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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Feb 14. 2024

지하철에서 찾은 물아일체

 기능이란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도서관, 게임방, 카톡방, 명상실, 인터뷰실의 다른 이름이 대중교통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주체에게 달렸다. 교통수단으로만 작용하는 건 기본. 익숙함에 익숙해진 우린 멀티태스커가 된다. 과거엔 신문을 읽거나 잡담 또는 멍을 때렸다면 오늘날은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과 걸맞게 복잡해졌다. 물론 고개를 쭉 내밀며 핸드폰 보는 자세는 옛 어른들이 신문 볼 때와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기기 덕에 뉴스도 보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 아닌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찾는 우리는, 노자가 그렇게 외쳤던 물아일체를 대중교통에서 이루게 되었다. 폰 없이 출퇴근을 당최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들었다. 백번 천번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런 의존적인 현상을 직시하게 되면 유치하게 보이겠지만 내심 거꾸로 하고 싶은 반감이 든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마주하게 되는 모습. 군대처럼 핸드폰을 받드러 총 자세로 들고 일렬로 앉아있는 장면이 어느 순간 기시감이 들 땐 괜스레 핸드폰을 찾지 않게 된다. 차라리 오늘은 멍을 때려봐야지..란 생각 5분이 지나면 주머니에 슬쩍 손이 가는 건 못 참긴 하지만;;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지하철 속 거무튀튀한 창문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을 본다. 본능에 충실했던 걸 무안해하는 눈초리다.


 다 때가 있는 법이겠지. 한창 자격증에 몰두했을 땐 대중교통 이용 시간은 곧 학습 시간이었다. 출근 시간엔 백색소음만이 가득하다. 미리 준비한 비법노트를 꺼내 공부한다. 도착지까지 몇 문항을 외운다는 마음. 자리가 널널한 지하철에서의 몰입도는 스터디 카페 버금간다. 자격증의 시대는 끝나도 대중교통 이용 시간만큼은 유의미하게 보내자는 기조가 강했다. 한때는 지하철이 움직이는 도서관이었던 적이 있다. 이곳에서만큼은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이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된다. 흔들리는 곳에서 다루는 플랫폼의 익숙함이 핸드폰이라 그런 듯 싶다. 엄지손가락으로 툭 툭 페이지를 넘기며 속도를 올리는 열차처럼 마지막 온점을 향한다. 한창 책에 맛 들이려는데 밀리의서재 무료 구독이 끝나버렸다. 이 기나긴 통근 시간을 어찌 보낼지 고민하는 과도기를 거치는 중 종합도파민세트 구성이 내게 찾아왔다. 지하철 타기 전까지 듣던 노래를 끝맺음하고 넷플릭스를 몇 분 보다 유튜브로 넘어가고 스포츠 하이라이트 몇 개 보다 자연스럽게 쇼츠로 편승. 이미 본 내용이 반복되거나 현타오는 걸 보자마자 바로 나가 다시 음악을 듣거나 괜스레 통장 잔고와 향후 일정을 리마인드한다. 다시 유튜브로 들어가다가 불현듯 네이버 포탈에 들어가 뉴스를 랭킹별로 톺아보며 하차 준비를 서서히 시작. 분주한 손가락과 눈동자가 느껴지는지 내면의 도파민의 분출은 못 막는다. 이 중독에 끝맺음을 안겨주는 건 직감이다. 신기하게도 ‘이제 내릴 때가 되었는데?’란 생각에 현위치를 보면 2-3정거장 전. 3년간 같은 곳에 출퇴근하는 장점으로 직감이 뾰족해진다는 걸 추가해야겠다. 이걸 좋아해야 할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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