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회복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나를 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선택이 다 계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은 우연처럼 다가왔습니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흘러가듯,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문득 열린 길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라는 일을 처음 만난 것도 그러했습니다. 원해서 찾아간 길이 아니었고,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던 시간, 생계를 위해 시작한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그 세계와의 접점이 되었습니다.
유학생 시절, 저는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미등록 이주민 그리고 복잡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다문화 가족들. 그들의 언어와 행정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회복지사라는 사람들과 협업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직업적 협력이었을 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태도와 느릿하지만 분명한 발걸음 속에서 낯선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연민이 아니라 존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모습 속에서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의 형상이 떠올랐습니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삶의 전환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계획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 앞에서 어떤 응답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사회복지와의 만남은 제게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준비도 지식도 부족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현장은 저를 강하게 두드렸습니다. 그 일이 저를 불러낸 것인지, 제가 그 일을 택한 것인지는 여전히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우연이 제 존재를 다시 쓰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개인이 집단 속에서 기능을 수행할 때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 자리매김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단순한 유용성을 넘어선 소속감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머무를 수 있었고, 필요로 된다는 감각은 제 존재의 체온을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이전까지 제 삶조차 온전히 붙잡지 못했던 제가, 누군가의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 개념처럼, 인간의 삶은 자원이나 소득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역량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저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존엄이 제도의 언어 속에서 회복되는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저 자신 또한 회복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있다고 믿었던 그 순간, 사실은 제가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회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 제 내면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일이었고, 그다음은 익숙함이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생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훈련되지 않았으며 자격도 미비했지만, 사회복지라는 일은 제 삶과 이상하게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타인의 사연에 쉽게 젖는 감수성,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습관, 말보다는 함께 앉아주는 방식을 선호하는 성격...제가 약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이 일 안에서 강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했듯, 타자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면, 저는 현장에서 수많은 요청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요청에 응답하려 했던 순간, 저는 단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적 주체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사회복지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라는 일이 저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 일이 저를 불러 세웠고, 저는 그 부름 앞에 멈추어 섰을 뿐입니다. 삶은 목적지보다 경로가 더 중요하고, 선택보다 마주침이 더 결정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마주침이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빚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