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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구나 Aug 27. 2020

노크

릴케가 그랬대,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은 쓰지 말라고

쪼오기~ 붙여 놓은 메모가 간명해졌네?”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두절미 들려오는 M의 목소리. 앞 집과 우리 집 사이에 난 계단 쪽을 향해 우산을 탈탈 터는 M이 피식, 웃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얼굴은 안 보여도 M 특유의 장난기가 말투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응? 뭐가 간명해졌다고?”

나도 M의 말꼬리를 받아챘다. 웃음을 참는지 M은 물기를 털기 위해 우산을 앞뒤로 흔들어댈 뿐 대꾸가 없었다. 슬슬 신경이 쓰이고 맘이 뾰족해지려는 순간 초인종 위로 시선이 갔다. 범인은 이거였군. A4 용지를 초인종 사이즈로 오려서 ‘노크!’라고 써서 붙여 놓은 게 언제부터였더라.


대학 동창인 M의 별명은 '호기심천국'이었다.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던 4학년 때, 내 자취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로 친해진 친구. 한창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유행일 무렵이었다. 시에 등장하는 구절처럼 그녀와 나는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였다.


평범한 나와 달리 M은 독특한 구석이 많기도 했다. 함께 길을 걷다가도 어느 틈에 증발해버린 M을 찾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때마다 M은 무엇에 꽂힌 건지 가게 유리문 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천재 같았고 어찌 보면 산만했지만 호기심과 관찰력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M의 입에서 과연 무슨 말이 나올지 바짝 긴장한 건 그런 까닭에서였다.


“작년에 너네 집 왔을 때랑 문구가 달라서. 저렇게 짧게 노크,라고 써 놓지 않았잖아, 그땐? ‘초인종을 연결하지 않았으니 조금 세게 문을 두드려 주세요’라고 했던가. 맞지?”

M이 기어이 큭큭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재치라곤 없이 길게 설명을 늘어놓은 듯한 메모를 M은 의식하고 있었구나. 가뜩이나 '묘사와 설명'을 화두로 끌어안고 살던 시기여서 나는 더 무안했다. 정수리로 뜨듯한 기운이 몰리는 것 같았다. 열패감을 들키지 않게 너스레를 떨고 싶은데, 빗물 닦을 수건을 건네주는 것 말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고 창원서 서울로 이사를 온 게 2012년이었다. 대학 때 자취방 옮겨 다닌 것 포함, 이사라면 몸서리가 났기 때문인지 나는 구축 아파트라도 좋기만 했다.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괜찮았지만 두 가지는 요구했다. 현관 입구 두꺼비 집은 원목 액자로 감쪽같이 가려달라 했고 거실 벽에 붙은 인터폰은 떼어버리기로 했다. 여간해선 벽에 못 하나도 박지 않고 뭘 주렁주렁 달거나 붙이는 것을 싫어한 탓이었다. 딱 한 가지, 택배 아저씨나 마트에서 배달 오실 분들이 걸렸다. 아무리 눌러봤댔자 소리가 안 나는 멍텅구리 초인종일 뿐이라는 메모를 써 붙인 건 그분들 때문이었다.


- 인터폰을 달지 않았으니 조금 세게 문을 두드려 주세요!


식상하긴 했지만 달리 무슨 말을 적을까. 리모델링을 끝내고 이사를 온 8년 전 내 마음은 그랬다. 노크를 했는데 집 안에서 반응이 없으면 더 세게 칠 수밖에 없는데 ‘조금 세게’라니. 군더더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벨이 없어 수고스럽게 문을 두드려야 할 방문객 입장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친절이라 믿으면서. 변명하는 듯, 이해를 구걸하는 듯한 그 문구는 현관문 옆 초인종 위에서 그렇게 3년 가까이 붙어 있었다. 중국에서 20년쯤 살던 M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처음 우리 집을 방문했던 2015년 말까지.    

 

그즈음 나는 M 몰래 백화점 문화센터 글쓰기 수업에 들락거리고 있었다. 주목하는 눈이 없어야 언제든 편하게 때려치울 수 있을 테니까. 등 떠밀려 간 건 아니었지만 매번 기가 빨린 채 귀가하게 되는, 그날도 그런 금요일이었다. 


역시나 교수님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군말이 많고 설명이 늘어지는 내 글이 돌아봐졌다. 질문을 해서라도 좀 더 배우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독자가 읽음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는 이치를 염두에 둔다면 굳이 글에 모든 걸 ‘다 말하려 하지 말라’는…, 그러니까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생각 접으란 뜻이었다. 오직 나를 겨냥한 말 같아 푹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성취는 더디고 진전도 없었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강의로 여기고 싶었다. 십 년째 그 수업에 다니는 선생님들껜 교수님의 강의 노트는 날깃날깃한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나에겐 그렇지 않았으니까. 칭찬을 못 들어도 지적을 받아도 둥둥 가슴이 뛰며 벅차기만 했던 수업을 마칠 때마다 녹아웃이 됐다. 아무도 나를 힘들게 하진 않았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방전이 돼 납작 퍼지기 전에 살아 돌아가야지. 그런 다음 얼른 내 몸에 전원을 연결해 충전해 줘야지. 2호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해 집까지 오는 동안 나는 줄곧 그 생각만 했다. 간신히 현관문 앞에 서서 도어록 뚜껑을 열고 비밀번호를 막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습관적으로 초인종 쪽으로 눈길이 갔다. 창원서 이사 온 뒤로 3년 넘게 붙여놓은 문구가 그날따라 더 거슬렸다. 변심한 애인처럼 냉랭하게 메모지를 쏘아봤다. 낚아채듯 확, 뜯어냈다. 그러고 나서 써 붙인 말이 ‘노크!’. 후련했다. 설명을 길게 늘이지 말라는 글쓰기 수업 덕에 얻은 첫 성과인 듯싶을 정도로.




“야, 인제 좀 사람 사는 집 같네.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거둬낸 M이 거실로 들어서며 또 툭 뱉었다. 현관에 서너 켤레 나뒹구는 신발과 거실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인 책들이 웬일이냔 투였다. 그녀가 처음 우리 집에 다녀갔던 날은 에세이 수업 다니기 전. 잡지나 모델 하우스에서 볼 수 있을 정도 정갈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매일 쓸고 닦기 바쁠 때였다. M의 관찰력에 다시 한번 질리는 기분이었다. 몇 개월 새 바뀐 초인종 문구를 알아챈 것만 봐도 그랬다.   


“ 금요일마다 어디 다닌다더니, 글쓰기?”

 “ ………… "

 “ 야, 우리 나이에 꼭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봐야 해? 저 책들 봐라, 봐! 온통 그쪽이네 뭐.”


이번엔 내가 웃을 차례였다. M에게 들킨 이상 쑥스러움은 미뤄두는 게 좋았다. 거실 책더미 옆에서 원고를 꺼내왔다. 조금만 긴 톡을 보내도 한숨을 쉬며 이걸 언제 다 읽냐는 지인도 있는데 M 같은 친구라면 좀 써먹어야 했다. 며칠째 만지작거리고 있는 글을 들이밀자 M이 눈을 슬쩍 흘기더니 원고를 들고 소파에 누웠다. 책을 많이 읽고 글에 관심 많은 M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점심 차릴게. 글 읽어 봐 줄 사람 있으면 좋은데 부탁할 사람이 없더라. 남편은 뻘소리나 해대니 안 싸우면 다행이고, 애들도 첨엔 읽어주더니 귀찮다 하고. 암튼 편하게 까발려 줘. 천하의 하루키도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입장인데, 나까짓 거야 뭐.”


뭘 좀 아는 M이어서일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발가벗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주걱을 쥔 손이 조금 떨렸다. 잠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소파에서 M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맑은국을 다시 데워 내올 때쯤에야 그녀가 식탁 쪽으로 건너왔다. 열무김치랑 강된장, 참기름 한 방울 섞어 밥을 비비는 동안에도 M은 웃고만 있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을 휘젓기 위해 나는 앞뒤 없이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열무비빔밥만 보면 침이 고이는데, 그럴 때면 꼭 그 책 제목이 떠오른다는 둥, 신간이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 읽는 다섯 작가 안에 든다는 둥. 초기작이 그래도 더 좋더라는 둥. M이 내 글에 대해 피드백을 해준 건 밥을 먹은 뒤 발코니로 커피를 내갔을 때였다.


“두어 번 읽으니 이해가 되더라. 너, 묘사를 몹시 의식하고 썼지? 꼭 필요한 설명까지 빼버리면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것 같아. 과장이 계장의 아랫 직급인가 헷갈리더라니까. 젊은 과장인 너네 남편이나 정년퇴직을 앞둔 계장님이나 서로 존댓말 지, 그 계장님 부인도 너도 상대방을 사모님이라고 높여 부르지, 그러니까 너네 부부가 마치 직속상관인 계장님 댁에 뭘 도와드리러 간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누군가 그랬다. 수필은 한 번만에 이해가 안 되면 좋은 글이 아니라고. 쉽고 명확하게 써야 한단 얘기였다. 낙담한 채 다시 읽어보니 M의 지적이 옳았다. 나는 곧바로 노트북을 열어 ‘남편이 삼십 대 초반의 과장이며 상관’인 점을 적시했다.


“너 같은 고급 독자도 여러 번 읽어야 이해가 될 지경이니.”

“글로 표현하는 게 어디 쉽니? 그래도 갈치 대신 고등어만 먹고 근검절약했다는 얘기랑 너네 아들이 허구한 날 먹는 집밥보다 앞집에 배달 온 자장면 부러워했단 부분에선 찡하더라. 만날 굴 파고 숨어 지내더니 어쭈, 문화센터 다닐 용기를 다 내고, 제법인데? 찜질방에나 한번 갈까. 인제 홀딱 벗고 목욕해도 되겠다, 우리.”

 

빗줄기에 바람이 섞여드는 모양이었다. 발코니 맞은편 숲 속 나무들이 촉촉하고 무성한 초록 머리채를 마구 흔들어댔다. 궁기가 밴 내 삶의 속살 부분을 감출까 말까 고민 중이었는데 바로 그 장면에 친구가 공감했다니.


"어느 것도 만만한 인생은 없어." 

M이 선문답 하듯 한 마디 뱉더니 숲 쪽으로 아련한 눈길을 보냈다. 장난기는 온데간데없고 쓸쓸해 보이기만 한 그녀가 맘에 걸렸지만, 나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주절댔다.


“나 요즘, 집안일에 건성건성인 내가 좋아. 릴케가 그랬다더라.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안 드는 사람은 글을 쓰지 말라’고. 글쓰기가 그만큼 내게 절실한지는 모르겠는데 모든 일에 우선하는 것 같긴 해. 그동안 시댁에도 친정에도 온몸으로 나를 입증하듯 살았더라고. 인정받고 칭찬 들으려고 말이야. 거두절미 ‘노크!’라고만 써 붙이던 날, 어찌나 통쾌하던지. 그날 결심했지. 누가 나를 오해할까 두려워서 설명을 길게 늘이는 짓은 집어치우자고. 아직은 이도 저도 아닌 내 글처럼 관성 때문에 흔들릴 때도 있지만, 이젠 남 의식 않고 내 식대로 살아볼래. 내가 초인종을 뗐든 말았든 남들에겐 그게 무슨 대수겠니, 안 그래?”

 

내 말이 끝나자마자 M이 나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표정이 풍부한 그녀의 얼굴에 다시 장난기가 스며 있어 안심이었다. 나는 얼른 손을 갖다 대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새 비는 멎고 먹구름이 엷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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