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글 Mar 02. 2024

잘하고 싶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10년 전이었던가?


사소한 일로 작은 하소연을 하던 내게, 솔직함을 넘어 무례하게 말하는 친구에게 화가 나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고는, 반년 동안 연락하지 않은 적이 있다. 원치 않는 충고가 내 아킬레스건을 깊이 건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로서는 나를 위한 충고라고 생각했겠지만, 당시의 내가 받아들일 수준이 아니었나 보다. 뼛속까지 때릴 기세로 말하는 친구가 미웠다. 도의에 어긋나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미움은 흐려지고 그때의 기억도 아무렇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을 무렵,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존심이 무척 센 아이였기에 조금 놀랐다.


"야, 어떻게 한 번도 연락을 안 할 수가 있냐?!"

“야, 잘 지냈냐?”


오랜만에 다시 친구를 만났고, 미웠던 시간이 무색하게, 우린 서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맥주 한 잔 하다가 내가 물었다.

서로가 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그때, 어떻게 먼저 연락할 생각을 했느냐고..


친구는 말했다.


"난 늘 내가 너에게 해준 것보다는 받은 게 많은 것 같아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있거든..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네게 잘하고 싶었어. 만날 때 완벽한 루트를 계획한다던지, 내가 먼저 연락을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고마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혼자 살기 바빠 먼저 연락하지 못할 때가 많고, 웬만해선 속얘기도 잘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잘하지 못하니, 나 이외의 사람에게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친구의 선물 같은 말을 듣고는 고맙고, 미안하고, 만감이 교차하며 순식간에 마음이 동요되어 어찌 답해야 할 줄 모르다가 웃어넘겼다.



그리고 그날 이후 친구의 그 말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내게 깊은 화두로 남았다.








“못해주는 게 많은 것 같아 너무 미안하네..”


훗날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좋았다.


“난 지금이 좋아. 다른 건 필요 없어. 늘 고마워. 나름의 방식으로 잘해주고 있는 것 알아.”

“그건 그렇지.”



또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각자의 방식대로 참 많은 걸 받으며 지내왔다는 것도 선명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주고받는 것은 물질 뿐만은 아니었다.

도움이나 배려, 응원을 받은 따뜻한 기억, 지나온 순간 한편에서 함께 웃던 기억들.

그런 순간순간이 내게 좋은 에너지를 주었다. 평생 유효할 따뜻한 기억들이 벌써 차고 넘친다.


나도 잘하고 싶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에게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요.

그저 모두 잘 지내 주세요.

그거면 돼요.

작가의 이전글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