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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구나 Jul 30. 2020

돈에 대한 나의 이중적인 생각

 "콜라가 매워서 못 마시는 사람도 다 있나?"


밤마다 아들은 콜라병을 들고 귀가한다. 

저거 살 돈을 아끼면 한 달에 3만 원, 일 년이면 36만 원인데. 입이 근질근질한 걸 겨우 참아내며 나는 아들 손에서 콜라병을 잡아채 분리수거함에 넣고 온다. 씻지도 않고 소파에 털썩 몸을 부린 녀석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조금 전에 가졌던 마음이 금세 꼬리를 감춘다. 매일 다섯 시 반에 집을 나가 12시 다 돼 돌아오니 피곤이 쌓일 만도 하지.


'고생고생 돈 버는데, 저 좋아하는 콜라 한 병을 못 마셔? 그런 소소한 재미도 없이 어떻게 견뎌?'

콜라에 관대해졌던 마음은 그러나 오래 가지 않는다. 멍게 표면처럼 우둘투둘 불그레한 녀석의 목덜미가 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크면 없어진다더니. 얼마큼 더 커야 아토피는 사그라드는 건데? 속이 상하면서 콜라에게 죄를 몽땅 뒤집어 씌우고 따지고 싶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아들은 산만했다. 외향적인 기질도 기질이지만 아토피 피부염 탓인지도 몰랐다. 김치찌개가 새까맣게 타서 온 집안에 누린내가 풍겨도 꼼짝 않는 제 누나와는 달랐다. 어쩌다 책상 앞에 앉으면 거실에서 들려오는 TV 소리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볼륨을 완전히 죽인 채로 남편이 바둑 방송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TV에 시선을 꽂은 아빠 신세를 부러워하며 들락날락거렸다. 자기 방에서 고개를 살짝 틀기만 하면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 풍경이 녀석을 더 고문하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없앴다.


그땐 나도 참 어지간했다. 가족끼리 돼지갈비라도 먹으러 나가면 콜라 한 병 시켜준 적 없는 엄마였. 아토피 피부염에 좋을 리 없으니 쓸데없는 지출로 치부했다. 건강 식품이란 개념만 염두에 두었지, '기호'를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외벌이인 남편이 공무원이라서 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편이 맥주나 소주를 빠뜨리지 않고 주문하는 사람이었다면 혹 또 모르겠다. 애들에게도 음료수 한 병쯤 시켜줬을지. 하지만 남편은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술 힘조차 빌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더는 사양을 못해 맥주 한 잔을 마신 날이면 현관부터 안방까지 기어서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탄산 음료를 꺼린 특별한 계기가 있긴 했다. 질긴 말고기 같은 소갈비를 추석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다. 살림 잘하는 친구에게 한 수 배운 대로 하루쯤 갈비를 콜라에 쟀다. 다음 날 육질이 실처럼 찢어졌다. 치아를 콜라에 담가 두면 사흘 내로 녹아버린단 친구의 부연 설명에 설마 했는데. 그날로 내  쇼핑 리스트에서 콜라는 사라졌다.


아주 평범해서 눈에 띌 일이 없는데도 구석진 곳에 숨어들어야 맘이 편한 나와 달리, 아들은 남 다르고 튀는 걸 좋아했다. 물처럼 마시면 되는 콜라를 코가 맵다고 못 마시는 사람도 다 있어?, 친구들 사이에 자기가 화젯거리가 되자 오호, 하고 반색을 했다. 콜라를 못 마시는 자신을 브랜딩하는 데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야간 자습이나 학원이 끝난 뒤 친구들과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코가 매워서 콜라를 마시지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우쭐해 하기엔.


입시 준비에 지쳐가고 인생이 지루하기만 한 여드름 투성이 친구들이 콜라가 맵다는 별종을 가만 놔둘 리 없었다. 그럴수록 놀림감이 됐다고 속상해 할 아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차별화 된 자신을 즐겼다. 돼지갈비를 먹으면서도 콜라 한 병 시켜주지 않은 엄마 머리에 뿔을 그려놓고 일기장에다 실컷 욕설을 퍼붓기도 했을 텐데.


대입 자기 소개서를 쓸 때, 아들은 콜라를 못 마신다는 사실을 빠뜨리지 않고 용케 써 먹었다. 거실에 TV가 없다는 것도 성장 환경을 설명하는 데 활용할 만큼 눈치가 빨랐다. 그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초중고 12년을 보냈던 창원에서 아들은 깃털처럼 가볍게 서울로 날아들었다.


대학 동아리에서조차 콜라가 매워 못 마시는 별종으로 입에 오르내렸던 그 아들이…, 지금은 콜라 없인 못 사는 눈치다. 퇴근할 때마다 콜라병과 아예 한 몸이다. 어린 시절에 못 마신 양까지 쳐서 다 마시고야 말겠다는 듯이.




갈증이 나면 500원짜리 생수를 사 마실 일이지, 말고기를 녹일 정도로 해로운 콜라 마실 저 돈을 모으면 대체 얼마야. 매일 밤 나는 아들을 맞이하면서 생각한다. 입 밖으로 꺼내는 법은 없고 속으로만 잠깐. 괜히 말했다가 서로 감정만 나빠지면 한 집에서 동거하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예전엔 참 많이 부딪혔던 녀석과 휴전을 한 건 심리에세이를 취미삼아 읽고부터인 것 같다. 누가 됐든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 한 순간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과거의 어느 시점, 누군가로부터 영향 받은 것들이 죽 누적돼 오늘의 '나'가 있는 걸 알아차리자 사람에게 조금씩 너그러워졌다.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도 게으른 사람도 다 은밀한 원인이 있었다. 매사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를 만트라처럼 암송하게 된 계기였다.


아토피 피부염에 해로운 콜라를 향해 눈을 흘겼던 나는 '그래, 그럴 수 있다'는 쪽으로 얼른 마음을 돌린다. 저런 소확행도 없으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꾼들 감독하는 건설 현장을 어떻게 견뎌? 싶어지는 거다. 토요일도 격주로 출근해야 해서 여자 친구하고도 헤어졌다는데 콜라 한 병을 못 사 마셔, 그래? 이러면서 재빨리 꼬리를 내려버린다.


젊고 팽팽할 땐 뭘 입어도 멋있는데 가끔 비싼 옷 타령을 할 때 나는 심리학이고 나발이고, 맹렬하게 아들이 미워진다. 아파트 값이 억억, 소리가 나는 판에 만 원짜리 옷 입고 한 푼이라도 더 모아 어서어서 경제적 자립을 이루면 좋겠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바쁜 아들 대신해 쇼핑을 하러 가는 나, SPA 브랜드 대신 '랄프 로렌'이나 '폴 스미스'로 발걸음이 향하는 건 대체 또 무슨 마음인지. 가끔은 비싼 옷도 입어봐야 돈 좋은 줄 알고 부자가 되려는 목표도 세울 것 같아서? 소신 없이 오락가 돈에 대해 이중적인 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제발 하나만 해! 노선을 하나로 통일하라고!


이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삼십 년 넘게 소중한 인연을 이어온, 해운대 번쩍번쩍한 빌딩에 살고 계신 회장님 부부 때문이다. 갤러리처럼 꾸민 집 안에 걸려 있는 그림값만도 십 억은 넘을라나. 우리 애들을 조카 대하듯 아끼시면서 만날 때마다 부자 공부를 시켜주신다. 어느 땐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해운대 바닷가를 걷다가도 어떨 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가 명품이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아주머니들께는 신사임당이 그려진 노란 지폐를 팁으로 주시면서도, 대형 마트 카트에 집어 넣은 백 원짜리 동전은 꼭 챙기시는 분.


내 주위에서 가장 부자인 그분들이 '있는 사람은 써야 경제가 돌고 없는 사람은 아끼고 모아야 한다'며 게거품을 물 때 나는 내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헤아려 보곤 한다. 어마무시한 그분들 재산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보통 사람 기준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좀 쓰고 살려고 했다. 그런데 이건 뭐…, 오히려 콜라 한 병 안 시켰던 옛날보다 돈에 민감해져버렸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집값 폭등 말고 무슨 이유가 더 있을까. 아이들에게 얼마쯤 지원해주면 차근차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을 줄 믿었던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이런 내 맘을 알 리 없는 회장님은 아들 녀석에 비행기 비지니스 석을 타 보란 말씀도 곧잘 하신다. 돈이 왜 좋은지 뼛 속 깊이 느껴야만 부자가 되려는 목표를 굳건히 세우게 된다며. 이론상으론 백 번 옳은 말인 줄 인정하면서도 나는 때로 아들이 KTX를 타는 것도 못마땅하다. 몸이 몹시 고단한 상태거나 시간이 촉박한 때가 아닐 땐 고속버스를 탔으면 싶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건지, 사람참 간사한 건지 돈에 대해 나는 아무래도 이랬다 저랬다, 원칙이 없는 것 같다. 대학생 때 아들이 서울-창원을 고속버스도 아닌 일반 시외버스로 오갔을 때 내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려 보면. 세상에, 의자가 젖혀지지도 않고, 28석인 우등고속에 비해 44 석이나 빼곡히 들어찬 낡은 버스였다. 덩치라도 작길 하나. 몸을 구겨넣다시피 해야 하는 그 버스를, 그때 난 또 얼마나 타지 말라고 말렸던지.  


심리에세이를 많이 읽은 탓일까, 소신 없는 팔랑귀라서 그런 걸까. 돈에 대해 나는 좋게 말하면 확증편향이 없는 듯싶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다. 어느 땐 십 원 한 푼 낭비 없이 아꼈으면 싶고, 어떨 땐 회장님 말씀대로 비지니스 석을 탈 만큼 여유있고 배포 있기를 소망한다. 양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도 기어이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가는 뒷 모습을 볼 땐 소금 뿌린 듯 속이 아리다가도, 쫙 빼 입고 맨손으로 가면서도 KTX에 돈을 쓴다 하면 뒤통수를 노려보고 싶어지는, 그게 나다.


매일 콜라 한 병을 우습게 여기는 아들 녀석이라 저축은 기대도 안 했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애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회사 동기 남자애들, 경제 관념 없이 한 3년은 마구 쓰더라며 제 동생을 가만 지켜만 봐 주란 거였다.


딸애 예상과 달리 아들이 월급의 5분의 4씩이나 종잣돈으로 모아가는 걸 알았을 때, 난 또 다시 돈에 대해 이중적이 되었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 짠해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제발 한 가지만 하라고. 노선을 통일하라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외치고 있었지만 어쩌라고. 인생 선배로는 혹독해지고 싶고 엄마로선 좀 품어 안아주고 싶은데.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니까, 딴 사람 아닌 내 자식에게 당면할 수도 있는 암초를 미리 피할 수 있도록 경제 공부를 더 못 시켜 안달는지도.


아들이 곧 귀가할 시각, 이도 저도 아니라서 늘 헷갈리는 나도 덩달아 지쳐만 가는 밤. 후줄근해 들어오면 돈을 쓸래야 쓸 시간도 없겠네, 안쓰러워지면서 월급이 좀 적어도 '워라밸'이 가능한 쪽을 알아보면 어떨까, 자꾸만 흔들리는 나라는 사람. 그러다 어김없이 손에 콜라병을 쥔 모습과 마주하면 어느새 아들 뒤통수를 슬그머니 노려볼 엄마. 아니지 아니지, 일과 마친 뒤에 시원하고 톡 쏘는 콜라 한 병 마실 여유도 없이 무슨 재미로 살아, 그렇게 또 금세 꼬리를 내릴 엄마. 콜라가 매워서 못 마시는 게 자랑이었던 통통 튄 아들은 오래 전 자취를 감췄는데, 다 큰 아들이 조심스러워 혼자 미웠다가 짠했다가, 늘 두 개의 마음이 싸우는 바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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