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묻는 순간, 삶은 조금 더 나다운 방향으로 흐른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흔하게 들려서 오히려 무게를 잃은 듯하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드물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누구인지’보다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삶이 흔들리고 익숙한 기준이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조용히 다시 묻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삶이 틀어지고 실패를 경험하며, 기대했던 길에서 벗어나 외롭게 서 있었을 때, 저는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깊이 마주했습니다. 그 순간, 과거의 목적도, 타인의 기대도, 세상의 역할도 더 이상 제 삶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백지 앞에 선 듯했고, 그 위에 제 삶을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는 마음이 찾아왔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존재를 묻는 존재’라 했습니다.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성찰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법철학자 드워킨이 말했듯,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될 때 비로소 윤리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존재의 질문은 바로 그 서사를 다시 쓰게 합니다. 실패와 공백, 낙오의 순간마저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장으로 이어지도록.
사회학자 기든스는 후기근대 사회의 개인을 ‘반성적 존재’라 설명했습니다. 자동화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자기 서사를 조율하고 해석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간표를 따르느라 자기 삶을 성찰할 시간을 잃어버립니다. 존재의 질문은 그 흐름을 멈추게 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열어줍니다.
저는 그 질문 앞에서 멈추었고, 다시 되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 “지금 하는 일이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가?”,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물음들을 통해, 저는 삶을 타인의 언어가 아닌 저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진심이 있었고, 완성된 계획은 없었지만 분명한 방향이 있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난 이들도 각자의 삶 앞에서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존재를 마주하며 제 존재를 돌아보았고, 서로의 질문이 겹쳐지는 자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남을 느꼈습니다. 존재의 질문은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동일한 조건 아래 우리가 함께 나누는 물음이었습니다.
레비나스가 말했듯, 타자와의 만남은 나의 윤리를 시작하게 합니다. 저 또한 타인의 고통과 회복, 침묵과 분투 앞에서 스스로를 되묻곤 했습니다. 그 순간의 질문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연결될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존재의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방향을 묻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되묻습니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질문이지만, 그 속에서야말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존재의 질문을 던진 이후, 삶은 조금 더 나다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느리고 불확실하지만, 분명히 ‘나의 것’이었고,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