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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이 Dec 22. 2023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왜 글을 쓰게 할까?


평소 인터넷을 이용할 땐 98% 정보검색을 하고 2%는 이메일 확인을 한다.

주로 모든 영역의 정보검색을 이용하면서 정작 내가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도움은커녕 내가 끄적이고 싶은 말만 주절거릴 뿐이다. 귀차니즘에 소통도 하지 않고 벽을 보며 혼자 읊조린다.


공개 일기장을 쓴다기엔 이미 이불킥할만큼 다양한 채널로 많이 해봤고, 치기 어렸던 그때 나에게만 의미 있던 무중력 공간일 뿐이었다. 또 그런 공간이 필요한 것인가? 이번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벽보며 얘기하는 걸로 만족하겠나? 그러려고 또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나?



최근 전혀 다른 글들에서 '글쓰기 시작하길 잘했다'와 비슷한 문장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인플루언서에 가까울 만큼 수많은 이웃과 방문자를 보유하고, 본업을 가지고도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글을 쓰고, 글쓰기 외에 몇 가지 이상의 시도와 병행으로 삶의 빈틈을 꽉꽉 채우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시작이 매일 인터넷에 글쓰기였고 그로 인해 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고 더 다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태어난 환경을 고를 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들을 다르게 활용하는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찾고자 한다면 책 속에서, 화면 속에서, 인터넷에서 멘토로 삼을만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매일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채널에서 기가 질릴 만큼 성실히 밭을 갈아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를 키워내는 사람들. 지금도 내 성향은 그들의 독한 바지런함이 기가 질릴 때도 있다.

저렇게까지 해야 그렇게 된다고? 시작도 하기 전에 녹다운이 될 거 같다.

다 필요 없고 무위로 돌아가고 말리라,, 시크한 척 자기변명하면서.

예전의 나라면 그랬다.

지금도 내 안의 일부는 그렇게 돌아가자고 속삭이기도 한다.

예전처럼 욕심 다 버리고 유유자적 편하게 살자고. 다 부질없다고.




난 정말 달라지고 싶다. 강렬하게 다른 삶을 살고 싶은 갈증을 느낀다.

꽤 오래 단단하게 쌓아 올렸던 자부심과 10년 동안 무던히 모아 왔던 큰돈과 거기에 실었던 핑크빛 꿈과 노후의 기대가 몇 년에 걸쳐 연달아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면서 모든 것들이 재정립됐다.

한 번도 욕심내지 않았던 것을 열심히 욕심낸 결과, 전에 내가 갖고 있던 소박한 것들까지 빼앗겼다.

그 선택은 다 내가 했고, 욕망에 눈이 머니 상식이 다 불타 없어지고 어리석은 기도만이 남더라.

나란 인간을 이루는 것 중 가장 단단하다 믿었던 부분이 허무하게 부서져 내리고 내 주관은 어리석고 대책이 없었다. 세상에서, 책에서, 오래된 격언에서. 뻔하고 번지르르하게 느껴졌던 모든 원론적인 심플한 말들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도 경험주의자였지만 그 경험의 힘이라는 게 어떤 건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전엔 본질적인 당연한 말이 싫었지.

대가리가 깨져보지 않은 자가 그 아픔이 상상될 리가.




그런데 왜 글을 쓰냐고?

글은 말과 달리 휘발되지 않는다. 내가 쓰는 동안 내 눈이 내 글을 한 번 더 읽는다. 쓰는 동안은 몰랐다 하더라도 쓰는 동안 부렸던 있어 보이는 척이든, 포장이든, 과장이든 다 드러나고 느껴진다.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나를 드러낸다. 어떤 사람의 글은 글쓴이의 뒷모습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무리 가면을 쓰고,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뒷모습까진 연기하지 못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느꼈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해도, 감추려 해도 뒤돌아선 그 사람의 뒷모습은 그의 진짜 상태를 보여준다. 자기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짐도, 반성도, 선택 못할 결정도 글로 풀어보면 내면을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북돋고, 나약한 자신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글을 쓴다는 건 1차적으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를. 상황을.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속으로 파고들 수도 거리를 둘 수도 있다. 결국엔 소통이다. 나와 소통하든. 상대나 타인과 소통하든. 말이나 글이나 그러려고 만들어진 거 아닌가.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 



방황하는 내 마음의 기준을 잡고, 소통하고, 결국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글까지 쓰고 싶어졌다. 내가 얼굴 모르는 수만의 사람들 글 속에서 도움을 받았듯, 나도 나하고 싶은 혼잣말 말고 누군가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는 그런.. 잡설 말고, 나도 모르는 꾸며낸 남의 정보 말고..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하지 않나. 전에도 썼듯이 난 말발보단 글발이 편한 사람이니 말하는 대로 대신 '내가 쓰는 데로' 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다짐이고 계획이고 그런 거 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뭐라도' 적어보려고 한다. 지금 올린 글들도 누가 보든 말든 보고 또 고치고, 수정하고 내가 쓴 글을 내가 가장 많이 보지만 이러다 보면 뭐라도 쌓이겠지. 보기 좋게, 읽기 좋게 하는 법도 나아지겠지.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위안되는 문장 1개쯤 나올 수도 있겠지. 이전과 같은 생각, 행동만으론 다른 삶을 살 수 없으니 이전에 안 했던 뭐라도 꾸준히 해보려는 것뿐.


그중에 글쓰기를 선택한 것뿐.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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