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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즈 Sep 04. 2024

실체를 알 수 없는 난소낭종의 무게

​8센티의 난소낭종,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12월 27일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2년 전 3센티였던 것이 갑자기 커졌다고 할 때에도 별 것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 큰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라는 말에도 놀라지 않고, 대학병원 검진이 이틀 뒤인, 12월 29일로 빨리 잡혔다고 좋아했다. 심지어 동대문에서 3학년 체험학습하는 날이라 근처에서 3학년부 회식하면 되겠다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난소암검사를 위해  피검사한 그날, 술을 진탕 마시고는 술자리에서 잠들어버렸다. 피검사한 날엔 음주를 피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이런 무대책성은 이 문자에서 비롯되었다.


검진결과 [Web발신] 난소암 위험도 혈액검사 정상입니다. 상세한 상담이 필요하시면 담당주치의 스케줄확인하시고 내원하세요~**산부인과


대학병원 검진 한 시간 전에 이 문자를 받았다. 문자를 받고는 긴장의 끈을 확 놓아버렸다. 그때 난 CA-125 난소암 혈액검사를 100% 신뢰하고 있었다.

‘아니라잖아! 별일 없을 거야!’

그런데 12/29에 대학병원에서 한 난소암검사에서는 정상 수치를 벗어났다. 난소암 위험도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다시 한번 나를 다독였다. 두 달간 없던 생리가 시작된 걸 보니, 난소낭종이 터트려져 생리혈로 다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무지로 난소암 위험도를 애써 덮으려 했다.

(CA-125 검사는 생리전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정확도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의 부인이 난소낭종 수술했는데 조직검사 결과 암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소는 수술해서 조직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하기 전에는 암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가족력 의심되는 상황까지 겹쳤다. 고모가  난소암 투병중이신데, 십여년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병명도 난소암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혼란이 시작됐다. 유방암도 걱정인데 더 큰 걱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난소낭종이었다. 이것을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은 다급함에 유방암 수술 전에 수술날짜를 잡아달라고 해서 빨리 처리해버리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리인 수술 일정이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5시간의 외출에는 넉다운이 되어 쓰러지고 만다. 아주 저질 체력이 되었다.

2월 15일 난소수술, 3월 13일 유방암 수술

한 달이 안 되는 시기에 두 개의 수술을 했더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수술 후 기력을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방사선 치료 후 화상 입은 상처 부위 소독과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했는데 말이다. 의사들은 수술후 2주~3주 정도면 회복한다고 말한다. 방사선 치료는 직장 다니면서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의사들의 기준이고, 환자의 몸이 되어보니, 몸이 기력을 회복하는 데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난소수술을 유방암 수술 이후로 미룬 건 매우 현명한 선택이긴 했지만, ​난소낭종의 존재는 2월부터 난소수술 전까지 나를 가장 많이 어지럽혔다. 게다가 전공의 파업까지 겹쳐 변수는 더 많아졌다. 대학병원은 수술날짜를 잡기가 힘들어졌다. 불안한 마음에 난소의 상태를 정확히 보자고 갔던 2차 병원에서는 모양이 안 좋다며 빨리 수술하라고 했다. ​그래서 ​유방암 수술 후 한 달이 안 지난 4월 1일에 2차 병원에서 수술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땐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순서도까지 그렸다.​

그러나 이 복잡한 생각도 유방암수술 결과가 나온

후 다 필요 없어졌다.

상피내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유방암은 1기로 나왔고, 항암, 방사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항암은 온코타입-dx 검사를 해서 결정한다고 했다.

아직 정체를 모르는 난소는 그제야 2순위가 되었다. 암으로 정체가 밝혀진 것부터 일단 처리하자고 자연스레 마음이 정리되었다.

그 후로도 전공의 파업으로 방사선치료 일정이 6월로 늦게 잡히자, ‘중간에 난소 수술할까?’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어야 했다. 이렇듯 난소는 나에게 2024년 상반기 최고의 골칫덩어리였다. 유방암이 1위가 아니라니.

유방암은 치료일정이 잡힌 뒤로는 그 일정에 따라 하면 되겠지 하는 신뢰가 있었지만, 뭔지 모를 난소낭종은 너무 불안했다.


암치료를 하는 사람들의 책과 유튜브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봤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식이, 운동에 집중하란 이야기였다. 난소낭종이 암일지 아닐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니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암환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치료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불투명한 기다림의 시간들이었다.


이랬던 난소를 떼어내니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다. 조직검사 결과도 난소암이 아닌 걸로 나왔다.

난소를 양쪽 다 떼어내면서 자궁도 같이 적출했다. 유방암 때문에 복용하는 타목시펜의 부작용이 자궁내막을 두껍게 한다는데 근종이 있는 자궁을 굳이 내버려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걱정거리가 될 것을 잘라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갱년기 부작용은  난소가 없어지는 것에서 오기 때문에 자궁은 불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런 결정을 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여성성의 상징이 사라진 것에 대한 우울증과 염려를 암에 대한 두려움이 눌러버렸다.

난소암 안내문을 쓰레기통에 버린 날은 난소 수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 8월 14일, 광복절 전 날이다. 조직검사 결과 난소암 아니라는 말에, 유방암 선고받을 때에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나왔다. 그날은 난소암에서 해방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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