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다시 발견한 나의 가능성
저는 오랫동안 ‘나’라는 존재를 혼자 정의하려 했습니다. 글을 쓰고, 공부하고, 생활을 이어가는 방식도 홀로 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수록 쉽게 지쳐갔고,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늘 낯설고 때로는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진정한 나 자신을 알게 된 순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말했듯 인간의 본질은 ‘만남’에 있습니다. ‘나’는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저는 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실을 사회복지사의 일을 하며 비로소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 관계를 요청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얼굴들을 ‘일’로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말과 눈빛, 침묵 속에서 제 내면의 어떤 조용한 부분이 건드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저를 필요로 했지만, 동시에 저를 존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관계 속에서 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사회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가 말했듯, 자아는 ‘타자의 거울’ 속에서 구성됩니다. 타인이 없다면 나는 나를 온전히 구성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은 제가 왜 감정에 예민한지, 왜 타인의 슬픔에 쉽게 물드는지, 왜 때로 침묵을 선택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관계라는 틀 속에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기술과 언어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기술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관계적이었습니다. 사람 이전에 제도가 있지 않았고, 감정 이전에 설명이 있지 않았습니다. 작은 대화와 눈빛, 사소한 감정의 울림들이 저를 조금씩 바꾸어놓았습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 우리를 윤리적 존재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며 윤리적 주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혼자일 때는 몰랐던 감정과 내면의 목소리들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깨어났습니다.
이제 저는 고립이 아닌 관계 속에서 저를 발견합니다. 부족함도 가능성도, 모두 관계를 통해 드러납니다. 관계는 분명 고단하고 때로는 상처를 남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관계 없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흔적 속에서 저는 조금 더 저다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