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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구나 Jul 27. 2020

단체 카톡방이 폭력으로 느껴질 때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by 정현종'


한 달 넘게 하루 한 편씩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아무도 몰랐으면 싶었다. 


이유는 뻔했다. 언제라도 그만 둘 여지를 만들어두기 위해서였다. 의지박약이라든가, 말만 앞선다든가, 만에 하나 누가 그런 소리 할 경우, 그러는 네가 한 번 써 봐!, 으르렁거리지 말란 법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아무도 몰래 여차하면 관둬도 되는 퇴로 확보 차원.


다이어트를 하려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시작하란 말이 왜 생겼는지를 더욱 깨달았다. 힘들고 성공할 확률이 낮은 일은 관둘 수 없게 장치를 마련하라는 뜻일 테지. 남이 알고 남이 주시하고 있다 생각하면 매일 한 편 글쓰기든 다이어트든 쉽게 관두진 못할 테니 말이다.


겁 많고 게으르고 생각뿐인 내가 그 힘든 걸 기어이 해낸 날이 오고야 말았을 때, 나도 내가 신기했다. 


더 놀라운 일은, 내친김에 브런치에도 도전한 것. 그뿐 아니었다. '요새 뭔가 하느라 바쁘니까 다음에 만나자'며 내내 약속을 미뤘던 친구들에게 브런치 주소를 보내주기까지 했으니. 계속 쓰고 싶었던  글에서 손을 떼어버린 후로 2년만에야 다시 글을 쓰기로 맘먹은 이상, 수줍음과 소극적인 마인드에서 탈피하는 게 시급했다.


두 팔 벌려 환영한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는 고향 친구. 남 일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친구답게 그녀는 단톡 방에 내 글을 퍼 날랐다. 그것만도 충분했는데 누가 내 글에 피드백을 해주면 캡처까지 해서 보내줬다. 퇴고하기도 시간이 부족할 판에 자신이 생각하기에 내가 읽었으면 싶은 글도 자주 보내줬다. 자기가 속한 독서 토론 클럽에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고맙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친구네 단체에 속하기는 무리였다.


많은 선택지가 놓일 때 나는 집중할 수 있는 하나를 고르는 타입이었다.


브런치를 하기에도 이미 용량을 초과한 상태인 데다 성향 탓도 컸다. 친구가 밝은 광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외향적인 성격이라면 나는 동굴에서 몸을 사리고 있어야 안전함을 느끼는 내향형이니까. 아무리 이전과는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브런치 주소를 오픈했다지만 단체 카톡방은 공포였다. 트라우마가 있었다.


3년쯤 전 문학 수업을 듣던 때였다. 그보다 2년 전에 다녔던 에세이 클래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합평 시간은 피의 제전이었다.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 대신 말하기만 해야 하는 수업이 끝날 때쯤 나는 매번 삶은 시래기가 되었다. 말더듬이 같은 나만 빼면 다들 문학평론가는 껌이다 싶게 잘근잘근 분석을 잘했다.


소극적이라면서 '글쓰기' 동네는 왜 기웃거렸냐고?


간단했다. 하고 싶은 말은 한가득인데 나는 버벅거리기 대장이었다. 말로 말하지 않고 글로라도 말할 수 있다면 숨이 쉬어질 것 같다. 말은 주워 담지 못하지만 얼마든지 다듬고 고칠 수 있는 글쓰기라는 표현 방식은 엉덩이 힘만 좋으면 해 볼 만하다 싶다.


국내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많은 문학상을 거머쥔 분이 담당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우리 같은 피라미 제자들과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었다. 합평 시간이면, 그분 손에 피가 묻기도 전에 수강생끼리 앞다퉈 사시미 칼로 작품을 저몄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먹잇감이었다.


합평이 끝나면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더 이상 수업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닌 지 일 년이 안 된 나는 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견딜 만했다. 정작 내가 더 무서워했던 건 단체 카톡방이었다. 강좌에 발을 들인 지 십여 년이 된 두 사람이 카톡방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들 눈에 이쁜 사람이 제출한 작품에 대해선 단톡 방에서 미리 한 자락 깔아줬다. 여론몰이인 셈이었다. 웬만해선 누구도 소신을 드러내기 힘들었다. 글쓰기를 배우러 간 건데 어디나 조직이 있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모인 곳에서! 멀미밖에는 날 게 없는 편 가르기에 나는 지쳐만 갔다.


수능 앞둔 딸이 생리통이 심한데 어쩌면 좋냐는 톡이 등장하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런 톡을 올릴 맘이 생기는지 모르겠지만, 비법과 위로를 적당히 버무린 답글이 주르르 올라왔다. 몇백 명이 소속된 카톡방에선 머리카락 안 보이게 꼭꼭 숨을 수 있지만 열 명 정도일 땐 문제가 다르다. 더구나 나는 딸도 키워 보고 수능 치른 아들도 둬 본 입장이었다. 톡을 써야만 했다.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겨우 전송키를 누를 때쯤엔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문장을 짓는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은 단체 카톡방이 처음이었다. 아무 말 않고 보고만 있기로 마음을 정한 날엔 '눈팅'한 사람 누구냐는 글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이러나저러나 신경 쓰이긴 마찬가지였다.


단체 카톡방이 폭력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울고 싶은 날 그들은 시끌벅적 야단일 때, 도의 때문이든 의무감에서든 눈물을 훔치며 스마일 이모티콘을 날려야 하는 거라면. 나와 성향이 비슷해 보인 두 사람에게 살짝 물어봤다. ㅠㅠ 를 열 개쯤 박아 넣은 개인 톡이 날아왔다. 싫지만 퇴장을 못 하고 견디고 있는 사람들. 모임 도중에 일어섰다간 뒷담화로 까일까 봐 끝까지 버틴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과 함께 쓴웃음이 나왔다.


1년만 채운 뒤 나는 그 수업을 관뒀다. A4 두 장 쓰기도 벅찬 내가 대여섯 배 분량의 긴 글을 쓰고 싶어 했다니. 어울리지 않은 옷을 훌렁 벗은 듯 몸이 가뿐해졌다. 내내 고문 같았던 단톡 방 탈퇴를 위해서도 그 방법 말곤 없었다. 중간에 자리를 박찼기 때문에 뒷담화의 표적이 되는 것쯤 감수하면 그뿐이었다. 개별적으로 알면 더없이 좋은 사람도 단톡 방에선 왜 폭력적이 되는지, 왜 다른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지 다만 그것이 씁쓸할 따름이었다.


친구에게 단톡 방이 폭력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를 알아듣게 몇 번 했던 것 같은데,


또 가입을 권유하는 뉘앙스의 카톡을 받았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간단하고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어렵다. 그녀가 속한 독서 토론 클럽에 가입하기만 하면 구독자 천 명쯤 우습게 확보된다 해도, 단체 카톡 방만은 노땡큐였다. 거절하는 나를 친구가 서운해할지라도 지금의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게 현명했다.


「너에겐 해볼 만한 일이 나에겐 힘들 수도 있다는 거, 몇 번 말하지 않았나? 어차피 가입한대도 그 단톡 방에서 꿀 먹은 벙어리 신세일 거야. 나, 요새, 신경 분산시키는 대신 모든 에너지를 모아야 할 때인 거 너도 알잖아. 사람마다 케파라는 게 있는데 나는 이미 과부하야. 어떤 계산도 없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너 모르지 않, 늘 고맙게 생각해. … 사람을 새로 알아가는 일이 흥미롭긴커녕 에너지를 뺏기는 것만 같을 때 즐겨 읽는 시가 하나 있는데,  같이 읽어봐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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