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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옝옝 Feb 21. 2023

엄마와 엄마의 엄마

며칠 전 남원 외할머니 댁에 출국 전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다녀왔다. 엄마와 함께 찾아뵌 할머니 댁에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사진과 우리 세 모녀만이 있었다.

그동안 멀고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뵌 할머니는 기억 속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계셨다. 할머니의 허리는 꼬부랑 지팡이 같았고, 왼 다리는 혼자 움직이는 법을 잊은 듯 몸에 붙어 따라다녔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바싹 쪼그라든 해면을 떠올렸다. 30년의 시간 동안 나는 열심히 크기만 했는데, 남쪽으로 수백 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아인슈타인도 본인의 할머니를 보며 상대성이론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면서 우리 세 모녀는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할머니는 생선 대구빡이 좋으시다며 끝내 몸통에는 손도 안 대셨다. 다음 날 아침 떠날 채비를 하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당신이 직접 만드신 장과 액젓을 챙겨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장독이 있는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계단은 한 칸에 족히 40센티는 되어 보였다. 할머니께 제가 혼자 퍼 오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당신이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신다며 가파른 계단을 달팽이처럼 오르셨다. ​


할머니는 간장을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생수통 세 병에 다 털어주셨다. 이제 장 담그는 일도 힘드실 텐데, 이렇게 전부 털어 주시면 할머니는 뭘 드시냐 묻자 새끼들 주는 것은 하나도 안 아깝다고 하셨다. 된장, 고추장, 액젓까지 손수 옮겨 담으신 후에야 할머니는 다시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계단을 내려가셨다.​


할머니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


"그래도 약 먹고 가서 다행이야."


몇 년 전부터 엄마는 근섬유통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계셨다. 온몸이 바늘에 콕콕 찔리듯 아프다는 그 병은 병원을 몇십 군데 돌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을 혹사시켜 얻은 병이었다. 아마 그 병의 대주주는 나일 것이다.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겠다고 부모님은 정말 부단히도 열심히 사셨으니까.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을 참고 참다가 도저히 못 참겠을 때 강력한 스테로이드 진통제를 삼키신다. 이유도 모른다는 통증을 이기기 위해서는 진통제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스테로이드 진통제 한 알의 힘을 빌린 엄마는 할머니 힘들어서 이런 거 못 하신다며 구석구석 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다 하셨다. 그랬으면서 엄마는 나한테 딸 노릇 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얼마나 더 커야 당신들의 사랑을 헤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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