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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언니 Dec 14. 2022

8년 차 디자이너의 번아웃 극복

충분한 휴식,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있잖아요. 어디서 그런 말을 봤는데요. ‘나를 대접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잘 정돈하고 / 좋은 것을 먹고 /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피로감, 우울, 분노, 무력감, 체력 고갈. 모두 우리 몸이 보내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예요.

아직 완벽히 헤어 나오지는 못했지만 이제 조금씩 번아웃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오늘은 내 삶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제가 시도했던 방법들을 정리해보려 해요.




방법1. 여행

5년 만의 유후인

효과 ★★★☆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어요. 출발하는 날에도 머릿속에 산란했거든요. 거기에 5년 만의 유후인이니 정말 잘 쉬고 와야 한다는 욕심까지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푹 쉬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단정한 소바집에서 세상 가장 맛있는 일본식 계란말이(유후인에 머무는 이틀 내내 갔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여섯 끼니 중에 두 끼니를 계란말이로 먹었다니까요.)를 먹었고 하루에 한 번씩 어딘가에서 덤을 받았으며, 범님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낯선 것에 거침없이 부딪힐 수 있는 사람이라던가, 역시 범님은 내 영감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일본을 십 수 번 다녀왔지만 택시 한 번 타지 않았던 나인데, 이번에는 범님 덕분에 두 번이나 택시를 탔거든요. 그뿐인 줄 아세요. 범님은 모든 계산의 순간마다, 당황하고 긴장하고 버벅거리면서도 손에서 동전지갑을 놓지 않았어요. 계산만은 꼭 스스로 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는 매일 밤마다 일본어 교재를 몇 챕터씩 나가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는 제가 괜히 뜨끔하더라고요. 그는 요즘 금붕어 돌보랴, 뜨개질하랴, 일본어 배우랴, 외주 하랴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에너지가 다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면서도 부럽다니까요. 제게 있던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간 걸까요?


2022 가을 유후인





방법2. 강의 듣기

techit의 피그마 기초 강의

효과 ★★☆☆☆


지난여름, 갑작스러운 직무 변경으로 6개월 동안 프로덕트가 아닌 PMF를 찾기 위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어요. 사실 요 근래 브런치에 올린 글도 과거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관한 것들이에요. 지나간 일이라도 손에 쥐고 정리해야 내가 여전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써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던 찰나에 알고리즘이 저에게 피그마 기초 강의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더라고요. 기초적이지만 실무에 자주 사용되는 기능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강의 었어요. 게다가 불과 몇 달 전에 봤을 때만 해도 20만원대 였던 강의가 연말이라고 세일이라도 하는 건지 9만원(아마도 구매의 결정적인 이유)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지라도 기본기를 다시 뒤적이는 일은 자존감을 높이는데 오히려 도움이 돼요.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라던가 '나도 꽤 하는 사람이라구!' 하는 등의 자기 위로가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여하튼 손에 놓고 있던 툴을 다시 손에 쥐게 되어서 기뻤어요. 하지만 그러다가도 실무에 당장 활용할 수 없는 내 상황이 답답해졌어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일치시키고 싶었어요.





방법3

이직

효과 ★★★★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불안감도 커져 갔어요. 다시 UX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을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시장에서 팔리는 디자이너일까?


이직은 직장인이 겪을 수 있는 변화 중에서도 꽤 큰 축에 속하죠. 불안감과 초조함을 안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시장의 객관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레퍼런스 체크에 응해주었던 팀원들이 나를 평가한 내용을 공유해 주었을 때는 눈물까지 핑 돌았다니까요. 어디를 보완해야 하고 어떤 부분을 더 강화해야 할지 파악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어요.


계기가 없이는 정리하기 힘든 게 커리어의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 이직이긴 했지만, 8년을 통틀어 가장 깊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여전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어서 기뻐요. 하지만 이직이 결정되었다고 해서 번아웃이 아주 해소된 건 아니었어요. 아마도 새로운 곳에서 쌓아가는 성취감들을 디딤돌 삼아 완전히 헤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요.


이직 활동을 함께한 2022 포트폴리오 일부




방법4

책 읽기와 운동

효과 ★★★☆☆


사실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는 게 상황을 직접적으로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책 읽기와 운동은 번아웃을 빠져나갈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의 근육을 길러 삶을 견뎌낼 힘을 비축하는 것에 더 가까우니까요.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체력을 기르는 거죠.


저는 매일 저녁 푸시업 30개를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횟수를 늘려 아침/저녁으로 도합 60개씩 하려고 합니다. 푸시업을 하고 나면 확실히 뇌로 피가 돌아 어깨와 머리가 가벼워지고요. 손끝, 발끝으로 피도 잘 통해서 수족냉증에도 큰 효과를 보거든요.


책은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작게나마 모임을 만들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면 더 책의 내용을 잘 소화할 수 있어요.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 번아웃을 빠져나오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은 <원씽>이었어요.


<원씽>을 읽고 멀티태스킹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처리한다는 것은 그만큼 산만하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더라고요. 반대로 한 가지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력과 지구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데요. 범님은 한 번 무언가에 집중하면 2~3시간은 거뜬히 꼼짝도 하지 않고 몰두해요. (심하면 하루 반나절 동안 꼼짝도 않습니다.)


반면에 저는 30분~1시간 단위로 여러 일들을 옮겨 다니며 해요. 최근에는 ADHD가 아닌가 의심도 해보았어요. 모니터에 여러 가지 창을 켜놓고 이창 저창 옮겨 다니는 것은 기본이며, 핸드폰에 뜨는 푸시 알림은 오는 족족 확인하고 닫기 버튼을 눌러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마도 그냥 산만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원씽을 읽고 뜨개질을 시작했어요. 한 번에 집중하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려고요. 그러면 산란했던 머릿 속도 조금은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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