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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샤인 Sep 20. 2021

얼떨결에 한 단발을 통해 깨달은 것

"어... 원장님 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미용실 원장님께 물었다. 원장님과 어깨 길이로 다듬는 정도만 자르기로 협의를 했는데, 잠시 졸고 있다 눈을 떠 보니 한 쪽 머리칼이 댕강! 잘려나가 목이 훤히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저 믿고 기다려 보세요."

원장님이 답했다. 싹둑 싹둑 잘려나가는 머리칼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고 긴장된 마음으로 잘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렸다.


작년 가을,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단발이 되었다. 


사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내 역사에 단발은 없다. 짧아도 어깨까지만 이었고 주로 긴 머리카락을 고수했다. 


단지 딱 한 번. 때는 2012년이었다. 드라마 '신들의 만찬' 주인공 성유리 배우의 머리 스타일을 보고는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유리라 잘 어울리는 단발 커트..


나는 단발이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단발에 대한 로망은 늘 있었다. 단발은 내게 세련된 도시 이미지의 커리어 우먼으로 보이고 싶은 숨은 로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큰 결심을 하고 단발로 싹둑! 


하지만 결과는 폭망이었다. 오죽하면 엄마도 내게 "얘, 너 이제 짧은 머리 안 하는 게 좋겠어."라고 쐐기를 박으셨을까. 그래서 이때의 사건은 '내 생애 단발은 없어!'라고 굳게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때는 2020년 작년 가을. 이렇게 마음의 문을 닫은 세월이 무색하게도 미용실 원장님은 나와 상의도 없이 단발을 강행하셨다. 얼떨결에 한 단발, 그 결과는?


"고객님 대박이에요!"

커트를 마치고 난 원장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웨이브 파마가 남아있던 머리끝이 동글동글해서 머리 모양을 잡아 주었는데 그 스타일이 딱 마음에 들었다. 짧아진 머리가 가벼웠고, 새롭게 변한 내 모습에 상쾌했다.


회사에 출근하자 동료들도 달라진 내 머리 스타일에  놀랐지만 반응이 꽤 괜찮았다. 옆 부서 팀장님은 볼 때마다 잘 어울린다고 거듭 말씀해 주셨고, 앞으로 꼭 그렇게 하고 다니라고 하셨을 정도였다. 


단발로 추억을 하나 또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가족사진! 결혼사진, 아이 백일 및 돌 사진 등 내 모습은 늘 긴 머리였다. 알록달록 물든 단풍잎과 맑은 하늘의 가을날, 친정 부모님과 오빠, 우리 가족은 함께 샤랄라 드레스를 입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단발의 모습으로 공식적인 가족사진까지 남기게 되었다.  


얼떨결에 하게 된 단발을 통해 느낀 게 있다.

무조건 아니라고 단정 짓지 말기

틀에 가두어 생각하지 말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기


한 번의 단발 실패로 담을 쌓아버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자발적은 아니었으나 얼떨결에 시도를 해 보았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큰 기분 전환이 되었고 나도 단발이 어울린다는 반전에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얼떨결에 한 단발을 통해 앞으로는 생각을 단정 짓지 말고, 가두지 말며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아주 큰 깨달음을 얻었다. 


2021년 가을, 현재는? 머리가 좀 자라서 작년만큼의 길이는 아니지만 단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 가을, 다시 단발로 돌아가 볼까?’

이번에는 얼떨결이 아닌 나의 자발적인 의지로 말이다.


작년 가을의 단발



+지난 토요일, 결국 준단발로 커트와 파마를 했습니다...^^ 가을은 단발하기 좋은 계절인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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