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사이어티 Apr 01. 2021

야근하지 않습니다.
디자인 오피스의 조직 문화 정착기

SWNA 대표 이석우 인터뷰

디자이너에겐 칼퇴 문화가 익숙지 않습니다. 시스템보다는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 소규모 조직은 더욱 그렇죠. 프로젝트가 몰릴 땐 밤낮을 불사해 매달리기도 하고,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해 결과물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인식도 있고요. 디자이너에게 야근은 불가피한 걸까요?


디자인 오피스 SWNA는 당연하게 여기는 야근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근무 시간에 몰입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는 방법을 찾아낸 거죠. 출퇴근 제도 변화를 시작으로, 디자이너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고민하는 이석우 대표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조직이 되고자 노력하는 SWNA의 이야기가 소규모 조직을 운영하는 분들, 또는 조직을 구성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SWNA의 조직 구성이 궁금합니다. 모두 디자이너인가요?

전체 19명 중 17명은 산업 디자이너이고, 시각 디자이너 1명, 재무관리 등 디자인 외 업무를 담당하는 오피스 매니저가 1명 있습니다.


디자이너로만 구성된 조직에서 역할을 어떻게 나누나요?

평소에는 특별한 역할을 나누지 않고 프로젝트마다 3~5명 정도로 팀을 구성해요.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각자의 개성과 장점을 살리려 하죠. 최적의 팀을 위해 전략에 능하거나 비주얼에 강하거나 디자이너 각자의 특기를 관찰하고 고민합니다.


스튜디오가 아닌 디자인 오피스라고 칭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조직 규모로 스튜디오, 오피스, 회사로 분류한다면 SWNA는 오피스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끌기에 가장 이상적인 규모거든요.


이석우 대표가 설계에 참여한 SWNA 오피스


대표로서 책임, 관리 가능한 조직의 규모와 범위를 인지하는 것도 지속 가능성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기준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구성원이 20명을 넘었을 때 디자이너 개인의 특성과 현재 진행 중인 업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높은 퀄리티의 디자인을 유지하려면 적당한 긴장감과 팀 구성원들 간의 시너지가 필요해요. 최대한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면서 내부적으로 디자인 리뷰를 자주 진행하고, 팀 구성원들 간 시너지가 나도록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업무를 분장하고 정확하게 디렉션을 줘야 하죠. 이런 역할을 혼자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가 되면 팀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른 절차 또한 생겨납니다. 이런 과정을 직접 겪으면서 신속한 커뮤니케이션과 관리가 가능한 인원이 최대 20명이라고 판단했어요.


디자인 업계에는 야근이 당연시되는데, 몇 년 전부터 정시 퇴근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요.

초창기에는 주말 없이 월화수목금금금 일했고, 점심 식사를 하는 동시에 저녁 메뉴를 결정할 정도로 야근이 일상이었어요. 누군가 정시에 퇴근하면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그러다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디자이너들도 아프기 시작했고 인턴들은 ‘야근 많은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왔어요.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생각했어요. 일하는 환경을 고민한 끝에 북촌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2019년부터 야근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근무해요. 최근에는 일찍 출근하면 그만큼 일찍 퇴근하는 유연 근무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지금까진 잘 이뤄지고 있어요.


실제로 정착시키기 어려웠을 텐데요. 정해진 시간에 결과물을 내고 업무 효율을 끌어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 같아요.

처음엔 업무 효율이 안 나서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지나니 짧은 시간에 효율찾는 방법을 체득했어요. 직원들 각자의 노하우가 있을 텐데, 공식적으로는 회의 시간을 최소화했습니다.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주간 회의는 10분 만에 끝내고 프로젝트별 회의는 제가 직원들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같이 보며 피드백해요. 언제든지 원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끔 열린 자리 배치라서, 분위기를 파악해 누군가 힘들어 보이거나 작업이 계획보다 늦어지면 “구석에 계신 분, 으쌰 으쌰!”하는 식으로 바로바로 반응하고요. 다만 업무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가능한 메신저로 이야기하고 필요한 때만 말을 겁니다. 종종 직원들이 몰입하다 못해 날이 서있는 것 같아 걱정될 때도 있지만 업무시간 내 몰입도를 높인 지금의 변화에 만족합니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을 것 같네요. 평소에 일하는 환경이나 조직 문화에 관해 자주 의견을 나누는 편인가요?

기회가 될 때마다 불편한 건 없는지, 오피스의 장점이나 단점을 물어봅니다. 쓴소리는 더욱 귀 기울이려 노력하고요. 솔직한 만족도는 저도 궁금하네요. 얼마 전 우연히 기업 평가 사이트에서 봤는데, 5점 만점에 4.4점이었고 사내 문화는 4.8점이었어요. 이 수치가 만족도의 척도는 아니지만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이나 더 나은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복지는 어떤 게 있나요?

2017년부터 해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다녀왔습니다. 공부도 되고 많은 영감을 얻어 문화로 정착될 수 있게끔 하려는데,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못 갔네요.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작년에 나무 의자 하나씩 만들어보자며 시작한 프로젝트가 이번 코사이어티 전시 <Objects in Context>의 일부가 되었어요. 최근에는 못하고 있지만, 리소그래피나 사진 등 직원들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디자이너들이 각각 디자인한 나무 의자들,  <Objects in Context> 전시에서 보실 수 있어요.


디자이너들을 위해 업계에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나요?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디자인 서비스에 대한 낮은 인식이 산업에도 영향을 미쳐서, 업무에 비해 디자인 비용이 낮게 측정되어요. 이러한 상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업무 환경에 격차를 키워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많은 실력 있는 학생들이 디자인 전문 오피스를 첫 직장으로 택하는 해외와 다르게 한국은 대체로 대우가 좋은 대기업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죠.


SWNA(Suk Woo and Associate)라는 이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답변들을 보면 구성원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요. 조직을 이끌면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할 텐데,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직원들이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조직을 단체 라이딩에 비유한다면, 저는 맨 앞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용기와 열정을 북돋는 역할인 거죠. 프로젝트 팀이 알아서 잘하고 있을 때에는 개입하지 않고, 피드백이 필요할 땐 단점보다 장점을 부각하는 등 동기부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의 고민 흔적이 가득한 SWNA 오피스


개인 디자인 회사를 차리는 꿈을 안고 일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은데요. 10년간 디자인 오피스를 지속해 온 경영자로서 창업을 꿈꾸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눈덩이도 어느 정도 굴려야 잘 뭉쳐지듯,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조직 운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니까요. 처음부터 달리면 제 풀에 지치잖아요. 같은 이유로 자기 관리도 중요해요. 저도 사무실을 이전하고 많이 힘들었어요. 이사 후유증인지 건축에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힘이 빠진 채로 2~3개월을 보냈어요. 직원들에게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고요. 그때 일찍 일어나고 꾸준히 운동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단순화된 루틴을 유지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가 지난 10년간의 작업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SWNA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SWNA 오피스가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지속 가능할 수 있게끔 정비하는 거예요. 이 목표를 이루려면 직원들과 제가 행복해야 하거든요. 업무에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일을 일 자체보다는 몰입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일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오피스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모두가 행복하면 디자인 퀄리티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하려면 직원들과 제가 행복해야 하거든요.
일을 몰입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일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오피스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Objects in Context

(SWNA-ANSW, 지난 10년)

2021년 4월 9일부터 18일까지, 코사이어티에서 SWNA의 전시 <Objects in Context 맥락 속의 오브제>가 열립니다.


SWNA가 2010년부터 디자인한 오브제들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보여줍니다. 더불어 소속 디자이너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각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의자 10점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자세한 안내는 인스타그램 안내를 참고해주세요.


*코사이어티 뉴스레터 구독  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