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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구나 Aug 15. 2020

타인의 글을 칭찬하는 분께

"너 안에 그 있다!"


제목을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쳤네요. 저에게 제목은 푯대. 그게 정해져야만 느릿느릿이라도 한 자씩 끼적일 수 있는데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무슨 얘길 쓸 건지 가닥이 잡혔으면 제목에 뜸 들일 이유가 없는데 주저주저, 차마 정하지 못했던 제 속을 들여다봅니다.

 

두 달 전쯤 매일 한 편씩 글 쓰는 모임에 발을 담그게 됐습니다. 정보 제공형 글을 쓰는 딴 분들과 달리 저는 되는 대로 아무 거나 썼어요. 제 일상이 단조로운 데다 딱히 아는 것도 없으니 나눠드리고 싶어도 나눌 게 없더라고요. 가난한 집 손님 상차림이랬자 김치 한 보시기와 보리밥, 고추장이 다인 것처럼 말입니다.


강사님이 참 야무졌어요. 한 명도 낙오하지 않도록 열 명씩 친친 다리를 동여매듯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주시더군요. 서로 피드백도 해주고 으쌰 으쌰 독려도 해주라고. 아, 당연히 비대면이었죠.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아예 시도조차 안 했을 걸요? 강의 한 번 들어보겠다고 신청했다가 완전 코가 꿰여 글을 쓰게 된 것만도 얼마나 황망했는데요.


쉰 살 지나고 몇 년 더 흐르니 이제 어딜 가나 원로 축에 드는 나이. 딴 건 몰라도 납작 엎드리는 일만큼은 잘해서 전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있기로 했네요. 제가 대학 다녔을 당시엔 카페에 칸막이가 있었는데도 노인네들이 옆 테이블에 앉는 거, 불편하고 싫었거든요. 젊은이들 마당에 괜히 섞여 물 흐리는 거 아닌가 싶고, 이 나이에 뭘 한다는 게 노욕 같고, 참, 드는 생각이 많았답니다.


잘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앉을자리 설 자리 가릴 줄 아는 걸 거예요, 아마도. 엉덩이를 뒤로 쑥 뺀 채 도망갈 출구부터 확인해 버릇하고 살아온 '소심이'다 보니 조직에 고요히 스며드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데요, 팀원들 글과 제 것이 달라서인지 어느 날부터 제 글에 칭찬들을 하는 거예요. 애초 계획은 그게 아니었는데, 정보와 관련 없는 글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 점점 불편해지데요.


자존감이 낮고 인정 욕구는 높은데도 막상 화제의 중심에 놓이면 불편한 저란 사람. 대체 왜일까요? 셀프 1인 제 자신과 저의 맘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셀프 2가 얼마나 자주 싸우는지를 여러분들이 아신다면. 그런 날이면 저는 선무당 사람 잡듯 심리 에세이를 읽으며 저를 분석하곤 하는데요, 결론은 이거였어요. 누구보다 제가 저를 하찮게 여긴다는 것. 즉, 어떤 칭찬도 들을 자격이 없으니 물리려 한다는 것과, 칭찬받았단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미워하면 어쩌나 두렵다는 게 또 하나.


그러니까 저는 더 늦기 전에 입장문을 내야 했던 겁니다. 제 글을 칭찬해주는 몇몇 분께. 그리고 그 소모임 내에서도 어쩌면 그 칭찬에 동의하지 않을 몇 분을 향해. 정직히 말하면 제목을 정할 수 없어서 못 정한 게 아니었어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제목을 피하면서 제 뜻을 전달할 방법이 없나, 그걸 고민하느라 잠을 설쳤던 겁니다.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분께. 자존감이 높다면 저는 이렇게 심플하게 제목을 결정한 뒤 잠을 청했겠지요. 그런데 제 맘 깊은 곳에 사는 저의 셀프 2가 분탕질을 하는 거예요. 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있어?라고요. 비밀 댓글로 저를 응원해 준 분이 몇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조금 뻔뻔할 용기가 있었다면 이런 제목을 정할 수도 있었겠죠. 저에게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해 주신 분께,라고. 분명 그렇게 말해 준 팀원이 있었으니까 일찌감치 제목을 정하고 잠자리에 든 뒤 다음날 새벽 휘파람을 불며 산뜻하게 일어났어도 되는 거였잖아요.


고민이 깊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정신이라면 그런 제목 쓰기 부끄럽겠더라고요. 타인의 칭찬 앞에서 당연하다는 듯 우쭐대는 사람을 보면, 그가 그런 소리 들어 마땅해도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저의 못난이 근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역지사지할 줄은 아는 거죠. 제가 문득 쓸쓸해지고 힘이 쏙 빠지는 상태가 두렵다면 상대방도 그러지 않기를 소망하기. 의도 없이 저에게 생채기를 입힌 누군가처럼, 의도라곤 없는 저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면 그보다 송구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심리·상담에 흥미를 느껴 코칭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잘 나가던 대기업 홍보실을 관두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코칭을 시작하셨다는 강사님을 몰래 흠모할 정도로 그 수업을 좋아했네요. 세바시 강연에 초청돼도 너끈할 만큼 정연하게 말을 풀어내시는 그분이 늘 버벅거리는 저에겐 그렇게 멋지고 커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느끼는 건 다 비슷비슷해서 저를 비롯한 수강생 모두가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선생님, 어쩜 목소리도 그리 좋고, 말씀도 그렇게 잘하실 수가 있으세요…. "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면 토씨 하나 안 고치고 책을 출판해도 될 정도였던 정말 멋진 그분 대답.

"저한테 말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는 분치고 말씀 못 하시는 분 못 봤어요. 자신도 이미 잘하고 있는데 좀 더 나아지고 싶은 사람 눈에만 상대방이 잘하는 게 눈에 띄고, 부럽고, 닮고 싶고, 대단해 보이는 법이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무슨 일이 됐든 어떤 사람이 뭘 잘해서 참 좋아 보인다 싶잖아요? 그건 여러 선생님들 안에도 그와 똑같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랍니다."


"내 안에 너 있다."


불쑥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이동건이 했던 저 말이 떠오르더군요. 백 퍼센트 적절한 예는 아닐지 모르겠는데요, 오늘 제목 옆 부제는 그때 그 드라마의 기억을 더듬어 패러디 해 본 거예요. 타인의 글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너' 안에도 '그 타인'의 특장점이 분명 들어있다는 의미에서요.


그러고 보면 옷을 세련되게 입을 줄 모르는 사람이 옷 잘 입는다고 누구 칭찬하는 거 보셨어요? 옷을 잘 입는 게 어떤 건지, 도통 그런 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은 옷 잘 입는 게 뭔지도 몰라요. 간을 맞출 줄도 모르고 맛이 있든 없든 배만 채우면 된다는 입장이면 음식 솜씨 좋은 사람 부러울까요, 아뇨, 상대가 음식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조차 모를 걸요?


도무지 버릴 줄을 모르고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사는 걸 아랑곳 않는 사람은 모델하우스처럼 해놓고 사는 친구 집엘 가도 덤덤할밖에요. 깨끗하게 정돈하고 사는 미니멀리스트나 얼른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죠. 밤을 새더라도 싱크대를 훌렁 뒤집어엎고 옷장도 새로 정리하고 싶어서요.


글에 관심 없는, 글을 잘 써 보고 싶은 욕구가 없는 사람은 누가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 알지도 못 하는 것 같더라고요. 글을 이미 충분히 잘 쓰는 사람이라야 써진 문장 만나 질투가 나는 법이죠. 그러니까 타인의 글이나 음식, 인테리어 들을 칭찬하는 사람 치고 그 분야에 일가견 없는 사람은 없더라는 것. 타인 안에 당신도 들어 있더라는, 오늘 제 결론은 이것입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요, 저는 이 짧은 글을 종일 씁니다.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사흘째 개키지 못한 빨래들을 피해 딴 방으로 옮겨가 잠을 잘지언정. 제가 한 시간 아니, 한 나절동안만에라도 뚝딱 글 한 편 완성할 능력이 있다면 제 글이 좋다는 분의 칭찬을 수줍지만 감사히 받아들였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한꺼번에 두 가지도 못 한답니다. 문화센터 글쓰기 수업 일 년 다니는 동안 A4 두어 장 분량의 글을 열일곱 편 쓴 게 전부였던, 잘 쓰지 못하니까 글을 오래 붙들고 있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제 그릇 크기가 딱 그만큼이랍니다.


그러니 아직 엄마 손을 필요로 하는 자녀 뒷바라지를 하면서, 직장도 다니면서, 꾸준히 글을 올리는 분을 보면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그동안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단 말이야, 이런 말 입도 뻥긋하지 말자 싶고 말이에요.


그럼에도 일 년에 열일곱 편 썼다는 문화센터에서의 일 년. 그 시절이 저의 '화양연화'였다면 믿기 어려우시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잃어버렸던 제 이름으로 다시 불린 게 그때가 첨이어서였던지, 저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붙어서였는진 모르겠네요만.


그렇다면 미루어 짐작해 주세요. 여러분의 격려 속에서 일주일에 한 편이나 될까 말까, 기신기신 글을 쓰고 있는 이 즈음을 제가 힘들지만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을지. 게으르고 비겁한 저 혼자였다면 저는 벌써 나가떨어졌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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