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채용에 추천해줄 사람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서, 그 자리에 적격일 것 같은 지인이 떠올라 적극 추천한 적이 있다. 추천 대상은 여성이고, 미혼이었다.
이후 따라온 질문들..
"왜 그 나이까지 결혼 안 했대요. 성격에 결함이 있는 것 아닌가?"
"나이가 좀 많은데.. 들어오게 되면 학과에 있는 다른 어린 남자 교수들 무시하는 건 아닐까요?"
뒤이어 '그래도'라는 표현을 붙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내용은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으니 일은 열심히 하겠네요.."
이후 그녀는 최종 합격을 했다.
결혼을 안한 것에 대해 '성격적 결함' 운운하는 뒷담화들을 감내하면서,
'그래도 결혼 안해서 일은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나름대로 잘 지낸다.
장면 2.
일을 잘하기로 정평이 난 연구원이 있었다. 책임감도 투철하고, 무엇보다 에너지가 넘쳤다.
여성이고, 기혼이었다. 그런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던 한 여자 교수가 그녀를 불렀다.
"O박사, 결혼은 했다고 들었는데... 애기도 있어요?"
"네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애기가 있었구나.."
"네.."
"중학생? 고등학생?"
"아니요... 이제 5살입니다."
"아.. 많이 어리네요. 한참 귀엽겠다.. 그죠?"
"네 많이 예쁘죠.. 교수님도 아이 있으세요?"
"아유~ 전 이제 다 키웠죠. 한 명은 대학생이고 한 명은 직장 다니고요..."
"네..."
"힘들겠어요. 애 키우면서 일하고... 그죠?"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번에 사업 같이 할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데... O박사가 딱인데.. 애기가 너무 어리네요. 누가 봐주세요?"
대략 이런 대화가 오갔고, 교수는 제안을 거두었다.
얼마 후 그 자리엔 결혼했고 아이가 있는, 남자 박사가 들어가게 되었다.
보수적 맥락의 학계에서 여성은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사적 인간관계로 평가받고 있다.
결혼을 안 해도 문제이고 해도 문제인데, 안 했으면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을까 봐' 기피대상이 되고, 했다면 '가족에 충실해서 일을 열심히 안 할까 봐' 기피대상이 된다.
더불어 기혼 여성이면서 아이도 있을 경우, 아이가 부모의 돌봄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이거나, 조부모의 풀타임 돌봄이 전제된 경우에 채용자는 비로소 안심한다. 가정의 일이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이런 식의 구별 짓기에 제일 앞장서는 사람들 중 '결혼도 했고, 아이도 다 키운' 여자 교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린 여교수들이 육아에 허덕이며 겨우겨우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시니어 여교수들은 늘 인자한 미소를 띠며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지.. 고생이 많죠?' 하며 위로를 건네지만, 그녀들은 누구보다 빠르고 냉정하게 여교수들의 진입로를 차단하고, '여자여서', '아이가 어려서' 하며 채용 불가 이유를 설명하곤 한다.
내게도 얼마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식사자리에서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는 몇 살인지를 꼬치꼬치 캐묻던 시니어 여교수는 내 아이의 나이가 충분히 많지 않음을 아쉬워하며, 한참 힘들겠다며 날 위로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아.... 애기가 아직 어리시구나..."
뭘 제안했든 할 생각도, 할 여유도 없었지만, 밥 먹는 내내 개인사를 탈탈 털리며 내 존재가치와 역량을 증명해내는 이딴 검증 절차를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