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필요한 순간
나는 사석에서 사랑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은 또 사랑 타령이라며 핀잔을 주지만
우리의 삶에서 사랑이 빠진다면
그 또한 무슨 재미일까 싶다
이런 나일지라도
기억의 마모와 사랑의 비 영속성 앞에서는
적잖은 허무를 느낀다
<이터널 선샤인>은 그런 나에게
단비처럼 다가온 영화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이 남았다
이별을 겪은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 같은 영화
주인공 '조엘'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라쿠나 사에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하나둘씩 기억이 지워져 가던 순간
조엘은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이를 번복하고 싶어 한다
그가 이를 멈추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은
바로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밝히는 기억 속인데
집이라는 둘만의 공간에서
더 작은 공간인 이불속으로 들어가
비밀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은
사랑의 은밀하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조엘은 세상에서 둘만 가진
이 추억을 필시 놓치지 않고 싶었으리라
부단히 노력하던 조엘도
결국 기억 소멸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 영화가 정말 반짝거리는 지점인데
"어떡하지?"라고 묻는 클레멘타인에게
"그냥 음미하자" 조엘은 말한다
조엘의 기억과 작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영원한 것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사람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고
사랑 역시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눈 추억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추억마저 영원히 기억되지 않더라도
머릿속에 마음속에 무의식 속에
고이 남아 우리를 이루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감정은 찰나에 흩어지지만
마음은 간직하고 기록할 수 있기에
나는 우리가 나눈 사랑에 감정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포함되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