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팀장의 난관 극복기
4년 반 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 전에 이직처를 구했고, 동일한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가다 보니 부담은 한 시름 놓았지만,
추가되는 업무가 많다 보니 약간의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전 회사에서는 ‘선임’이라는 명칭으로 후배들을 챙기고 업무적인 어려움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는데,
새 회사에서는 처음으로 ‘팀장’이라는 정식 직책을 맡게 되니 무게감이 배로 느껴졌다.
직장 생활 9년 차 정도되니, 3일 만에 회사 분위기와 팀원들의 느낌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곳의 업무 분위기는 지난 회사들과는 상이한지라, 만만찮겠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입사한 지 일주일쯤 됐을까. 팀원들과 차례로 R&R 면담을 진행하던 중 한 팀원이 이렇게 말했다.
"저 그 일 하려고 온 것 아닌데, 만약에 그 일주시면 퇴사할 거예요"
'회사를 하고 싶은 일들만 할 수 있는 동아리 정도로 생각하는 건가?' 나는 팀원의 답변에 적잖이 놀랬다.
흔히들 말하는 '라테는 말이야'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아무리 싫어도 상사의 인격적 부당함이 아니라면 하달된 업무들은 이행해 오던 나의 전적들과 자연스레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날엔 날 따르던 후배들이 참 많았는데, 내가 팀장이 되길 바라던 후배들이 많았고 나는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등 어설픈 과거의 영광들은 느껴보지도 못한 채 꼬깃하게 넣어두고, 냉정한 현실을 나부터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직장을 하면서 지금껏 참 많은 어려움들은 있었지만, 자리가 주는 이 어려움은 또 새롭게 맛보는 것이기도 하다 보니, 새로운 장벽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너무나도 자유분방하고 질서 없는 이곳에서 의 체계를 잡아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한 달 동안은 다른 곳의 이력서도 넣어볼까도 했었다.
위치가 주는 무게감에 자연스럽게 미움은 따라오는 법이다. 나 또한 사람인지라 당연히 미움보다는 호의를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직장에서의 미움받는 것들은 두렵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전 상사들로부터 느꼈던 억울함과 부당함. '내가 나중에 팀장이 된다면, 저 사람처럼은 절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반면교사 삼았던 내용들을 곱씹으면서, 좋은 직책자가 되어 팀원들을 이끌어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직장생활 우리가 말하는 모든 단체생활에서 동일하게, 우리는 모두 다른 객체다 보니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으며, 동시에 얻었을 때 반대로 가장 큰 시너지와 힘을 지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만 있던 부분에 실리가 존재하는 직장생활에서의 마음 얻기 부분에 노하우가 없던 나는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전 직장에서 업무적·인성적으로 오랫동안 롤모델로 삼았던 리더에게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고, 나를 위해 매우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한 시간 동안 조언을 해주셨다.
나)
"00님, 저희 본부는 뚜렷한 체계가 없고 무엇보다 중간 관리자가 전무, 회사가 처음인 신입들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 친구들이 연차 높은 사수가 없는 채 일을 해왔다 보니 지시를 받아들이거나 저에 대한 전혀 존중이 없는 듯한데, 이때 제가 취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일까요? 00님은 어떻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으실 수 있었을까요?"
전 직장 리더)
"지금, 00님이 단순히 체계를 잡겠다고 해서, 체계를 만든다고 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진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에겐 지금 00님 존재 자체가 없었던 환경이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거든요. 타인에게서 오는 존중은 말이죠, 스스로를 증명해 낼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예요. 그리고 증명해 내는 건 자기 확신을 가지고 해내기 어려운 것들을 해낼 때 이뤄지는 것이죠. 00님이 체계를 당장 다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보여주세요."
나)
사실 지금 팀에서도 여러 파트가 있는데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팀이 되지 못했는데 저는 이런 것들도 다 바꾸고 싶고 팀을 하나로 만들고 싶어요. 팀원들을 잘 이끌어 나가고 싶은데, 무엇이 정답일까요? 저는 지금 섣부르게도, 팀원들을 잡아야 한다가 정답이라는 채로 체계를 만들고 있는데 사실 이게 정답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전 직장 리더)
물론, 00님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지켜본 다음에 행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사실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어요. 중요한 건 내린 결정이나 행동이 00님의 사고회로 속에서 충분한 여과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라면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 나가면 되는 거예요. 실수는 있어도 되고, 당장 정답이 아닌 길처럼 보이더라도, 그 가운데서 또 다른 경험들을 하고, 배워나가는 거니까요.
나)
저도 이제 직책자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팀원이었을 때 리더님 눈에 비쳤던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지금의 제가 리더로서 보완하면 좋을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예전에 제 표현 방식이 다소 딱딱하다고 조언해 주신 적이 있는데, 당시 저는 ‘업무는 업무고, 감정을 배제하고 일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 직장 리더)
00님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업무적으로도 뛰어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어요.
다만 지난번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도 말씀드렸듯, 간혹 쿠션어 없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어요. 이건 사실 제가 사원 시절에 윗분들께 받았던 피드백이기도 해서, 저 역시 노력해서 고쳐온 부분이에요.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는 방식이 항상 좋은 건 아니에요. 우리가 일을 누구와 하나요? 감정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잖아요. 그러니 사람마다 대하는 법이 조금씩 유연해질 필요는 있어요. 이게 ‘강약약강으로 대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감정을 크게 개입하지 않아도 소통이 되는 사람들과는 지금처럼 하셔도 좋지만, 00님의 단단한 어조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경우에는 조금만 톤을 맞춰주는 것이 서로 업무를 진행할 때 더욱 유용할 거예요. 물론 쉽지 않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이 부분만 조금 다듬으신다면, 00님은 정말 훌륭한 리더가 되실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돌이켜본다.
사원일 때는 사원의 입장에서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직책자가 때로는 야속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사원이었을까?
직책이 바뀌고 보니, 이제는 팀장의 입장에서 ‘저 팀원은 왜 저럴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많은 걸 느끼게 된다.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그래서 ‘역지사지’라는 말이 존재하며 ‘메타인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들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책과 자성은 한 끗 차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태도는 평생의 숙제다.
나는 어떤 팀장이 되고 싶은가.
입사한 지 어느덧 두 달, 오늘 밤도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조용히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