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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쓰 Feb 05. 2020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것




두달쯤 전,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듯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로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어져있는 걸 보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너무 혼란스러웠고 남편 또한 나못지 않게 고뇌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현이는 어느덧 다섯살이 되었고 우리 부부는 지금의 단촐한 세명 가족에 더없이 만족했으며 그 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것이 왜이렇게 힘들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우선, 도움받을 길 전혀 없던 독박육아 시절의 서글픔이다. 친정도 시댁도 멀리 있어 누구도 잠시 아이를 맡아줄 수 없고 오롯이 육아를 혼자 감당해야했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다섯살이 된 지금은 병원 갈 일이 일년에 너댓번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건강하지만 2-3살 때는 한달에 한두번 감기에, 무조건 열감기라서 3-4일씩 밤새 잠못자고 힘들었었다. 그것말고도 2박 3일 밤새고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이 산더미같지만서도..



경력단절녀로 지내다가, 부업을 시작하고, 본업을 시작한지 만 3년이 되었던 올해 드디어 해왔던 일들이 꽃을 피우고 많은 발전과 성과가 있었다. 그래서 내년 상반기에 에어비앤비 일부를 정리하고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려고 계획을 열심히 세우는 찰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내가 남편이었다면.. 내가 직접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게 아니라 내가 그냥 남편 정도의 입장이었다면.. 둘째가 태어나고 새로운 육아가 시작되어도 나를 더 희생해서라도 일은 일대로 했을텐데, 만삭에 새로운 매장을 내고 애만 낳아놓고 일주일만에 나올수는 없지 않는가!

애 둘 워킹맘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니 이제서야 인생이 내 마음대로 좀 되는 것 같은데 왜 이 시기에.." 내 마음 아는 친구도 점심 시간 회의실에서 전화 받다 같이 울고.. 그 친구도 애 둘 독박육아 워킹맘으로 힘들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와중에 아이가 계속 아파서 어쩔수 없이 휴직을 해야된다며 얼마전 고민을 나누었기 때문에..



도현이가 다섯살이 되는 동안 나와 남편, 도현이, 우리 셋의 관계는 정말로 어려움이 많았다. 도현이는 굉장히 귀엽고 익살스럽지만 육아 난이도로 치면 감히 '최상급'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도현이는 키우는 일이었으며 내가 제일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육아이다. 도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사촌에 팔촌, 먼 친척까지 소문난 말썽꾸러기이며 내가 잘못 키워서 이런건지 원래 이런 아이인지가 나에게 가장 큰 시련을 주는데, 여기에 남편까지 더해져서 남편과 도현이의 궁합이 너무 안맞아서 속앓이를 정말 많이 했다. 육아 상담도 받아보고 부부상담도 받아보며 때때로 노력해왔지만 어찌됐든 확실한 건 남편도, 나도 육아에 재능도 없고 관심도, 헌신도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이 중요한 우리에게 또다시 몇년간의 구속같은, 철저한 시간 싸움이 요구되는 유아기 육아가 또다시 시작된다니.  

그래서 그동안 알음알음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된 지인들의 축하한단 말도 전혀 반갑지 않았고, 도현이에게 잘된 일이란 말도 의미없이 들렸다. 임신 사실의 자각과 동시에 귀신같이 찾아온 입덧으로 허리 아플 정도로 잠을 자며 무기력함을 견뎌야했던 지난 두달.

입덧이 끝날 시기임에도 아직도 끝나지 않는 입덧으로, 그 사이에 새로 생겨난 입덧약을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지만 알 수 없는 묘한 울렁거림으로 유쾌하지 않지만.. 그저 내 마음의 방황을 이제는 끝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써본다.

또다시 태풍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 정신줄을 붙잡고 있을 몇달간, 아쉬운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내고 싶어졌다. 계획했던 일들을 벌일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다른 걸로 달래보기로.. 그간 남을 의식하며 썼던 글들이 아닌, 나약하고 힘들었던, 그러면서 성장했던 여자로서, 엄마로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로서 솔직한 경험을 기록하고자 한다. 있어보이기 위해,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말하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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