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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더 의미 있게 보내게 해주는 일기 쓰기

오늘을 기억하게 되리란 것을 알기에.

평소 일기 쓰기가 망각과 기억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준다고 생각해 왔다. 일기에 하루하루를 기록해 놓으면 그것을 다시 읽음으로써 기억할 것인지, 아니면 '안전히 기록해 뒀기에' 더욱 쉽게 그 하루를 망각해 버릴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필요할 때 다시 보면 되니까 기록에 맡기고 나는 잊는 것이다. 그러니 일기 쓰기는 나 자신에게 기억과 망각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유튜브 알고리즘이 눈치챘는가 보다. '망각 없이 인생의 모든 날을 기억하는 극소수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추천해 줬다. 마치 평생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머릿속에다 일기를 써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얼른 클릭했다. 그 찰나에 '머릿속 완벽한 일기'의 장단점에 대한 예상이 머릿속에 스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1qmLQuMDH4

출처 : 뉴마인드 유튜브 채널


이런 능력을 Highly Superior Autobiographical Memory(HSAM)이라고 부른단다. 번역하면 '탁월한 자서전적 기억력'정도 되겠다. 영상에 의하면 전 세계에 11명 밖에 없는 희귀 능력이라고 한다. 경험한 모든 것에 대해 1분 1초 샅샅이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자동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조건이 몇 있기는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슬픈 날,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어서 힘들다고 한다. 인터뷰하는 동안에 슬픈 기억에 대해 물었는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성'은 인터뷰 현장에서 눈시울이 붉혔다.


하지만 영상의 마지막 즈음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간다.


- 질문자 :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을 갖게 되어 기쁘신가요? (이 능력의 장단점을) 모두 고려해 봤을 때요.

- 모든 걸 기억하는 여성 : 네 기쁩니다. 물론 이 능력 때문에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 능력은 저로 하여금 제 인생을 훨씬 더 많은 의도와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 주거든요.

- 질문자 : '훨씬 더 많은 의도를 가지고 살게 해 준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 모든 걸 기억하는 여성 :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란 걸 알기에 '오늘을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면 오늘을 더 뚜렷이 드러나게 만들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 물어봅니다.)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겠다는 의도, 다짐을 더욱 강렬하게 가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일기의 장점이기도 하다.


나는 하루 24시간을 기록한다. 1분 1초마다 뭐 했는지 다 쓰는 것은 아니고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뭘 했는지, 점심 1시간 동안 어딜 가서 뭘 먹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등을 '요약해서' 기록한다. 대충 이런 모습(아래 그림)이다.


예시입니다. 갈색이 일기이고 다른 색은 플래너 일정과 할 일입니다.

플래너와 일기를 함께 쓰기 때문에 [플래너 일기]라고 부를지 아니면 [24시간 일기]라고 부를지, 시간표랑 닮아서 [시간표식 일기]라고 부를지 고민할 정도로 이런 일기 쓰기 방식에 애정이 있다. 22년간 일기를 써왔지만 이런 방식으로 일기를 쓴 지는 이제 4년 차에 들어섰다.


수북이 쌓인 5,000쪽 이상의 일기를 보노라면, 사실 때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이런 방식의 일기 쓰기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4년 동안 유지해 왔다. 그리고 이번에 브런치북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를 쓰면서 이런 일기 쓰기 방식의 장점, 즉, 알 수 없는 그 끌림에 대한 원인들을 글로 풀어냈다. '시간표식 일기 쓰기의 장점 7가지'(이 글 가장 아래 링크 참고)를 썼다.


그러다 오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성'의 대답에서 내가 놓쳤던 것을 하나 건질 수 있었다. 8번째 장점이다. '오늘을 기억할 것이기에 오늘을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로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일기를 쓴다고 해서 이 여성처럼 모든 날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한번 쓰기만 해도 기억이 더 잘 떠오르는 효과는 있다. 게다가 '자동적으로' 이 날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원한다면'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는 통제권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 일기다. 슬프고 괴로운 날의 구체적 상황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직면할 수 있는 힘을 기른 다음에 덤빌 수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성의 대답을 일기버전으로 바꾸면 이렇다.


미래에 일기를 다시 읽을 때 20대, 30대, 40대 나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해 낼 것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더 의미 있게 살아내려는 의도로 충만해진다



그러므로 이 글의 제목 '오늘을 더 의미 있게 보내게 해주는 일기 쓰기'란 생각보다 단순하다. 오늘 하루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때때로 다시 읽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복잡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성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성실함을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일기 쓰기의 보상을 맛보는 수밖에 없다.


아직 일기를 쓰지 않는다면, 오늘 한번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떤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성'의 일면을 간접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느꼈던 '가치 있는 하루를 살아내고자 하는 의도로 충만한 삶'도 말이다.





*나의 일기 쓰기 방식이 궁금하다면 브런치북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의 9화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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