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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자기 돌봄노트, 비밀일기장1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개정판] 3장 1부

"소년에서 어른으로" by ChatGPT4 Image Generator


자기 돌봄노트, 비밀일기장

최근 집 정리를 했다. 더이상 펼치지 않는 아이들 동화책을 분리수거장에 내다놓으려고 꺼내다가 그 어딘가에 끼여있던 첫째와 둘째의 어린이 집 시절 '돌봄노트'를 발견했다. 주르륵 펼쳐보니 어린이 집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돌보며 관찰한 내용들을 손글씨로 써놓으셨다. 나는 이런 기록물 같은 것을 버리지 못한다. 항상 하듯 정성스레 내지를 잘라낸 다음 스캐너에 넣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보여주고 싶어서 내 일기장 파일들이 있는 폴더에 함께 넣어뒀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좋겠다. 이렇게 매일 어떻게 생활하는지 봐주고 그걸 기록해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어른이 되면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주지도 않고 다 자기 책임인데.'


과하지만 않다면 나도 누가 좀 이렇게 돌봐줬음(?) 좋겠다 싶은 생각이 40대 들어 더 든다. 특히 아이들을 훈육하고 난 다음 나도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잘못이나 실수를 하게 될 때 더 그렇다. "몸에 안좋으니까 먹지 말라는거야."란 아이들용 훈육멘트는 꽤 자주 나 자신을 찌르기도 한다. 매번 날 주시해주며 혼내줄 사람이 없다. 아니 막상 누가 혼내준다고 해도 그걸 달갑게 받아들일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와이프의 촌철살인 같은 지적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는 일기를 써왔다. 그리고 내 일기도 마치 돌봄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자기'돌봄노트다. 제 3자가 봐주는 것은 아니어서 객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타인만 볼 수 있는 것을 놓치는 등의 부족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일기만이 담을 수 있는 돌봄의 영역도 존재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속마음 돌봄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힘든 응어리를 일기에 털어놓으며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24시간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 삶의 전체 영역을 다 살펴볼 수는 없다. 권리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오직 세상에서 나만이 내 사생활을 샅샅히 살필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보안이 보장된 비밀일기장만이 나의 24시간을 담을 수 있다. 나 스스로 하는 수 밖에 없는 일이고 비밀일기장만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내 허락없이는 결코 발을 들일 수 없는 개인정보의 영역이다. 


독립과 돌봄

성인이 되면 돌봄과 결별하는 줄 알았다. 돌봄과 독립이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독립, 심리적 독립, 지성적 독립 등 성인이 되면 여러 영역에서 독립해서 돌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돌봄을 '누군가의' 돌봄으로만 생각했고 그것은 곧 독립이 아닌 의존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천천히 바뀌어갔다.


나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었는데 어떤 교수님께서 독립에 대해 하신 이야기가 오래 동안 남아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말씀이셨다. 


"세상에 완벽한 독립이 어디 있을까요? 고립이 독립은 아닙니다. 상호의존의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독립 아닌가요?" 


사회복지학에서는 아무래도 독립을 지원하는 서비스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가르치시다가 이야기가 나왔던 듯 하다. 이 때부터 독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필요하다. 다만 누군가는 '스스로 상호의존 관계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좀 더 능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독립심, 생활력이 강하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사업으로 자수성가, 즉, 홀로 큰 성공을 이뤘다는 사람들도 결국 고객이라는 상호의존의 상대가 필요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돌봄을 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밀일기는 자기돌봄에 제격인 기록이다. 


돌봄의 영역

*디자인 출처 : 펜메모덕후의 아날로그 집중력 도구


사회복지학과에서 배웠던 것 중 꽤 선명히 남아있는 것이 이 생태계 관점이다. 첫 직장도 사회복지 계열이었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던 관점이다. 줄여서 말하자면 인간은 이렇게 여러 영역에서 환경과 교류하며 삶을 빗어나간다는 이야기다. 앞서 역사가적 사고방식에서 여러 원인을 전제하는 것이 이해할만하다. 당장에 내가 겪었던 공황장애도 심리적 문제이지만 사실 아버지의 사업부도라는 가족의 경제적 원인, 해외 대학에서 학업목표의 압박이라는 교육적 원인 등 다양한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패스트푸드를 상당히 자주 먹어서 신체건강이 무너진 점, 즉, 생물학적 원인도 꽤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각 영역에서 나의 삶이 어떤지 솔직하고 면밀하게 살피는데는 비밀일기장이 적당하다. 이 표를 옆에 두고 내 일기장을 살피다보면 다음에는 심리에 대해, 신체에 대해, 공부에 대해 더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기록의 대상이 확장되는 것이다. 만약 내 삶을 전반적으로 평가해보고 싶다면 일기를 참고해서 각 측면별로 간단히 평가소견을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측면에서 교류의 질이 떨어지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타임테이블 일기

그래서 쓰게 된 일기가 타임테이블 일기다. 최근 4년 정도 계속해서 이 방식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아주 단순한 방법이다. 플래너 양식에 보면 흔한 '데일리 플랜'의 시간표에다가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 예시

시간대별로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요약해서 쓰고 그 중 의미있는 일, 중요한 일에만 메모를 더하는 방식으로 일기를 쓴다. 예전에는 중요하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사건만 일기장에 기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일기를 쓰면 생태계 관점에서 말하는 삶의 여러 측면들을 더 많이 담을 수 있다. 내 관심사 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측면들도 기록으로 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림 참고) 만약 내가 오전 10시에 방문한 공방에서의 일에만 강렬한 관심이 있었다면 오후 1시에 갔던 가족과의 나들이 기록은 일기에 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타임테이블 일기를 쓰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측면에서의 장면들을 포착해낼 수 있다. 다측면적인 인간인 내가 살아내는 하루일과는 다측면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요하다고 '느끼는' 관심사만을 틈틈히 기록하는 일기는 아무래도 삶의 측면들이 제한적이다. 인생의 시기에 따로 주 관심사가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종교적 변화(기독교 신앙에 입문) 및 심리적(공황장애) 회복이 주된 관심사였다. 30대의 나는 경제적(직장생활 적응, 아버지 사업부도 대응 등), 사회적(연애, 결혼 및 육아) 측면의 대응이 더욱 중요했다. 이제 40대에 또 다시 바뀌고 있다. 미시적으로 보면 하루동안에도 관심사는 얼마든지 바뀐다. 순간의 관심사만을 반영하는 일기는 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비춰주는 거울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여러 측면들 돌보는 돌봄노트로서의 기능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다. 


타임테이블 일기는 기록의 양이 많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쓰기 쉽다는 점은 장점이다. 경험을 시간순서대로, 있는 그대로 요약해서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심사에는 추가 메모를 하기 때문에 자기성찰의 역할도 동반할 수 있다. 


이외에도 타임테이블 일기를 쓰는 이유가 더 많이 있다. 이것은 추후 일기쓰는 방법을 다루는 장에서 좀 더 깊게 다뤄보고 싶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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