의 병이 커져 학교를 쉬게 되었고, 그해 겨울 갑상선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 전입한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약 20년 교직 인생에서 3종 세트 시련을 맞이하면서 처음으로 고비를 맞았다. 내 인생의 시련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가족들에게 그 파장을 일으켜 한동안 아이도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그게 제일 마음 아프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부처님 말씀은 나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마음의 병이 내 삶을 삼켜버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게으름, 나태함과는 다른 늪과 같은 우울은 날마다 나를 저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물었지만 안 된다고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서 울고,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이겨내는 척 보냈으니. 울면서 퇴근하는 날은 이러다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친한 사람이 아닌 이상 나의 속을 이야기할 수 없었고 모든 게 두려웠다. 불안이 나를 삼켜버려 학교 근처를 가는 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병가, 병휴직 기간 내내 학급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못 가르치고 나왔다는 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해 여름,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나는 오히려 마음이 덤덤했다. 슬펐지만 억울하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제가 죄책감에 너무 힘들어하니 암을 선물로 주신 것 같아요. 오히려 암이라고 하니 죄책감이 사라질 것 같아요.” 암에 걸리고 나서야 ‘이렇게 될 일이었구나’, ‘내가 한 해를 다 가르치지 못할 인연이었구나’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갑상선암은 나에게 시련이었지만 선물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주셨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하면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고, 잘되지 않았을 때는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가정에서 내 자녀를 기를 때도 나의 노력을 탓했다. 그 순간에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음을 질책했다. 나의 그런 노력이 나를 더 아프게 했음을 온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언제나 노력하며 살았다.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 생활을 했고, 운이 좋게 바로 취업했다가 교사가 되고 싶어 퇴사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던 초등교사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도 참 열심히 살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이사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은 내 의지로 주장해서 하다 보니 부침이 많았다.

에밀 아자르는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로자 아줌마가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렇게 말한다. “불행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날 때도 된 것이었다.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니까.”[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81쪽

어린 시절부터 너무 애쓰고 살아왔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기에 암에 걸렸다고 억울하지 않았다. 대신‘괜찮은 줄 알고 열심히 무리해서 살았는데 괜찮지 않았구나’라는 앎을 얻었다. 그리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알던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함을 간직하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일에 대한 나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갑자기 병에 걸릴 수 있다. 병에 걸렸다고 억울해하고 원망할 것인가? 병에 걸린 것을 인정하고 치료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남들을 원망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남들에게 돌리지 않기로 했다. 피해자 모드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니 선택이 쉬워졌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정리하면서 내 삶이 더 좋아졌다. 많이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덕분에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고 진정으로 나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일을 겪게 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다면 더 많은 시련을 맞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 시련이 나에게 온 이유를 생각하지 말자. 시련이 왔구나. 어떻게 해결할까? 내가 해야 할 일만 생각하자. 그리고 나면 어느 순간 한 층 더 높은 곳에서 삶을 조망하게 된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문제와 마주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어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자.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같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말자.


진흙탕 속에서도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누군가는 진흙탕을 본다고 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말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길.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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