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존재를 다시 묻는 시작
한때 저는 제 인생이 실패했다고 믿었습니다. 시작은 열정이었으나 끝은 낙인처럼 다가왔습니다. 노력한 만큼 무너졌고, 붙잡았던 만큼 놓아야 했습니다. 미래를 설계하던 손에는 더 이상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았고, 자신을 소개하던 언어는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모든 문이 닫힌 듯한 순간, 저는 천천히 제 존재의 바닥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는 고요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이름 없이 존재한다는 것, 성과 없이 산다는 것,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그 모든 것이 실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저는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질문 하나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삶은, 과연 진짜 당신의 삶인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묻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그 살아가는 방식을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성공은 종종 그 질문을 덮어버리지만 실패는 그 질문을 강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공의 궤도 안에서는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많이를 향한 명령이 ‘나’를 숨기기도 합니다. 반면 실패는 방향을 잃게 만들고 멈추게 합니다.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법철학자 조셉 라즈의 관점처럼, 인간의 자유는 단순한 선택의 크기가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실패는 그 능력을 되살리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방향 없이 이끄는 대로 살던 삶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갈 백지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백지는 두렵지만 동시에 자유롭습니다. 실패가 허락한 고요 속에서 저는 비로소 저 자신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했듯, 현대 사회는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획에서 벗어나는 순간 사회는 무능의 딱지를 붙이곤 합니다. 저도 그 눈초리 앞에서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단정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마주한 실패는 단지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표시일 뿐, 제 존재 자체의 부정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제 삶을 담아왔던 외피가 더 이상 저를 담아내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실패의 시절은 더디고 무겁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제가 배운 한 가지는, 삶을 증명하는 것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삶을 지속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살아내는 시간, 흔들리면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그것이야말로 삶이 진정 ‘나의 것’이 되어가는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의 길을 만나게 된 것도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실패로 점철된 시간에 저는 또 다른 실패들과 마주했습니다. 타국에서 소외된 이주민, 제도의 경계에 선 어르신들, 외로움에 무너진 아이들...그들의 실패는 저의 실패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비로소 어떤 존재의 역할을 느꼈습니다.
‘돕는 사람’이라기보다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 된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그 일은 제 삶의 방향을 완전히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삶의 감각을 되살려주었습니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말했듯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면, 저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제 존재의 윤곽을 다시 찾았습니다. 제 실패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무너짐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리는 계기였음을 체험했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묻는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질문 속에서 살아갑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때로는 두려워하지만,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조금씩 써 내려갑니다.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패는 저를 쓰러뜨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다시 쓰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