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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구나 Sep 08. 2020

내 인생의 예방주사

나는 아들 중학교 졸업식에도 불참한 엄마였다

- 언니, 다 때려치우고 군대나 갔으좋겠습니더. 해병대나 가서 마, 실컷 고생이나 하믄 속이 시원하겠다니까예. 서울서 재수 시킬라카믄 부모 등골 빠지는 줄도 모르고, 내참. 출장 온 김에 원룸 청소나 해 줄라꼬 들렀드만, 하이고야, 학원에 있어야 할 놈이 처자빠져 자고 있다 아입니까.


내 언니들 외엔 여간해선 쓰지 않는 언니라는 호칭을 그녀가 겁 없이 사용할 때마다 겁이 난다. 정말 제대로 된 언니 노릇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이다.


신장 170센티미터에 얼굴은 CD 사이즈만 한 남편 후배 부인. 그녀는 자기 아들에게 퍼부을 욕을 내 앞에서 세 시간 넘게 풀어놓고 일어섰다. KTX 시간이 임박한 탓이었다. 수능이 코 앞인데 아들놈이 성에 안 차 죽겠다는 그녀는 '언니는 애들을 우짜믄 그리 잘 키웠어예'라는 말을 몇 번이나 추임새로 집어 넣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봤을까 싶게 그녀는 천진난만하다. 끝이 좋으면 무조건 좋다는 것인가.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을지를 짐작도 안 하려는 그녀의 단순함이 조금 불편하다. 그러는 한편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미스코리아 못잖은 외모로 화려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녀가 억척인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은 뒷전인 채 늘 동동거리고 사는 고군분투형 인간. 한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 언니, 혁이는 여전히 멋지게 살지예. 그노무 자석, 진짜 놀기 좋아해서 대학이나 가겠나 싶드만 언니는 좋겠습니더. 딸 아들 둘 다 번듯한 데 취직한 것 같고, 는 고마 엄마 노릇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네예.


차 시간을 놓치고 도로 주저앉을까 봐 초조해진다. 한숨을 푹푹 내쉬는 그녀가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 경험은 내 경험일 뿐이다. 위로를 해준답시고 충고를 떠벌리다가 자칫 내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기라도 하사람들은 금세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다. 업어줘도 시원찮을 자식들 아니냐고, 다들 나더러  부른 소리 한다 했다.


- 기차 놓칠라. 갈 거면 빨리 일어서. 아님 자고 가든가.

띠동갑 막내 동생 혼내키는 큰언니 같은 말투로 나는 그녀를 문 밖으로 내몰다시피 한다. 그녀가 화장실 갔을 때 미리 준비해 놓은 종이 가방을 건네자 천진난만하게 뭐냐고 묻는다. 가끔은 말줄임표로 남겨둔 채 웃고 넘어가 주면 덜 민망하겠는데 반드시 캐묻고야 마는 이 친구, 정말 내 타입은 아니다.


- 창원 도착하기 전에 출출하면 먹을 간식. 그리고 황석영 책하고 내가 5년 전에 쓴 에세이. 심심하면 읽어 보든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십년 넘게 살았던 경상도에선 이름 끝자를 부르곤 한다. 그녀가 언급했던 '혁'이는 그러니까 내 아들 녀석이다. 그녀에게 황석영 자전소설 <개밥바라기 별>을 준 건, 책의 주인공 내 아들만 빼박은 게 아니라 그녀의 아들도 닮은 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쳐도 되었을 걸, 쑥스럽게도 '내 인생의 예방주사'라는 잡문 한 편까지 그녀에게 건넨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녀가 불러준 호칭에 걸맞 언니 값을 하고 싶어졌기 때문? 그도 그렇지만 아무리 더분한 성격의 그녀일지라도 말로 충고하는 것보단 글이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내 인생의 예방주사


혓바닥에 불이 날듯 매운 라면이 먹고 싶었다. 고춧가루 한 숟갈을 미리 풀고 땡초 몇 개를 썰어 넣어 라면을 끓였다. 20개월 전부터 변발 같은 머리 모양새로 군 복무 중인 아들의 소속 부대. 귀신 잡는 해병대 이야기가 곧 전파를 탈 예정이었다.


콧구멍을 씰룩이다 연거푸 재채기를 한다. 안방 TV 앞에 라면 냄비째 갖다 놓고 퍼질러 앉는다. 혀 끝이 얼얼하다. 정수리께에 삐질삐질 땀이 솟는 걸 느끼며 리모컨을 누른다. 개그맨 김영철이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한다. 바리캉에 살점이 패일 듯 깎여나간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떨어진다.


개그맨 허경환도 보인다. 이빨을 응등 문 채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워낙 장발이라 이발병들이 더 힘주어 밀고 있는 눈치다. 함께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도 오만상을 쓰고 있다. 스타들이 군부대에서 생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란 걸 그날 나는 처음 봤다.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아들이 해병대 입소 통지서를 받아왔을 때 우리 부부는 덤덤했다. 언제쯤 군대를 갈 것인지 어디에 지원할 건지 한 마디 들은 적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부모가 시킨다고 따라줄 애가 아닌 걸 인정하고 매사를 아들에게 맡기게 되기까지 물론 쉽지는 않았다.


군대 가기 전 설 명절 즈음이었다. 며칠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용돈이 부족하단 건지 맘이 쓰였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날 밤 지잉, 문자가 도착했다.

'엄마, 택배 상자 싣다가 밥때를 놓쳤는데 퉁퉁 불어 터진 짜장면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거야. 아! 그걸 씹어먹는 그 기막힌 심정을 누가 알겠노!'

지랄. 그런데도 '수고 많다'고 그저 그런 뻔한 답장을 보냈던 것 같다. 진짜 내 속 맘은 이랬으면서.

'그 시간에 공부해서 차라리 장학금을 받아라, 이 청개구리 같은 놈아!’


속내 감추는 덴 이골이 나서 잘 넘겼다지만 내심 대견했던 건 무슨 영문일까. 돈 떨어질 때만 부모를 찾는다고, 부모가 ATM이냐고, 모이기만 하면 친구들이 푸념을 해대는 걸 허구한 날 들어서였을까.


나중에 딸애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들은 해병대에 가기 위해 체력과 담력을 차근차근 준비한 모양이었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우리 부부에게 각각 비싼 속옷 한 벌용돈 십 만원을 준 서울서 부산까지 '국토종주'용 자전거를 사러 나간 게 그 증거였다.


“여러분, 상륙돌격형 머리가 뭔지 압니까!”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오도록 악을 쓰는 소대장의 목소리에 놀라 면발을 씹다 말고 화면을 본다. 잔뜩 굳어 정면을 응시하는 대원들 뒤편으로 보이는 의미심장한 표어.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가 카메라에 잡혔다 사라다.       

 

“언제든 전쟁에 나갈 태세를 완료했단 뜻의 헤어스타일입니다, 알겠습니까!”

“넷!”

일사불란하고 살벌한 기운이 TV 화면 바깥 나한테까지 전달되는 것 같다. 군기가 센 해병대라는 걸 의식한 설정일까. 아니면 재미를 노리고 실제보다 약하게 내보내는 게 저 정도일까. 브라운관 밖으로도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구체적인 현장 분위기에 나는 그만 젓가락을 놔버린다.


오해 받아도 싸다는 각오로 입을 열어야겠다. 나는 아들 중학교 졸업식에도 참석을 안 한 엄마였다. 사춘기 아들과 사투를 벌여본 지인 한 명만 ‘오죽했으면’이라고 반응했을 뿐 ‘어떻게 엄마가 돼 가지고 그럴 수가’ 쪽이 단연 우세했다. 아무리 속이 썩었어도 그렇지 졸업식에 안 간다는 게 말이 되냐는 투였다.


한 번 더 눈감아 주고 졸업식에 참석하고 마는 게 오히려 쉬운 선택이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집 안에서 혼자 그 시간을 견디는 건 지옥보다 못했다. 오지 말라고 아무리 악다구니를 했을지라도 아직 늦지 않았다며 운동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맘을 꾸욱 참아냈다. 이만큼 치명적으로 잘못해 버려야만 아들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졸업식에 못 간 미안함을 부채로 떠안고 조금씩 갚으면서 살기로 다짐했다.


통할 땐 누구보다 잘 통하면서 우리 모자는 예민하고 섬세한 외골수 끝판왕이었다. 공무원 남편 월급에 집도 장만하고 빚 안 지고 살려면 자식 농사만큼 중요한 재테크는 없다고 믿었다.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팽개치고 지방 소도시에서의 삶을 받아들인 건 내 인생의 마지노선이었다. 더 이상의 후퇴는 용납할 수 없었다. 아이들과의 2인 3각 경기를 통해 나의 건재를 증명하고 싶었다. 순한 딸애는 올백을 맞기도 할 만큼 수월했다. 아토피 때문에라도 산만할 수밖에 없었던 아들은 달랐다.


올림피아드 시험이 코 앞인 어느 날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얼마큼 아프면 중차대한 이 시기에 결석을 하냐고. 학원 근처 PC방 열댓 개를 뒤진 후에 짱구머리 아들을 찾아냈다. 매사 회피형 인간인 남편이 웬일로 한 마디 했던가 보았다. 그날 밤 아들은 귀가하지 않았다. 남편은 잠이 들 수 있었지만 나는 베란다 불을 켜 둔 채 밤새 서성이다 두 손을 모았다. 매번 아쉬울 때만 찾아서 죄송해요, 주님. 잘 부탁합니다, 한 번만 더 살펴주세요, 주님.


교칙을 크게 위반한 일로 고3 학생주임을 뵈러 간 날도 있었다. 무릎을 꿇지만 않았다 뿐 그보다 더 낮아질 순 없었다. 애간장이 다 녹아내린다는 말이 뭔지 그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울엄마에게 더 했으면 더 했겠지. 아들을 이해하려고 애써 보다가 그래도 힘에 부치면 최후의 수단인 듯 황석영 자전소설 <개밥바라기별>을 읽었다.


기합이 바짝 든 연예인들에게 소대장이 ‘편히 쉬어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편히 쉬는 자세는커녕 묘기 수준의 동작이다. 1미터 상공으로 몸을 붕, 날렸다가 공중에서 다리를 꼰 다음 양반자세로 착지하는 게 ‘편히 쉬어 자세’라니. 다들 당연히 실패다. 허경환도 넘어지고 김영철도 고꾸라진다. 어리바리한 상대방 자세를 보고도 기합을 받을까 봐 웃지조차 못한다.


자식은 ‘편히 쉬어 자세’ 동작도 저렇게 힘든 해병대란 곳에서 훈련 중일 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콧날이 매워지더니 눈꼬리를 타고 쪼르르 눈물이 흘러내린다. 낮잠을 잤거나, 영화를 봤거나, 반신욕을 하고 있었거나…? 결국 한 탯줄로 묶였던 부모 자식도 혼자라는 얘긴데 누가 누구를 대신해 아파해 줄 수가 있을까. 다들 자기 몫의 삶을 살도록 운명 지어졌을 뿐이지.

 

아들 방으로 건너가 그동안 훈련소에서 보내온 손편지 중 첫 번째 것을 펼쳐 본다. … 엄마, 미안해. ‘미안한 만큼’ 사랑해. 아빠 누나, 울지 마. 전역하면 효도 많이 할게…. 처음 그 편지를 읽던 그날처럼 눈 앞이 뿌예 온다. 그때랑 똑같은 혼잣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다. 나쁜 놈. 미안한 만큼이나 사랑한다면 대체 얼마나 많이 나를 사랑한다는 얘기야?

 

물기 어린 시선으로 달력을 올려다본다. 내게는 꽤나 아픈 예방주사였던 아들 녀석의 전역이 두 달도 안 남았다. 훈련소 입대 5일 전 그 금쪽같은 시간에 강릉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한 건 아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전역 여행도 강릉으로 가자고 얼마 전 편지를 보내온 아들과 나는 분명 또 부딪힐 것이다. 하지만 예방주사를 맞았을 땐 못 견디게 아팠어도 나를 진짜 어른으로 키워주고 한없이 낮아지는 법을 가르쳐 준 예방 접종의 효력이 영 없기야 하려고….     

  

시키는 대로 하기 싫어할 뿐이지 나두 노력하구 있어….
세월이 지체되겠지만 확실하게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거다…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 거야….


황석영 자전소설 <개밥바라기 별>주인공 준이  한 말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아들 녀석과 불꽃 튀는 전쟁을 치른 후에 내가 통과의례처럼 읽었던 책. 그 책 덕분에 아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나도 조금씩 어른이 돼 갔다. 날마다 외등을 켜놓고 아들의 귀가에 목맸다는 황석영 어머니께 빙의가 되고도 남는 이유이다.


누군가의 충고 백 마디보다  한 줄이 천만 번 유용하단 생각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겠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기도 자기 자신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어 매일 혼자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고, 언젠가 티비에서 밝힌 황석영의 고백과 <개밥바라기 별> 덕분에 나는 자식을 믿고 기다려주는 법을 익힌 것 같다. 지랄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듯 모든 일에는 일정량(一定量)이 있다는 걸 믿으면서.


이미 대가를 치를 만큼 치르고 총량을 다 채워버린  아들과 나 사이엔 앞으로 의기투합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얼마 안 남은 아들의 제대가 반갑게 기다려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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