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보드, 스노우보드에 이은 세 번째 판때기
두둥실 파도가 출렁인다. 처음 넘어오는 파도를 흘리고 두 번째 세 번째 파도를 차례차례 흘러 넘기다 보면 몸을 번쩍 들어 올리는 힘찬 파도가 온다. 파도의 리듬에 맞춰 패들링을 하면 보드가 파도 위에 자연스럽게 흐르고 준비된 서퍼는 균형을 잡으며 보드 위에 올라선다. 우아한 포즈는 덤이다.
스케이트를 타다 보니 자연스레 서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불과 15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서핑과 거리가 멀었다. 사실 서핑에 대한 인식부터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서핑하면 날카롭게 생긴 보드에 올라타 커다란 파도 사이를 가르는 스포츠인데, 한국엔 그런 파도가 없으니 당연하게도 서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서핑을 하기 위해 자연스레 해외로 눈을 돌렸다. 1주일 휴가로 갈 수 있을 것! 예산을 최소화할 것! 유명한 서핑 스팟일 것! 위 조건들을 따져본 결과 첫 서핑여행은 “클라우드9”이라는 글로벌 스팟이 있는 “필리핀의 시라가오섬 이었다. 배럴이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곳인데,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산호가 바닥에 깔린 곳으로 초심자는 발을 엄청 베여가며 첫 서핑의 한 발짝을 내밀었다.
강사의 원, 투, 쓰리에 맞춰 패들을 하고 보드에서 일어나 파도를 탄다. 누구나 서핑을 처음 시작하면서 진행하는 강습이다. 보드에 올라탄 게 대단하게 느껴지고 뿌듯하다!? 하지만, “놉” 서핑의 진짜 재미는 파도를 읽는 것에서 나온다. 등산을 하며 못 오를 꼭대기를 오르는 것과 같다. 내가 알 수 없는 자연을 정복하는 재미가 서핑에도 있다. 이렇게 파도를 정복하려면 열심히 패들링을 해야 하고 온 몸이 부서질 정도로 힘들다.
노처럼 팔을 휘젓는 패들링은 서핑의 처음과 끝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힘들다. 평소 안 쓰는 어깨 근육을 사용하고, 허리 쪽 코어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줘야 한다. 그러다 힘이 빠지면 조류와 파도에 밀려 머니 먼바다로 흘러가는데, 진짜 무섭다. 큰 바닷속 조그마한 나를 느끼며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서핑은 절대 혼자 하면 안 된다.
어디에서 서핑을 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처음 알아봤을 때, 제주 중문, 부산 송정, 그리고 양양 기사문이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사문 보다 38선 휴게소로 더 알려져 있던 때다. 정말 소수의 인원만 파도를 타기 위해 주섬주섬 방문할 때고, 나도 부끄러워서 시도를 못했다. 그 이후 서핑을 시도한 건 죽도로 기억한다. 지금처럼 식당이고 뭐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옛날 시골 슈퍼를 리모델링한 듯한 서핑 샵이 하나둘 있었다. 서핑보드는 정말 멋 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스펀지 보드였다. 이날 서핑보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서핑보드는 보통 피트로 구분한다. 6피트 내외면 보통 180센티 정도의 숏 보드로 구분하고 키를 훌쩍 넘는 190~2미터 급은 롱보드로 구분한다. 더 큰 보드로는 배처럼 노를 저으며 타는 패들보드가 있다.
보드가 작을수록 컨트롤이 유리하다. 그래서 숏 보드는 큰 파도에서 묘기를 부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기술의 난의도 또한 높아 올림픽 종목에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 롱보드는 우아하다. 스케이트 보드의 롱보드와도 비슷한데, 보드 앞뒤로 춤을 추듯 걸어가며 스타일을 뽐낼 수 있다. 그리고, 부력이 좋아 초보자들이나 국내와 같이 작은 파도에서 타기 좋다.
멋도 모르고 처음 구입한 그것도 캘리포니아에서 출장 중에 구매하여 들고 온 보드는 6.4피트의 숏 보드다. 캘리포니아의 헌팅턴 비치의 파도는 너무나 무겁다. 파도에 세탁당하기를 여러 번, 어설픈 덕다이브는 체력만 소진시켰다. 결국 실력을 탓하며 뭍 위로 올라왔다. 반면, 양양의 파도는 너무 작다. 패들을 해서 브레이킹 포인트까지 갔지만, 보드 위에 일어서기엔 파도의 힘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렇게 첫 보드는 남에게 넘겨진다. 첫 데이트를 실패하니 두 번째부터는 급격히 자신감과 흥미가 줄었다.
서핑이 이렇게 대중화되었을 줄이야. 고속도로가 뚫려서 인지, 군사지역이 많이 풀려서 인지, 그냥 홍보가 잘 되어서 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해양 레저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눈여겨볼 점이다. 한국에서 요트가 대중화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오늘도 홍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