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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샤인 Oct 25. 2021

아빠의 청혼가 행복의 샘터에서 찾은 것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청명한 하늘. 바라만 봐도 콧노래가 절로 나는 계절, 가을이다. 문득 가을에 어울리는 사랑 노래는 뭐가 있을까 떠올려 보다가, 부모님이 가을에 백년가약을 맺으신 게 생각나서 아빠에게 여쭤보았다.


"아빠, 엄마한테 불러준 노래 있으세요?"

"응 있지." 


아빠가 답하자 놀란 내가 다시 물었다.

"우와 정말요? 뭔데요?" 


"박재란의 <행복의 샘터>."


난생처음 듣는 제목이 낯설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일단 엄마에게 불러드린 노래가 있다는 것, 망설임 없이 바로 그 제목이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와, 아빠에게 이런 면이?' 하면서 말이다.


노래를 찾아서 들어보고는 더욱더 놀랐다. 전국 노래자랑과 각종 트로트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는 아빠의 취향과는 달리 의외로 굉장히 고운 선율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소녀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곡이었다. 


<행복의 샘터>

-박재란 & 이양일 노래

-이계성 작사, 작곡


심심산골 외로이 피어있는 꽃인가

소박한 너의 모습 내 가슴을 태웠네


그리움에 날개 돋쳐 산 넘고 물 건너

꿈을 따라 사랑 찾아 나 여기 왔노라


외딴곳에 피어난 이름 없는 꽃인데

찾아주는 그대는 정녕 나의 님인가


어린 가슴에 그리던 그 사랑이라면

반겨 맞아 받드오리 따르 오리다


세상이 넓다 해도 그대만이 내 사랑

소녀의 순정에도 그대만이 나의 님


무지개 피는 하늘 밑 행복의 샘터를

우리 서로 손을 잡고 찾아갑시다


가사도 참 곱다. '소박한 너의 모습 내 가슴을 태웠네'와 특히 마지막 부분, '무지개 피는 하늘 밑 행복의 샘터를 우리 서로 손을 잡고 찾아갑시다.' 이 부분이 내 심금을 울렸다. 마침 얼마 전 전원생활을 시작하신 두 분의 보금자리가 바로 '행복의 샘터'라는 가사와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빠는 오빠와 내가 성인이 되면서 언젠가부터 늘 전원생활의 꿈을 키워 왔다고 한다. 특히 최근 2년간 암세포와 싸우시며 아빠의 결심은 더 확고해져, 결국 올해 봄, 그렇게 두 분은 외곽에 새롭게 터전을 일구며 텃밭 생활을 시작하셨다.


"여보! 아휴... 그만 일하고 좀 들어와요!"

새벽에도, 저녁에도 2시간이 훌쩍 넘도록 밭일을 하고 오시는 아빠가 걱정되는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아빠는 아랑곳하시지 않고 텃밭에 시간을 많이 쏟으시지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힘든 기색은커녕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아빠의 모습을 보면 나 또한 행복함으로 마음이 꽉 채워진다.


또한 큰 수술로 인해 소화 기능이 약해진 아빠지만 우리 식구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상을 지키며 밥을 맛있게 드시는 분은 우리 아빠다. 좋아하는 텃밭 일을 하며, 그 수확물을 맛있게 드시는 기쁨. 부모님이 계신 곳이 진정한 '행복의 샘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엄마는 처음에 전원생활을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앞에 펼쳐진 산과 파란 하늘, 뭉게구름, 꽃, 호수 등의 자연경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료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고 하신다. 곧 단풍으로 물들 가을도,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일 겨울도 기대된다며 오히려 한층 들떠 계신다.


6살 우리 아이 또한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만끽 중이다. 흙과 잔디 속에서 마음껏 뛰노는 손주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을 보는 것도 큰 행복이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의 이 '행복한 샘터'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되고 있다. 그중 무엇보다도 큰 기적 같은 선물은 바로 아빠의 건강 회복이다. 


따뜻한 봄날에 시작한 전원생활, 그리고 여름의 말미, 아빠는 당분간 치료를 중단해도 될 정도로 건강이 호전되었다. 아마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아빠가 찾은 진정한 행복. 이로 인한 선물이 아닐까?


꼭 자연을 벗 삼지 않더라도 어디가 되었든 자신만의 '행복한 샘터'를 찾는 일을 멈추지 말 것을 새삼 명심해 본다. 희망의 기운이 샘솟아 오르는 그곳 말이다.


부모님의 가을 연가를 묻다 내가 오히려 감상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리시는 아빠와는 달리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엄마를 위해, 다음에는 꼭 아빠에게 한 곡 부탁드려 봐야겠다. 이 가을이 지나기 전에 말이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2fHnkmQ2o8&t=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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