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구 인간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읽고

by 스밍





스도쿠 앱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 광고가 많이 나오는데, 퀄리티가 꽤 괜찮은 광고부터 픽셀이 깨지는 저퀄리티의 광고까지 다양하다. 30초간의 지루함을 이겨내는데 가장 좋은 광고는 내가 실제로 게임을 해볼 수 있는 반응형 광고다. 그런데 가끔 이 반응형 광고를 사칭한 광고도 있다. 반응형처럼 보이지만 녹화된 영상 형태의 광고.


이런 광고가 나오면 아주 이골이 난다. 특히 말도 안 되는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는 주인공에게 말이다. RPG 게임 같은 경우는 오른쪽으로 가면 용암에 떨어지는 끔찍한 상황인데도 곧이곧대로 용암으로 향하고, 퍼즐 게임은 간단한 수식을 계속 틀린다. 낚시 게임 같이 무언가를 잡아야 하는 게임도 형편없다. 그렇게 몇 번 광고에서 마주치다 보면 게임 주인공에 정이 가기 마련이다. 결국 '으이구 인간아'하며 앱을 다운받게 된다. 그 게임회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문학 작품에서 만나는 등장인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선 흠결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뿐더러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프랭크는 어딘가 오만하고 쓸데없는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인물이다. 주먹이면 뭐든지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고, 남편이 있든 말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교도소 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권력을 자기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머리를 쓴다고 쓰나 비상하지는 않다. 가끔 뉴스에서 범죄자들의 얼척없는 수법들을 보며 '저렇게 하고 안 걸릴 거로 생각했나?' 싶은데 소설에서 보여주는 프랭크의 행동과 생각을 보며 이제야 납득이 갈 정도로 터무니없다.


코라 역시 마찬가지다. 프랭크에 비해 자칫 '선'처럼 보이는 인물이긴 하나, 자신을 거둬준 사람을 죽인 사람이다. 그 당시의 의식의 흐름이 기승 전'살인' 이었다면 할 말은 없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나는 '엥 갑자기 살인이요? 여기서요?' 하고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차라리 죽였으면 어떻게든 결백을 만들어서 증명하기라도 하지, 덫에 넘어가 살인 사실을 들키기도 한다. 그런 둘이 만났으니 프랭크와 코라는 아주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사실 누굴 죽이고 자실 깜냥이 아니었던 것이다. 코라의 남편 닉은, 극 중 가장 불쌍한 인물이지만 툭툭 나오는 눈치 없음에 뒷목을 잡게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렇게 문학 작품을 읽을 때면 독자는 캐릭터들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다. 시비를 가리고 잘못을 들춘다. 그리고 모든 행동을 판단한다. 그런데 점점 힘들어진다. 나쁘긴 한데.. 마냥 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고. 인물들의 행동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유를 하나씩 듣다 보면 자아 의탁까진 아니더라도 마음이 동한다. 그리고 이미 들어버린 것, 무를 수도 없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참과 거짓, 범죄와 처단 같은 개념은 사라지고 오직 소설 속 판타지로만 작품을 이야기한다. 결국 독자들을 얼마나 몰입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작품의 인물들과 상황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로 흘러가면서도 있을 만한 일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오래 읽히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이 가름된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진가도 여기에 있다. 막장에 막장을 더 하는 내용이지만, 촘촘히 짜인 인물 서사에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비를 떠나 인물들이 이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하게끔 만들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 팔짱 끼고 판관 자리에 앉아 있는 독자의 팔짱을 풀고 손을 잡고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 그래서 작품에 붙여지는 수식어나 후기 중 '몰입'이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아는 사람도 아닌데 어느 순간 '으이구 인간아' 하며 등짝을 한 대 때리고 싶어지는 그런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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